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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었다옹

by 수상한호랑이

그 맑고 거륵한 눈물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여

그 따사하고 살틀한 볕살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여


눈물의 또 볕살의 나라에서 당신은

이 세상에 나들이를 온 것이다

쓸쓸한 나들이를 단기려 온 것이다


눈물의 또 볕살의 나라 사람이여

당신이 그 긴 허리를 굽히고 뒤짐을 지고 지치운 다리로

싸움과 흥정으로 왁자지껄하는 거리를 지날 때든가

추운 겨울밤 병들어 누운 가난한 동무의 머리맡에 앉어

말없이 무릎 우 어린 고양이의 등만 쓰다듬는 때든가

당신의 그 고요한 가슴 안에 온순한 눈가에

당신네 나라의 맑은 한울이 떠오를 것이고

당신의 그 푸른 이마에 삐여진 어깻죽지에

당신네 나라의 따사한 바람결이 스치고 갈 것이다

높은 산도 높은 꼭다기에 있는 듯한

아니면 깊은 물도 깊은 밑바닥에 있는 듯한 당신네 나라의

하늘은 얼마나 맑고 높을 것인가

바람은 얼마나 따사하고 향기로울 것인가

그리고 이 하늘 아래 바람결 속에 퍼진

그 풍속은 인정은 그리고 그 말은 얼마나 좋고 아름다울 것인가


다만 한 사람 목이 긴 시인은 안다

「도스토이엡흐스키」며 「죠이쓰」며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일등가는 소설도 쓰지만

아모것도 모르는 듯이 어드근한 방안에 굴어 게으르는 것을 좋아하는 그 풍속을

사랑하는 어린것에게 엿 한가락을 아끼고 위하는 안해에겐 해진 옷을 입히면서도

마음이 가난한 낯설은 사람에게 수백냥 돈을 거저 주는 그 인정을 그리고 또 그 말을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넋 하나를 얻는다는 크나큰 그 말을


그 멀은 눈물의 또 볕살의 나라에서

이 세상에 나들이를 온 사람이여

이 목이 긴 시인이 또 게사니처럼 떠곤다고

당신은 쓸쓸히 웃으며 바독판을 당기는구려




2025.9.15. 햇살과 같은 추억과 인정을 한 아름 품을 수 있다면, 나들이 마치는 그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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