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과 애그리비즈니스
글로벌 애그리비즈니스는
착취를 먹고 자란다
문제는 오늘날의 글로벌 애그리비즈니스 기업이 부를 축적하는 과정이 착취와 불균형을 필수로 수반한다는 점이다. 식량의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할 때, 소농은 밀려나고 농경지는 획일화되며 화학약품이 과다하게 투입되고 토양이 자연적으로 순환하던 고리는 끊긴다. 목초지를 갈아엎고 만들어진 사육장에서 가축은 GMO 사료를 먹으며 비육된다. 땅과 식수는 오염되고 원주민은 거취를 잃는다.
결과적으로 지구 전체 식량 생산량은 늘어나겠지만, 부는 분배되지 못하고 글로벌 애그리비즈니스가 만들어낸 식량이 기아의 굶주림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억만장자들이 똑똑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국가 시스템을 조종하고 독점과 사유화, 법과 근로자의 권리를 침탈하며 재산을 축적한 것이다.
올 해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은 〈고통으로부터 이익 챙기기(Profiting from Pain)〉라는 이름의 불평등 보고서를 발표하며, “에너지와 식량 장사를 하는 억만장자들은 이틀마다 재산이 10억 달러씩 늘어나는 반면, 비싼 식품과 에너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극빈층으로 전락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기간 동안 식량과 농업분야 억만장자들의 자산이 45%, 3820억 달러가 증가했다. 카길 일가에서만 억만장자가 8명이 더 늘었다고 한다. 또한 가브리엘라 부커 옥스팜인터내셔널 총재는 “억만장자들이 똑똑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국가 시스템을 조종하고 독점과 사유화, 법과 근로자의 권리를 침탈하며 재산을 축적”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하림은 기업의 몸집을 불려가는 과정에서 청렴과 공정의 부재로 늘 뭇매를 맞았다. 수직계열화 사업에서만 보더라도 정부 지원금과 융자를 집중해서 받았음에도 계열화 농가와의 공정한 수익 분배를 노력 하지 않은 점이나 가축재배보험금의 수익자를 자사로 지정해서 보험금을 부당하게 수령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지난해에는 오너 2세의 승계자금 마련을 위해 자회사에 부당하게 일감을 몰아준 것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48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무려 12년 동안 하림을 포함한 육계 신선육 시장의 주요 기업들(16개사)이 가격 인상을 담합한 사실이 적발되어 1758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 되었다.
Farm to Table
농장에서 식탁까지(Farm to Table). 대체로 로컬푸드 운동이나 농산물 직거래에서 사용하는 말인데, 하림도 이 말을 사용한다는 점은 인상적이고 제법 무섭기까지 하다. 하림은 이 단어를 수직계열화를 기반으로 식량의 원물부터 가공식품까지를 아우르는 거대하고 촘촘한 애그리비즈니스 플랜을 설명하는데 사용한다. 농장에서 식탁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미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UN FAO)의 컨설턴트이자 진화생물학자인 롭 월러스는 저서 《죽은 역학자들- 코로나19의 기원과 맑스주의 역학자의 지도》에서 애그리비즈니스가 팬데믹의 기원이자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스필오버 개념을 차용하여 산업적 농업의 자연 침투가 질병의 사회적 유입을 야기했다고 말하는데, 이에 따르면 질병의 근원지는 자본의 중심지가 된다. 또한 월러스는 애그리비즈니스는 ‘규모가 서로 다른 수많은 공간 영역들을 불연속적으로 연결함으로써 그 착취적 운영 방식을 재구성’했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애그리비즈니스든 전통적 방식의 농업이든 식량을 생산한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전자는 그 결과물이 사회적 재생산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소수에게 부가 응집되고 다수는 도구로 전락하며 소외된다. 이는 초반에 언급했던 네그리의 삶권력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누가 식량을 무기로 만드는가
우리는 질병의 시대를 경험하며 식량이 무기가 되는 것을 체감했다. 여기에 기후변화와 전쟁이 더해지며 빈자의 굶주림은 심화되고 있다. 선진국에 반열에 올랐다고 하지만, 식량자급률이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속하는 우리나라의 사정도 여의치 않다. 대외적 요인으로 식용유와 밀가루 물가가 오르고 있고, 밀을 원료로 하는 가공식품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자유무역 시장경제 시대를 살며, 초국적 기업이 먹거리 생산 일련의 과정을 지배하는 것에 너무도 익숙해진 세상을 살고 있다. 그 결과 값은 명징하다. 소비자는 점점 더 작은 치킨을 비싼 값에 먹게 되었고, 소농은 착취의 대상이 되었으며, 닭은 매년 찾아오는 조류독감에 속수무책으로 땅에 묻힌다.
더러는 대기업이 한 국가를 먹여 살린다고 말한다. 기업의 영리행위가 모든 면에서 이로울 수 없으니 이들의 영향력을 도덕성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도 말한다. 그렇지만 카길과 하림 같은 기업이 식량 생산량을 높이고 부를 축적하며, 그로 인해 우리가 값싼 단백질을 먹게 된 데에는 환경 파괴를 비롯하여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더 많은 상실된 기회가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기회비용에 매몰되는 것은 무가치하다고 치부되어 왔지만, 먹거리 시스템에서 우리가 포기한 기회비용은 지금 우리가 지불해야 할 비용으로 돌아오고 있다. 창문 없는 계사에서 한 달 남짓을 살다가는 비정상적인 닭의 삶이나 만성이 된 조류독감은 과연 하림과 무관한가? 소비자의 식탁에 단일 품종의 닭만 오르게 된 현상이 하림과 무관한가? 풀을 먹으며 자라야 할 소가 우리에 갇혀 GMO 사료를 먹게 되면서, 소고기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지금의 현상이 카길과 무관한가? 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 먹기 위해 포기했던 기회비용이 오히려 조화로운 식량체계를 만들어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무시한 채 성장하는 글로벌 애그리비즈니스 기업의 행보가 식량이 무기가 되는 것에 박차를 가하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글 마은지
이 글은 지속가능한 미식 잡지〈SUSTAIN-EATS〉 4호에 수록된 글입니다. 종이잡지에서 더 많은 콘텐츠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