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로 살았던 내 삶을 돌아보며. 무한도전의 7주간 휴식에 대해 생각했다
과거 무한도전 김태호 PD가 자신의 SNS에 남겼던 말이다.
나는 지금 환경에 대한 공부를 하기 위해 스웨덴으로 유학을 와 있지만 이 곳에 오기 전에 예능 PD로 일했었다. 어쩌면 내가 처음 PD로 일을 시작했을 때 내가 가졌던 꿈은 김태호 PD와 같은 PD가 되자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PD로 일을 시작하자마자 '어느 정도만 하자, 중간만 가자'라는 마인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바로 알게 되었다. PD란 매주 인사고과를 받는 직업이다. 이 인사고과는 시청률과 광고금액이라는 정확한 숫자와 대중들의 냉정한 피드백으로 점철되며 도무지 피할 길이 없다. 김태호 PD와 같이 한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메인 PD에게 이런 주 단위 인사고과는 곧 자신의 위치가 되고 얼굴이 된다. 따라서 '어느 정도만 하자, 중간만 가자'는 마음가짐으로는 한두 번 뒷발로 쥐를 잡을지언정 절대로 성공할 수가 없다.
PD로 일하면서 김태호, 나영석처럼 꼭 성공을 해야만 하는 것이냐?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처럼 채널 간판 프로그램의 수장이 되지 않아도 PD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는 시청률, 광고 협찬금액, 대중들의 활발한 피드백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PD란 없었다. 거기에서 자유로워지는 PD란 딱 두 종류이다. 김태호, 나영석처럼 이미 자신의 브랜드를 견고히 하여 그런 숫자 따위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에 오른 사람들(이것도 영원할 수는 없지만), 혹은 아예 연출에서 물러나거나 극단적으로 말해서는 짐 쌀 준비를 항상 하고 사는 사람들. 슬픈 이야기이지만 적어도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 내가 직접 목격한 현실이다. 연예인이 인기를 먹고사는 존재들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PD 또한 프로그램의 인기를 먹고사는 직장인들이다.
김태호 PD가 SNS에 남겼던 말에 크게 공감했었다. 특히 '열심히 고민해도 시간을 빚진 것 같고, 쫓기는 것처럼 가슴 두근거리고, 택시 할증 시간 끝날쯤 상쾌하지 못한 마음으로 퇴근하는' 이 부분에 공감했다. 항시 PD를 쫓는 것은 시청률, 대중의 냉정한 평가, 그리고 '시간'이다. PD는 시간에 쫓기다 못해 시간에 발목 잡힐 때도 많다.
한 때 즐겨보았던 Mnet의 '프로듀스 101'같은 경우 방송을 볼 때마다 행복했지만 한편으로 그 프로그램을 만든 PD들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전해 느낄 수 있어 함께 마음이 쿵 내려앉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101명이라는 사상 초유의 주인공 숫자를 자랑하는 음악 예능 프로그램이니만큼 캐릭터 한 명 한 명의 분량에 대한 편집이나 음악 작업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다 서바이벌의 특성상 보안에 엄청나게 신경 써야 했을 것이고 동시에 매주 쏟아져 나오는 시청자들의 의견을 잘 반영하여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미리 기획하거나 찍어놓는 모험을 감수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은 이 모든 것이 '시간 부족'으로 귀결된다. 그것도 엄청난 시간 부족. 보는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편집이 매끄럽지 않고 가편집 단계의 자막이 나온 것, 때로 BGM 하나 없는 영상을 보며 성의가 없구나 화가 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PD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들은 일주일 동안 하루도 집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고 하루 2,3시간의 쪽잠을 잤을 것이며 심지어 밖에 나가 밥 먹을 시간도 없어 도시락, 김밥 등을 입에 물고 편집기 앞에 앉아있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시즌제로 방영되는 11부작 '프로듀스 101'이 이럴지언정 12년간 쉬는 기간이 거의 없이 달려온 무한도전은 더 하지 않겠는가? '프로듀스 101'처럼 당장 눈에 보이는 편집 문제나 방송사고로 김태호 PD, 혹은 무한도전 제작진들의 쫓기는 시간을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그가 말하는 '한 달의 점검 기간과 두 달의 준비 기간'이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음에 누구나 공감했을 것이다. 12년간 거의 같은 멤버로 한 프로그램을 이끌어오며 시청자들에게 항상 신선한 자극을 주기 위해 매주 그들은 치열하게 대화하고 회의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때로, 혹은 자주 '상쾌하지 못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며 그들이 간절히 바란 것은 '휴식'이 아닌 '점검과 준비'였다는 것이 사실 좀 존경스럽다. 실제로 김태호 PD는 "지친 것이 아니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회의와 녹화는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휴식기', '방학'은 모두 틀린 표현이다. '무한도전' 본연의 색깔을 찾아오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주 무한도전 레전드 편이 시작되었고 그들의 휴식이 완전한 휴식은 아니었다는 걸 벌써 느끼고 있다.
시즌제 프로그램에서 일했던 나는 7주라는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체감한 경험이 있다. 7주를 쉰다고 하면 실제로 온전히 쉬는 '휴가'는 아마 일주일 정도일 것이다. 나머지 시간에는 그동안의 회차들을 모두 정리하여 시청률과 시청자 반응에 따라 그들을 모두 분석해야 할 것이고 그 분석을 통해 앞으로의 큰 방향과 세세한 회차를 모두 구성해야 할 것이다. '제작진 입장에서 7주는 멈춰서 돌아보고 고치고 준비하면 금방 지나가는 시간'이라고 말한 김태호 PD의 말에 공감한다.
나는 이제 PD가 아니다. PD로 살았던 시간들은 내게 참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직업의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감당하고 싶지도 않았던 사람이었다. 스웨덴에서 살면서도 여전히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들, 시사 프로그램들, 드라마들 모두를 사랑하고 오히려 더 즐겨본다. 시청자로 돌아온 나의 현재에서 무한도전의 7주 휴방 소식은 문득 나를 다시금 PD의 시간으로 잠시 돌아가게 해주었다. 애청자로서는 무한도전 휴방 소식이 반가울 리 없지만 잠시나마 PD로 일했던 시간을 돌아보면서는 그들의 깊은 고민과 용감한 결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김태호 PD님 화이팅.
그리고 모든 PD님들, 작가님들 항상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