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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속가능 스튜디오 Jan 22. 2017

라떼파파, 그 속에 숨겨진 스웨덴 사회의 성장 동력

스웨덴 사회를 움직이는 건 스웨덴인들의 비판의식과 토론의 힘





지난주 3부작으로 제작된 SBS 스페셜 <아빠의 전쟁> 마지막 편을 보았다. 마지막 3편에는 내가 살고 있는 스웨덴의 아빠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기에 기대가 컸다. 내가 이미 보고 느끼고 있는 한국과 스웨덴 아빠들의 차이를 이 다큐멘터리에서 잘 담아낼까? 혹은 내가 모르는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지는 않을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아빠의 전쟁> 3부 '잃어버린 아빠의 시간을 찾아서'를 보기 시작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이 다큐멘터리의 '핵심'에 대해서만 간단히 짚어보고자 한다.


"한국-스웨덴-독일의 아빠들, 그들의 가족과 그들의 생활을 만드는 사회시스템"


결론적으로는 '노동 시간'을 줄이고 '노동 생산력'을 높이며 남녀가 평등하게 육아를 책임질 수 있게 하는 탄탄하고도 엄격한 '육아휴직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다,라는 이야기이다. 여기에는 정부의 노력과 사회시스템 안착을 위한 사람들의 인식 전환이 가장 중요하다. 사실 한국은 남성 육아 휴직에 대한 법적인 시스템은 구축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엄격한 법 적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개인이 직장에서 생존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법에 규정되어 있는 권리 자체를 요구하지 못하는 현실은 인구 절벽 및 출산 파업 등의 사회적 문제로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한 사람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가치들을 보장하지 못하는 정부로 인해 아빠들이, 혹은 그들의 가족들이 정말 말 그대로 힘든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 아닐까.


누구나 막연히 생각하는 한국의 현실을 순위로 따져서 더 분명하게 바라본다면,


엄청난 노동 시간 -  '2113시간'으로 OECD 국가 중 2위

엄청난 사교육 비용 - '2.96%'로 GDP에서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율 1위

남녀 간 임금격차 - '36.3%'로 14년째 압도적 1위

남성 가사노동 시간 - '하루 평균 47분'으로 OECD 국가 중 단연 꼴찌

사실 한국은 OECD 통계에서 법적으로 남성에게 허용된 육아휴직 기간이 긴 나라로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아버지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육아휴직 기간이 아닌, '법적'으로 허용된 육아휴직 기간을 비교한 것이다. 한국은 남자도 법적으로는 1년까지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1위를 차지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법률 제도는 이미 앞서가고 있지만 현실이 이를 전혀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긴 남성의 육아휴직 기간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나라에서 실제 아빠들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6분.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한국과 비교하고자 이 다큐멘터리가 스웨덴에서 찾아낸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라떼파파'였다.


라떼파파란 한 손에는 라떼를 들고 유모차를 끌며 공원을 산책하거나 장을 보는 스웨덴 아빠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남성들만 쓸 수 있는 유급 육아휴직 기간을 90일로 강제 의무화한 후 평일 낮에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다니는 아버지들을 가리키는 '라떼파파'. 스웨덴에는 실제로 이런 라떼파파들이 많다.


이런 스웨덴의 라떼파파는 한국에서 신조어로 등장할 정도로 각광받는 개념이다. 스웨덴의 라떼파파들은 한국 여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놀랍고 때로는 부러운 존재들일 수밖에 없다.
과연 나는 스웨덴 사람들에게 라떼파파란 것은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다. 그들 또한 그들의 라떼파파들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는지도. 정말 '라떼파파'라는 말을 많이 쓰는지, '라떼파파'와 스웨덴의 좋은 아빠들, 그런 아빠들을 만든 스웨덴의 사회시스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스웨덴인 친구들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라떼파파?그건 일종의 힙한(트렌디한)아빠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사실 라떼마마에 비하면 소수에 불과하지. 아직 호들갑 떨 정도로 대다수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당연히 부부가 나눠해야 할 일을 하는 건데 특별히 좋다 나쁘다 생각 들지는 않아. 그저 '당연'한 건데 예전엔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 뿐이지."

"난 남성의 의무 육아휴직 기간이 90일인 게 부족하다고 생각해.

물론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긴 하지만 제도가 확실히 정착되기 위해서는 남성, 여성 정확히 반반씩 육아휴직 기간을 나누어 쓰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사람들의 인식이 완전히 자리 잡히면 다시 개인의 선택과 사정에 맡긴다 할지라도."



물론 이 친구들 모두 다들 한국의 현실에 들으며 안타까워했고 남성의 육아에 대한 스웨덴의 제도와 사회적 인식이 훨씬 잘 자리 잡혀 있다는 것은 인정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스웨덴에서 '이상적인' 부모 공동의 평등한 육아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고 말하기엔 갈 길이 멀었다고 이야기한다. 남성이 여성보다 육아휴직을 더 많이 쓰거나 정확히 반반을 쓰는 경우가 적고 아직도 육아와 가사노동의 많은 부분을 여성들이 책임지고 있기에 현재 시스템이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스웨덴의 부모 공동의 평등한 육아 시스템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인식 개선이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단호히 말하는 그들을 보며 아, 이것이 스웨덴의 진짜 성장 동력이구나 하고 느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남성의 육아, 남녀평등의 문화가 스웨덴에서 가장 먼저 자리 잡히고 잘 작동되고 있는 이유가 다름 아닌 이런 스웨덴 사람들의 "비판 의식"과 "토론 문화"에서 나온 것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시스템에 대해 '이 정도면 훌륭하지'하고 넘어가거나 '이건 정말 문제다'라며 불평불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 시스템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이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더 나은 방향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이런 비판 의식과 이를 키워주는 교육시스템이 바로 지금의 스웨덴의 훌륭한 사회시스템을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물론 친구들의 말처럼 스웨덴 사회가 모든 면에서 완벽한 것은 아니다. 한국 사람들이 스웨덴 사회시스템과 복지제도를 일종의 '판타지'처럼 만들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더욱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문제가 없는 조직이 어디 있으며 완벽한 사회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개인적으로 다른 것은 몰라도 스웨덴 사람들의 '비판 의식'과 '토론 문화'만은 꼭 제대로 배우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스웨덴의 사회시스템 그 자체를 그대로 들여와서 한국 사회를 바꾸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수 있지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한국사회에도 완벽히 들어맞으리란 보장도 없고. 나는 오히려 그들이 사회시스템을 견고히 구축하고 이를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가는 그 방법, 그 성장 동력 자체를 배워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스웨덴인들의 비판 의식과 건강한 토론이 이들의 성장 동력임을 깨달았다.



분명한 건 스웨덴도 한국도 아빠, 엄마의경계를 넘어서 육아라는 것 자체가 개인의 부담에 그치지 않고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임을 확실히 인식하는 것이 첫번째 과제이다. 이 과제를 풀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가져와도 그것은 그저 쓰지 못하는 한국 아버지들의 법적 육아휴직과 다를 바가 없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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