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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tain Life Aug 30. 2023

애진의 일상

스마클릭




애진의 본명은 '허애진'으로 1970년대 마포에서 태어났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그녀는 홀트 아동 복지 재단을 통해 여권 한 권을 손에 쥐고 비행기에 올랐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 이전 제5 공화국 시절이었고 그녀가 대여섯 살쯤 되던 해였다. 그녀의 오른편엔 젖먹이 아기가 타고 있었다. 아이는 무엇이 불편했는지 비행 내내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애진은 바람이 잘 통하도록 아이의 양말을 벗겨주었고, 아이는 그제야 애진을 향해 생글생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울음을 멈추었다. 파미르 고원을 넘고 카스피해를 지나는 동안 애진과 아기는 얼마간 잠이 들었을까. 마침내 유럽 대륙에 발을 디딘 그들은 서로의 안녕을 마음속에 새기며 헤어졌다. 애진은 'Huys' 집안의 새 식구가 되었고 새아버지의 성을 따라 'Aejin Huys' 의 삶을 살게 되었다. 성은 바뀌었어도 그녀의 이니셜에 변함이 없다는 사실은 그저 우연일 것이다. 꼬마 애진이 흥얼거렸던 '반짝반짝 작은 별'은 모차르트의 언어로 바뀌어갔고, 기억 속 모국어는 '우유, 장독, 고기'와 같은 원초적 감각에 머무른 채 점점 희미해졌다.


그날 이후 애진은 변함없이 겐트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말은 여전히 서툴다. 플랑드르 북서부 지방 네덜란드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영어와 프랑스어를 혼용해 쓰고 있다. 한식 기반의 이벤트 업체 <먹자! / Mokja!>의 대표이며 케이터링과 워크숍, 다양한 협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던 중 <KIMCHI>라는 요리책을 구상하게 되었고, 아무런 연고도 없이 SNS를 타고 우리에게 연락이 닿았다. 그렇게 우리는 청량한 6월의 바람을 타고 플랑드르에 오게 되었고 애진의 곁에 머무르며 그녀의 일상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오늘은 <Mokja!> 캐이터링 서비스가 있는 날이다. 벨기에 국왕이 한국을 방문한 지난 5월, 성수동에서 열린 <벨지안 라이프스타일> 행사에서 만난 한 다이아몬드 가공업 관계자가 애진에게 홈파티 케이터링을 요청해 왔다. 애진은 케이터링 스케줄이 우리의 겐트 방문 일정과 겹친 것을 미안하게 여겼다. 우리는 오히려 잘 된 일이라며 애진을 따라나섰다. 무엇보다 겐트의 단면을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앞섰다.



오늘의 일터는 겐트 기차역 인근, 중산층이 밀집하여 부촌을 형성한 지역에 위치한 벨기에식 전통 가옥이다. 빛바랜 상아색 파사드의 육중한 대문을 열자 대리석과 화강암, 값비싼 원목 자재로 꾸민 실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생활의 흔적은 눈에 띄지 않았는데, 별장의 개념으로 오늘같이 파티를 즐기거나 손님을 묵게 하는 용도로 활용하는 듯했다. 호스트는 안트워프에 거주하며 다이아몬드 세밀 가공을 업으로 삼고 있다 했다. 겐트에서 기차로 약 한 시간 거리의 안트워프가 다이아몬드의 도시라 들은 적이 있는데, 플랑드르 지방을 타고 도는 돈의 흐름을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플랑드르 혹은 플랜더스라 일컫는 지역성은 루벤스를 앞세운 '회화 예술' 뒤편에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풍부한 물류를 바탕으로 한 '상업'이다. 북해와 연결된 운하를 거점으로 지리적 우세를 점한 겐트를 향해 유럽의 풍요가 몰렸고 도시는 번영을 누렸다. 그 중심엔 끊임없는 물자의 교환이 있었다. 상인들은 부를 축적했고, 명예를 위해 교회와 예술가에게 금화를 갖다 바쳤다.



겐트를 빼곡하게 수놓은 전통 가옥은 플랑드르의 지역색을 드러낸다. 도로를 접한 파사드의 폭은 짧고 내부는 뒤로 길게 뻗어있다. 3-4층 높이로 이웃한 집과 벽을 나란히 맞대고 있으며 지붕은 박공의 형태를 띤다. 1층은 부엌과 응접실, 2층과 3층은 침실로 이루어져 있다. 뒤편엔 집 넓이만 한 뜰이 깊숙이 딸려 있는데 정원을 가꾸거나 마당으로 사용한다.


잡초가 우거진 뒷마당이 폐허의 아우라를 풍긴다. 방치된 정원은 집주인의 별장임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섣부른 위화감이 앞서지 않는 건 겐트의 녹음이 퍽 아름답기 때문이다. 정원의 미학은 인공 조경에 있다. 인간의 손길이 닿아야 성립되는 것이다. 인접국 프랑스와 영국의 정원 문화는 세련의 극치를 달린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다듬어진다. 이곳 플랑드르에는 정원이 없다. 바람결에 내려앉은 씨앗이 절로 뿌리를 내리고 구름결에 푸른 잎사귀가 너울댄다. 사람들은 들풀을 구태여 옮겨 심지 않고, 푸르름은 계절을 거듭할수록 깊어만 간다.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손에 꼽는 겐트의 명물이 바로 들풀이라고. 그러므로 겐트의 사람들은 정원을 가꿀 필요가 없다.



파티가 시작되기 전 짬을 내 인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무작정 말이다. 그저 거대한 나무가 줄 지워 있을 뿐이었고 저녁 여덟 시가 다 되어가도록 저물지 않는 태양이 따사로울 따름이었다.



하늘은 물풍선처럼 말랑거렸고 솜사탕처럼 푹신했다. 벽돌 사이에 걸린 나뭇잎 그림자는 바스락거리며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려 했다.



여전히 알 길이 없었다. 얀 반 아이크가 겐트라는 도시를 얼마나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였는지를. 예술사를 공부할 때면 조악하고 생기 없는 중세의 끝 자락 즈음 '얀 반 에이크 형제'가 혜성처럼 등장한다. 에이크 형제는 특유의 심미안과 색채로 이전 세계와 사뭇 다른 그림을 그려나갔다. 인상파 이전, 빛의 혁명가였던 것이다. 유구한 플랑드르 미술의 시초이자 아름다움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버린 천재, 바로 그 에이크 형제가 겐트에 곧 당도한다는 플래카드와 조우한 것이다. 날짜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9월 이었다. 우리는 하지 무렵 겐트를 떠나므로 에이크와 인연이 닿지 않을 터였다. 미술관은 오후 6시를 기점으로 이미 문이 굳게 닫힌 뒤였다.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받쳐 올린 웅장한 석조 건물이 벨기에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관 M.S.K (Museum Schone Kunsten)임을 알아차린 것은 3년 후 다시금 겐트를 찾았을 때다. 반 야이크 형제는 이미 런던 대영 미술관으로 돌아간 뒤였다. 대신 플랑드르 미술의 역사를 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굳게 닫힌 미술관을 등지고 돌아가려는 순간 청동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한 노인의 발걸음이 발목을 잡아챈다. 참회의 형벌이 내려앉은 등허리는 땅속으로 꺼질 듯 구부정하다. 브뤼허 출신의 조각가 줄스 라게 (Jules Lagae , 1862-1931)의 대표작, <참회자 Boetelingen, 1892>.



박물관은 겐트에서 가장 광활한 녹지인 시타델 공원에 둘러싸여있다. 공원 초입에는 아름드리가 역동적인 청동 조각상을 품고 있다. 결의에 찬 아우성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다. 왼팔로 시민들을 호령하며 연설 중인 사람은 겐트의 정치가 에드몬드 반 베버른 Edmond Van Beveren(1852-1897)이다. 반 베버른은 1885년 벨기에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벨기에 노동당(BWP) 창립자이자 플랑드르 노동 운동의 대부이다. 올곧은 심성과 본보기로 겐트 시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반 베버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사후인 1926년 제작되었다. 조각가는 Jules Pierre Van Biesbroeck.


어딘가 단추가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겐트에는 왜 그토록 수많은 협동조합과 다양한 공동체가 건재하는지, 젊은이들의 천국이라 불릴 만큼 대학 기관 많은지, 벨기에를 통틀어 급진적 진보 성향의 정치색을 띠는지. 도시 곳곳에 자리한 역사의 증인들이 겐트의 이야기를 소리 없이 들려주고 있었다.




파티는 오후 아홉시에 시작된다 했다. 여름의 태양은 저무는 법을 잊었다. 오렌지빛으로 물든 석양이 땅 아래 흐드러진 찔레꽃을 따라 흙 위로 기대어 누워야 겨우 저녁상을 차리고 사람들은 그제야 식탁으로 모여든다. 슬슬 애진이 있는 부엌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람들이 모여 일상을 나눈다. 낯설지 않은 풍경인데 말을 알아먹을 수 없다는 게 조금 불편하다. 이곳 사람들의 풍채는 대부분 좋은 편이다. 높은 층고의 공간감이 밀도를 상쇄시킨다.



유럽인들의 젓가락질은 서툴렀지만 애진이 준비한 음식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파티가 한창일 무렵 빈접시를 마주한 호스트는 당황해하며 서둘러 배달 음식을 주문했다. 애진은 집으로 돌아오는  안에서 클라이언트와 소통이 어긋난 것에 속상한 마음을 내비쳤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달리는 차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잔잔하게 흐르는 운하의 물결이 나트륨 등의 잔영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그저 웃으며 애진의 노동주에 잔을 기울였다. 겐트에서 처음으로 맛본 맥주와 감자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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