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식 전통 혼례
01. 소반과 백자, 매듭과 금가락지 그리고 은비녀
내 이십 대 절반은 '한국예술학과' 학부생 소속이었다. 전통예술원보다 연극원 서사 창작 강의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말이다. 돌이켜 보면 전통문화를 깊숙이 파고들지 못한 후회가 들기도 한다. 당시만 해도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접한 일상 속 사물과 정서를 그저 권태롭고 너저분한 것쯤으로 여겼다. 대상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 낯설게 바라보지 못한 까닭이다. 졸업할 무렵에야 전통문화의 가치를 겨우 가늠하는 듯했지만 더 이상의 학력은 내 인생에서 무의미한 것이라 여겼다.
그렇게 학부 졸업장을 마지막으로 학교와 안녕을 고하고 '예술학'을 전공한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카테고리는 다르지만 ‘예술학’을 꼭 같이 공부한 우리는 예술에 대해 열띤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그럼에도 아름다우며 오묘한 한국 예술에 대해선 언제나 마음이 통했다.
그렇게 마음속에 늘 품고 있던 정체성이 결혼을 기점으로 가시화되기 이르렀다. 결혼 전 손수 고친 한옥에서 전통 혼례를 치르기로 한 것. 혼례 날짜를 받아 놓고 분주한 나날이 이어졌다. 나는 혼례에 필요한 것을 준비하기 위해 미술 감독처럼 사방팔방 뛰어다녔고 남편은 촬영 감독이 되어 연출을 도맡았다.
혼례를 위해 가장 먼저 들인 것은 혼례 당일 대례상 옆에 놓일 소반이었다. 통영반 형태의 사각반이었다. 화려한 해주반과 세련된 나주반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나의 미감은 익숙한 쪽으로 기울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던 사랑방 문턱으로 매 끼니때마다 들락날락했던 소반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경상도에서 흔히 쓰는 사각반은 경남 지방에서 생산된 통영반 형태를 띤다. 멋 부리지 않은 사각반 측면부의 비정형적인 조형이 왠지 마음을 잡아 끈다.
다음은 백자 항아리 두 점. 대례상에 놓일 소나무와 대나무를 위한 소품이다. 무기교의 항아리 한 점은 남성적인 반면, 구연부에 조형미를 입힌 다른 하나는 여성스러운 느낌을 풍긴다. 전통 혼례는 동쪽에 신랑이, 서쪽에 신부가 자리 잡는다. 신랑 쪽엔 소나무가, 신부 측엔 대나무가 놓일 것이다. 음과 양의 조화를 고려한 전통 소품의 재해석이다.
항아리와 더불어 반상기를 갖춘 건 결혼을 앞두고 일어난 큰 변화다. 그릇에 애정을 담으면 밥상에 정성을 쏟고, 더불어 일상이 한층 풍요로워지듯, 삶의 또 다른 단계에서 취향껏 고른 도자기가 그릇장을 채워가는 중이다. 백자에 푸른 염료의 불수감나무문이 새겨진 반상기는 혼례를 기념하기 위한 나름의 의식이었다. 불수감나무는 감귤류의 식물로, 불수佛手라는 명칭은 부처님의 손 모양과 닮아 붙여진 것이다. 불佛과 복福의 발음이 유사해 행복의 상징으로 여겼다고 하니, 결혼의 의미를 상서로움으로 채워가고 싶었다.
소품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단출하게 준비하려던 초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혼례 준비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인사동을 거닐다 나비매듭이 눈에 띄고 만 것이다. 나비매듭은 혼례를 치른 첫날밤, 신랑 신부가 합방하는 문 앞에 걸어 장식하는 일종의 표식이라고 한다. 전통 방식에 천착했다기보다, 나비 아래로 풍성하게 떨어지는 술 장식이 아름다웠다.
이쯤 되니 전통 혼례의 키워드가 ‘음과 양의 상서로운 조화’라는 것 정도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부귀와 영화’를 축원하는 마음 또한. 아름다운 우리의 공예품, 기쁨과 행복을 뜻하는 나비매듭은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는 모란도 족자 옆으로 놓이게 될 것이다.
전통 혼례를 준비하며 오히려 수고를 덜어낼 수 있었던 부분은 신부의 예물이었다. 가락지 한 쌍은 기혼 여성만이 착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이성지합二姓之合과 부부일신夫婦一身 의 표식이었다. 그렇게 전통 혼례의 뜻을 되짚으며 가락지 한 쌍 그리고 옥으로 장식한 은비녀를 혼례의 징표로 간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