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멋진 일요일

by 장보현







모든 게 평화롭기 만한 일요일이었다. 여독을 풀 새도 없었다. 우리는 어느새 겐트에서 새로 돌아온 한 주를 맞이했다. 정오가 되어갈 무렵 애진은 우리를 작업실로 안내했다. 집으로부터 운하를 가로질러 걸어서 10분 거리의 공유오피스였다. 섬유 공장을 개조한 곳이었다. 현대 유럽의 공동체 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앞섰으나 오늘은 아무도 일하지 않는 일요일이었다. 적막한 폐공장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것도 같았다. 그도 잠시, 적막을 비집고 성가대의 우렁찬 가스펠이 적당히 건조하고 적당히 습한 유월의 공기를 가로질렀다. 일요일이 돌아오면 이곳은 아프리칸 커뮤니티가 모이는 예배당으로 변모한다고.



책 작업에 앞서, 남편은 작업실에 비치는 자연광에 적응하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플래시가 번쩍번쩍 터지자 어디선가 아이들이 우르르 창가로 몰려들었다. 아이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턱을 추켜올리고 손가락을 구부러뜨리며 팔짱을 낀 포즈를 취했다. 남편은 그 모습이 익숙한지 미소를 지으며 연신 셔터를 눌렀다. 인도를 여행하며 손에 익은 습관이라 했다. 카메라만 보면 사람들이 무턱대고 렌즈 앞으로 모여든다고. 그들의 눈을 하나씩 맞추다 보면 내면이 비친다며, 여행의 긴장감이 조금은 풀린다고 했다. 그렇게 일요일의 아이들은 아무런 대가도 조건도 없이 갑자기 다가왔다가 불현듯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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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로 우리는 겐트 시내로 향했다. 역시나 걷는 편을 택한 건 겐트에서 수십 년 간 일상의 바퀴를 굴려온 애진의 익숙한 발걸음 때문이다. 이 아름답고 작은 소도시에서 서울의 대중교통을 떠올려선 안된다. 택시는 터무니없이 비싸고 구부정 늘어진 트램과 버스는 비효율적이다. 중심지에서 도시 외곽까지 아우르는 길은 걷는 편이나 버스나 트램을 타고 가는 편이나 별 차이가 없다. 만약 인내심을 타고났다면 트램의 느린 속도감을 즐기는 것도 좋을 것이다.




걷는 속도를 따라 흐르는 길 위의 풍경이 새롭기만 하다. 울퉁불퉁 닳고 닳은 돌바닥 속에 발자국을 새기며 이따금 자전거가 몰고 오는 미풍을 스쳐간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기만 했던 어느 일요일, 거리에는 어쩐지 걸어가는 사람보다 자전거 탄 사람들이 많게 느껴졌다.



운하의 물결은 는 느릿느릿 울렁이고 거리의 사람들은 할 일을 잊었다. 첨탑 아래 둔탁한 종소리가 운하가 흐르는 작은 도시를 가른다. 청아한 무쇠의 울림이 번진다. 북해로 흘러 나가는 잔잔한 물결이 오래된 이야기를 속삭인다. 용이 입가로 불을 내뿜고 유니콘이 천사의 날개를 펄럭인다. 철갑으로 무장한 기사는 첨탑에 갇힌 공주를 구하기 위해 늙은 나귀와 기약 없는 여정에 오르고, 키가 너무 자랐거나 일찌감치 성장이 멈춰버린 어떤 이는 팽팽한 밧줄을 타고 아슬한 곡예를 펼친다. 저잣거리엔 당나귀와 개, 고양이와 수탉이 연주회를 성황리에 마쳤고, 어두컴컴한 귀퉁에선 반짝이는 소시지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하루 종일 춤을 춘다. 이 모든 것을 여태껏, 지금까지도 지켜보고 있는 운하는 맥주 거품 같은 기포를 일렁이며 아무 말 없이 도시를 감싸 안는다.



시간은 흐르고 공간도 흐른다. 중세를 고스란히 간직한 겐트에선 시간이 멈춰 선 환상이 발목을 종종 잡아챈다. 그도 잠시, 얼기설기 얽힌 현대 문명이 일상의 감각을 코앞으로 되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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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나 우뚝 솟은 첨탑은 중세의 번영을 기억한다. 그날따라 하늘이 높았던지 첨탑이 닿기엔 터무니없이 낮아 보인다. 첨탑 끝 십자가의 반짝임만이 천국에 도달하겠지.





일요일의 사람들은 온화하다. 휴일이기 때문일까, 따스한 햇볕 일까 적당한 온도 아니면 습도일까. 아니면 바람. 일상의 쉼표가 내려준 작은 선물은 그대로 멋진 풍경이 된다. 이방인은 풍경 속으로 녹아들 여유가 없다. 중심가로 향하는 발길이 익숙해지면 어딘가 낯익은 안식처를 찾아 일요일의 사람들처럼 한없이 늘어질 것이다.





시간은 오후 네 시를 가리키고 어느덧 광장에 다다랐다. 왁자지껄한 군중 틈바구니로 맛있는 냄새가 맴돈다. 끼니도 잊은 채 걷기만 했더니 허기가 밀려온다.





겐트는 축제로 떠들썩하다. 망종 무렵부터 하지까지 약 2주에 걸친 여름 축제다. 야외 활동을 만끽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기다. 일 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가 도래하면, 위도가 높은 유럽 북부는 낮이 밤을 집어삼킬 정도로 환한 대낮이 이어진다. 축제가 종료되는 하지를 기점으로 유럽인들은 여름잠을 자러 산으로, 들로, 바다로 떠날 것이다.





푸드 트럭을 타고 광장으로 나온 요리사들의 손끝이 분주하다. 단숨에 한 접시가 탄생한다. 모든 것이 초록으로 빛나는 시절. 루꼴라, 강낭콩 줄기, 처빌 등 어여쁜 연둣빛이 요리의 화색을 띠게 한다. 모던 퀴진을 표방한 플레이팅이 돋보인다. 재료의 맛과 향이 조화롭다. 자연이 내어주는 본연의 맛으로 회귀하려는 요리 철학은 동시대 식문화를 관통하는 화두임에 틀림없다.





겐트에서 맛본 여러 음식의 맛과 향이 기억에서 사라진 지금,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로 흩뿌린 제철 딸기와 알싸한 민트가 그날의 공기와 햇살을 들춘다. 손바닥만 한 종이 그릇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아이스크림에 파묻힌 나무토막을 들썩이던 달콤한 기억. 시간이 아무리 흐른 들 그 맛은 혀끝에 맴돌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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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트에 온 지 이틀쯤 지날 무렵, 이곳에선 인테리어 감각을 섣불리 뽐내선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국경을 맞댄 디자인 강국 네덜란드의 영향일까, 플랑드르 문화를 선도했던 전통일까. 곳곳에 놓인 가구와 생활 용품은 무심한 듯 당연히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눈에 띄는 색채나 불편한 점거가 없었다. 축제를 즐긴 뒤, 카페에 들러 한숨 돌리며 플랑드르인의 생활 방식을 엿본다.




배도 두둑해졌고 목도 축였으니 다시 길을 나설 차례다. 도처에 설치된 공공미술은 일상을 환기하는 피사체다. 도시와 공공미술이 이토록 합치된 본보기가 있을까? 누가 만들었는지, 의미도 모르겠지만 일단 눈도장.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겐트의 슈퍼스타가 있다. 플랑드르의 심장처럼 겐트의 중앙부에 자리한 성 바프 대성당 Sint. Baafs Kathedraal 은 겐트의 명물이다. 성당 내부의 제단화를 보기 위해 관광객의 발길이 가장 많이 머무른 공간일 것이다. 성당 뒤편엔 제단화를 그린 반 에이크 형제 Jan Van Eyck의 청동상이 있다. 반 에이크라면 섬세한 필치와 심미안으로 중세 미술에 획을 그은 세밀화의 거장이자 플랑드르 예술의 선구자가 아닌가. 만약 관광을 위해 도시를 찾았더라면, 지도앱을 켜고 바프 대성당을 먼저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저 멋진 일요일일 뿐이다. 여름볕을 쬐고 있는 청동상의 아우라에 뒷걸음치며 셔터를 눌렀을 뿐, 그땐 스쳐간 곳이 바프 대성당이라는 것도, 반 에이크 형제의 청동상인 줄도 몰랐다. 제단화를 만난 건, 3년 뒤 다시 겐트를 찾은 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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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드르의 전통 가옥 파사드가 자꾸만 뒷걸음치게 한다. 느지막이 만개한 장미 넝쿨 사이로 나른한 테라스가 여름의 태양 속에 있다. 테라스에 앉으면 오래된 벽돌처럼, 희붓한 나뭇결처럼, 살갗이 벌겋게 부풀어 오를 것이다. 그러면 나는 한 꺼풀 벗겨진 채 이 오래된 도시와 동화되어 중후한 멋을 풍길 수 있지 않을까?





운하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애진의 오랜 친구가 운영하는 키오스크에 들러 목을 축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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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추럴 와인과 진저비어를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조금 더 다가선 시간들.




해가 제법 뉘였 해 질 시간이지만 하지를 향해 달리는 태양은 물러날 기색이 없다. 태양은 여전하지만 구름이 제법 몰려들었다. 플랑드르의 명물을 들라면 나는 단연코 시시때때로 몰려오는 구름과 동반한 비바람을 꼽을 것이다. 그다음은 들풀.





어느덧 숙소에 도착했다. 애진의 집이지만 2주 동안 우리 집이기도 하다. 집주인이 "Mi Casa es Su Casa"로 환영의 인사를 건네주었으니 말이다. 'Mi Casa es Su Casa' , 스페인어로 직역하면 '나의 집은 너의 집'이라는 뜻이다. 자신의 집에 머무르는 손님에게 편히 머무르라는 관용적 표현이다. 주방 벽에 매달린 오징어에 조각난 빛이 들면 으레 저녁을 차린다.



오늘은 뒤뜰이 부엌이자 식탁이다. 유월의 향기가 온몸에 퍼져 나간다.



호시절을 타고 가만히 아름다운 뒷마당에서 이방인의 서툰 말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마클릭, smakelijk! 잘 먹겠습니다!



그렇게 온화하기만 했던 일요일은 저무는 기색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