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진의 본명은 '허애진'으로 1970년대 마포에서 태어났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그녀는 홀트 아동 복지 재단을 통해 대한민국 여권을 손에 쥐고 비행기에 올랐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 이전 제5 공화국 시절, 대여섯 살쯤 되던 해였다. 그녀의 오른편엔 젖먹이 아기가 함께 타고 있었다. 아이는 무엇이 불편했는지 비행 내내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애진은 바람이 잘 통하도록 아이의 양말을 벗겨주었고, 아이는 그제야 애진을 향해 생글생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울음을 멈추었다고 했다. 파미르 고원을 넘고 카스피해를 지나는 동안 애진과 아기는 얼마간 잠이 들었으려나. 마침내 유럽 대륙에 발을 디딘 그들은 서로의 안녕을 마음속에 새기며 헤어졌다. 애진은 'Huys' 집안의 새 식구가 되었고 새아버지의 성을 따라 'Aejin Huys'의 삶을 살게 되었다. 성은 바뀌었어도 그녀의 이니셜에 변함이 없다는 사실은 그저 우연일 것이다. 꼬마 애진이 흥얼거렸던 '반짝반짝 작은 별'은 모차르트의 언어로 바뀌어갔고, 기억 속 모국어는 '우유, 장독, 고기'와 같은 원초적 감각에 머무른 채 점점 희미해졌다.
그날 이후 애진은 변함없이 겐트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말은 여전히 서툴다. 플랑드르 북서부 지방 네덜란드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영어와 프랑스어를 혼용한다. 한식 기반의 이벤트 업체 <먹자! / Mokja!>의 대표이며 케이터링과 워크숍, 다양한 협업을 꾸려가는 중이다. 그러던 중 <KIMCHI>라는 요리책을 구상하게 되었고, 아무런 연고도 없이 SNS를 타고 우리에게 연락이 닿았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청량한 6월의 바람을 타고 플랑드르에 오게 되었고 애진의 집에 머무르며 플랑드르의 일상에 다가선 것이다.
오늘은 <Mokja!> 캐이터링 서비스가 있는 날이다. 한 다이아몬드 가공업자가 애진에게 홈파티 케이터링을 요청해 왔다. 애진은 케이터링 스케줄이 책 작업 일정과 겹친 것을 미안하게 여겼다. 우리는 오히려 잘 된 일이라며 애진을 따라나섰다. 무엇보다 플랑드르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앞섰다.
오늘의 일터는 겐트의 기차역 인근, 중산층이 밀집하여 부촌을 형성한 지역의 벨기에식 전통 가옥이다. 빛바랜 상아색 파사드의 육중한 대문을 열자 대리석과 화강암, 값비싼 원목 자재로 꾸민 실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생활의 흔적은 눈에 띄지 않았는데, 파티를 즐기거나 손님이 묵는 별장으로 활용하는 듯했다.
호스트는 안트워프에 거주하며 다이아몬드 세밀 가공을 업으로 삼고 있다 했다. 겐트에서 기차로 약 한 시간 거리의 안트워프가 다이아몬드의 도시라 들은 적이 있는데, 플랑드르 지방을 타고 도는 자본의 흐름을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수납과 전시를 겸하는 육중한 책장과 나뭇결을 살린 고풍스러운 수납장 등의 가구 형태가 눈에 띈다. 조선의 사방탁자나 이층장 같이 집집마다 하나쯤은 놓인, 플랑드르인의 일상 미감이 담긴 공예품 인 듯했다. 곳곳에 놓인 플랑드르 회화와 조각은 낯선 듯하지만 심연으로 수렴되는 정서가 담긴 듯하다.
플랑드르 혹은 플랜더스라 일컫는 지역성은 루벤스를 앞세운 '회화 예술' 뒤편에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풍부한 물류를 바탕으로 한 '상업'이다. 북해와 연결된 운하를 거점으로 지리적 우세를 점한 겐트를 향해 유럽의 풍요가 몰렸고 도시는 번영을 누렸다. 그 중심엔 끊임없는 물자의 교환이 있었다. 상인들은 부를 축적했고, 명예를 위해 교회와 예술가에게 금화를 갖다 바쳤다.
벽을 맞댄 채 거리를 빼곡히 수놓은 전통 가옥은 플랑드르의 명물이다. 도로를 접한 파사드의 폭은 짧고 내부는 뒤로 길게 뻗어있다. 3-4층 높이로 이웃한 집과 벽을 나란히 맞대고 있으며 지붕은 박공의 형태를 띤다. 1층은 부엌과 응접실, 2층과 3층은 침실로 사용한다. 뒤편엔 집 넓이만 한 뜰이 깊숙이 딸려 있는데 정원을 가꾸거나 마당으로 사용한다.
잡초가 우거진 뒷마당이 폐허의 아우라를 풍긴다. 방치된 정원은 집주인의 별장임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섣부른 위화감이 들지 않는 건 겐트의 녹음이 퍽 아름답기 때문이다. 정원의 미학은 인공 조경에 있다. 인간의 손길이 닿아야 성립되는 것이다. 인접국 프랑스와 영국의 정원 문화는 세련의 극치를 달린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다듬어진다. 이곳 플랑드르에는 정원이 없다. 바람결에 내려앉은 씨앗이 절로 뿌리를 내리고 구름결에 푸른 잎사귀가 너울댄다. 사람들은 들풀을 구태여 옮겨 심지 않고, 푸르름은 계절을 거듭할수록 깊어만 간다.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손에 꼽는 겐트의 명물이 바로 들풀이라고. 그러므로 겐트의 사람들은 정원을 가꿀 필요가 없다.
파티는 오후 아홉 시에 시작되었다. 여름의 태양은 저무는 법을 잊었다. 오렌지빛으로 물든 석양이 땅 아래 흙을 파고들만치 누워야 겨우 저녁상을 차리고 사람들은 그제야 식탁으로 모여든다. 사람들이 모여 일상을 나눈다. 이곳 사람들은 풍채가 좋다. 높은 층고의 공간감이 밀도를 상쇄시킨다.
유럽인들의 젓가락질은 서툴렀지만 준비한 음식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파티가 한창일 무렵 빈접시를 마주한 호스트는 당황해하며 서둘러 배달 음식을 주문했다. 애진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클라이언트와 소통이 어긋난 것에 속상한 마음을 내비쳤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달리는 차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잔잔한 운하의 물결이 나트륨 등의 잔영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그저 웃으며 애진의 노동주에 잔을 기울였다. 겐트에서 처음으로 맛본 맥주와 감자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