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타델 공원과 M.S.K
인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무작정 말이다. 그저 거대한 나무가 줄 지워 있었고 저녁 여덟 시가 다 되어가도록 저물지 않는 태양은 따사로웠다.
하늘은 물풍선처럼 말랑거렸고 솜사탕처럼 푹신했다. 벽돌 사이에 걸린 나뭇잎 그림자는 바스락대며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려 했다.
공원 산책 중 반 아이크 형제를 만났다. 서양 예술사를 공부할 때면 조악하고 생기 없는 중세의 끝 자락 즈음 '얀 반 에이크 형제'가 혜성처럼 등장한다. 에이크 형제는 특유의 심미안과 색채로 이전 세계와 사뭇 다른 그림을 그렸다. 잿빛 중세는 에이크가 칠한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어갔다. 인상파 이전, 빛의 혁명가이자 플랑드르 예술의 시초이며 아름다움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버린 천재였다. 바로 그 에이크 형제가 겐트에 곧 당도한다는 플래카드와 조우한 것이다. 날짜를 들여다보니 9월이었다. 우리는 하지 무렵 겐트를 떠나므로 에이크와 인연이 닿지 않을 터였다. 에이크는 아니더라도 플랑드르 예술의 숨결을 느끼고 싶었지만, 미술관은 오후 6시를 기점으로 문이 굳게 닫힌 뒤였다. 그 와중 미술관 개폐 시간 안내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시각 요소만으로 완성해 '접근성'의 보편화를 엿볼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받쳐 올린 웅장한 석조 건물이 바로 벨기에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관 M.S.K (Museum Schone Kunsten)이다. 상시 전시만으로도 플랑드르 미술의 역사를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굳게 닫힌 미술관을 등지고 돌아가려는 순간 청동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한 노인의 발걸음이 발목을 잡아챈다.
참회의 형벌이 내려앉은 등허리는 땅속으로 꺼질 듯 구부정하다. 브뤼허 출신의 조각가 줄스 라게 (Jules Lagae , 1862-1931)의 대표작, <참회자 Boetelingen, 1892>
M.S.K 박물관은 겐트에서 가장 광활한 녹지인 시타델 공원에 둘러싸여 있다. 공원 초입에는 아름드리가 역동적인 청동 조각상을 품고 있다. 결의에 찬 아우성에 귀가 먹먹하다. 왼팔로 시민들을 호령하며 연설 중인 사람은 겐트의 정치가 에드몬드 반 베버른 Edmond Van Beveren(1852-1897)이다. 반 베버른은 1885년 벨기에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벨기에 노동당(BWP) 창립자이자 플랑드르 노동 운동의 대부이다. 올곧은 심성과 본보기로 겐트 시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기에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26년 제작되었다. 조각가는 Jules Pierre Van Biesbroeck.
어딘가 단추가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겐트에는 그토록 수많은 협동조합과 다양한 공동체가 건재하는지, 젊은이들의 천국이라 불릴 만큼 대학 기관 많은지, 벨기에를 통틀어 가장 급진적 진보 성향의 정치색을 띠는지. 도시 곳곳에 자리한 역사의 증인들이 겐트의 이야기를 소리 없이 들려주고 있었다.
여름의 태양은 저무는 법을 잊었다. 오렌지빛으로 물든 석양이 땅 아래 흐드러진 찔레꽃을 따라 땅을 파고 뉘엿해지면 해가 질까. 언제나 어둑하기만 했던 밤의 기억은 만화경 처럼 조각나 버렸다. 여름밤의 생경한 풍경이 플랑드르의 공감각을 다채롭게 물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