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우려고 할수록 더 외로워져
엄마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은 쓸쓸한 일이긴 했지만 '살면서 누구나 겪는 일'이라며 덤덤했어. 덤덤. 장례식을 치른 3일 덤덤했던가. 아니면 정신없이 대학교 4학년 2학기를 보냈던 그 시간만 덤덤했던가. 3년이 지나면 다 잊힌다던 어른들의 말을 믿었던 그 순간까지만 덤덤했던가.
사실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는 건 거짓말이야. 왜냐하면 엄마 없는 딸이라는 사실이 티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엄마와의 일화를 이야기하는 친구와 마주하면 나는 웃으며 다음 이야기 주제를 빠른 속도로 찾았어. 나는 요즘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는 말 외에는 친구들에게 나눌 말이 없었거든.
그래도 간혹 엄마처럼 나를 아껴주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어. 혹은 내가 그 사람들을 엄마만큼 의지했던 걸지도 몰라. 어느 선생님이 그랬고, 어느 사장님이 그랬어. 어떤 남자도 있었고, 친한 친구의 어머니기도 있었어.
그럴 때마다 난 온갖 사탕 발린 생각들도 나 스스로를 휘감았어. 엄마가 내가 너무 걱정되어 이 사람을 내게 보냈구나. 엄마는 없지만 세상에 엄마만큼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 이만큼 많구나. 내가 더 열심히 살아봐야겠다.
그렇게 설탕으로 차곡차곡 자존감을 채웠어. 그런데 그 설탕들은 보슬비 몇 방울에 금방 사라졌어. 그 설탕들은 나를 만족시키고 충족시켜주지 못했어. 그건 그 사람들이 부족해서가 아니야. 그건 절대 아니야. 내가 그 사람들에게 너무 의존했다는 것이 문제였어. 세상에 엄마는 없어. 그런데 엄마와 같이 나를 아껴줄 사람,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했던 거야. 그러나 타인은 결국 타인인 걸 깨닫는 순간 나는 더 멀리 도망가 버렸어.
그렇게 '엄마 없는 딸'이 되는 걸 온몸으로 통과해야만 했어. 그게 흉도 아니고, 나쁜 일도 아닌데. 내게 마이너스 같은 콤플렉스가 돼버린 거지. 그래서 그 콤플렉스를 잊게 해 줄 사람이 나타나면 난 너무 의지했던 거야.
결국은 다 남이야. 아무도 엄마 자리를 대신할 수 없어. 그 자리는 엔딩이 났어. 엄마의 삶이 끝맺어진 거야. 그걸 다른 누군가로 숨을 이어 붙일 수 없어. 이렇게 부정하지 않는 연습을 난 매일 해야 했어. 그걸 받아들이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리더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수긍하는데 말이야. 지금도 난 코 끝이 찡해. 대체할 수 없다는 걸 알아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