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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Nov 09. 2021

이모의 조언이 진짜였으면 좋겠어

매일매일의 불확실성과 어떤 초라함 


    나는 내가 유학 준비를 하며 이렇게 무너질 줄 몰랐다. 나름대로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CV로 옮겨 본 내 이력은 생각보다 빈 곳이 많았고, 연구 실적은 턱 없이 부족했다. 그러면 영어는 좀 괜찮냐고? 아니. 전-혀 아니라고 단언해서 말할 수 있다. 아직 GRE는 시작도 못했고, 토플은 시작한지 2개월이나 지났지만 대체 뭐가 나아졌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내가 목표로 한 토플 점수를 보통 대개 남들은 1~3개월만에 턱턱 달성한다고 하는데. 나는 도저히 그 점수에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막막하고 또 막막하고.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내 무능감에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니 근래 내 중요한 일과는 영어 공부가 아닌, 공부를 하려고 앉으면 밀려오는 나에 대한 무능감과 싸우는 일이다. 나에 대한 한심함을 느끼면서도 어떻게든 공부를 붙잡는 거. 촉박해서 불안하고, 동시에 그래서 도망치고 싶기도 하고. 내 마음이지만,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바로 내 마음이라는 걸 사실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해 혼자 노력하다 도저히 안 되면, 나는 주변인들에게 SOS를 요청하는 편이다. 나랑 얘기 좀 해줄래. 하지만 한해, 두해 나이를 먹어가며 이런 수다가 누군가에게 상당한 피로를 줄 수 있음을 깨닫고 많이 자중하는 편이라지만, 그래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날이라는 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침 일찍 스터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햇살 좋은 점심 무렵, 터벅터벅 걸으며 오랜만에 지구 반대편에 사는 막내 이모에게로 뜬금없이 전화를 걸었다. 


    우리 막내 이모로 말할 것 같으면, 나와 정말이지 많은 부분이 다른 사람이다. 수학이라고는 가게에서 물건 살 때 사칙연산이나 겨우 하는 나와 달리 이모는 어릴 때 쭐래쭐래 갔던 주판 학원에서 더 이상 가르칠 게 없으니 하산하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로서는 대체 무슨 세계인지 짐작할 수조차 없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해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 법한 세계적인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무엇보다 나는 늘 생각이 너무 많아서 모든 계획의 경우의 수를 A부터 Z까지 고민하느라 머리가 터져나가는 사람인데 반해 이모는 단순하다. 그녀의 초점은 지금이다. 혹시라도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플랜 대신, 지금 해야 할 일을 해나가고,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한다. 불확실에 대한 어떤 감정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러니 그런 이모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내가 머리 빠지게 고민했던 것들이 너무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모의 세계에서는 고민할 필요가 없는 주제들을 나는 껴안고 매일 밤을 새워가며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그러다 이모와 대화를 나누다 말고 번쩍 정신을 차리는 거다. 그러게, 내가 그걸 왜 그렇게 고민했지? 


    나는 그런 이모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 날도 나는 이모에게 '영어 공부 이대로 괜찮을까'를 주제로 정말 한참을 떠들었다. 점수가 나올까? 점수가 안 나와서 유학 준비 플랜대로 유학을 못 가면 어쩌지? 나 그럼 나이만 먹는데. 나 그러면 벌써 서른이 코앞인데. 이래도 괜찮은 걸까? 나 대체 뭐 먹고 살지? 뭐 해야 하지? 


    친구들은 하나 둘 씩 결혼을 하거나, 승진을 하고, 기술을 배워서 나름대로 사업체를 개원하기도 하고. 그런데 나는 잘 다니던 직장도 때려치고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아무 것도 보장되지 않고, 수 많은 사람들이 소리 없이 그냥 돌아오기도 하는 그 길이 가고 싶었기 때문에. 사실 지금으로서는 걱정과 불안에 짓눌려 내가 정말로 그걸 원했는지 조차 희미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산더미 같이 불어난 내 걱정과 달리 이모의 답은 간단했다. 유학 준비를 하며 보내고 있는 나의 1년은, 내가 살아왔고 살아 갈 수 많은 1년 중 하나일 뿐이라고. 그 수 많은 시간 중 그냥 1년일 뿐이라고. 현실을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보지 않으면 평생에 후회가 남을지도 모르는, 내가 하고 싶은 어떤 걸 이루기 위한 1년을 보낸다고 해서 내 인생이 망하지 않을 거라고. 


    1년 했는데 안 됐으면, 그건 그때가서 또 다시 생각하면 돼. 어느 정도 공부를 해둔 게 있으니, 일을 하면서 병행해도 되겠지. 가야할 길만 보지 말고, 2개월 동안 지나온 길도 봐봐. 너는 니가 봐야 하는 시험에 대해 이해했고, 그걸 보기 위한 노하우를 얻었고, 영어 공부를 시작했어.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는 게 아니야. 결국에 유학을 가든, 안 가든 오래 바랐던 걸 해보기 위해 거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고 필요한 거야.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는데, 또 불쑥 이런 걱정들이 올라왔다. 한국에서 여성 구직자가 서른을 넘겼을 때 발생한다는 여러 어려움과 난관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현실적인 불안과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과 비참함 따위가. 그런 두려움을 구구절절 이야기하고 있으려니 이모는 이모 자신조차도 한국에서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미국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런 불안의 맥락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살고 있던 영역을 벗어나 더 큰 세상을 보지 않으면, 영원히 알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고 했다. 단순하게는 여행을 떠나는 것부터 시작해서, 더 크게는 무언가에 도전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그 세계를 벗어나려 시도하거나, 벗어나보지 않고는 영원히 알 수 없는 다른 관점과 사고방식이 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어쩌면 치열하게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불안에 찌들어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 이모의 말은 지나친 낙관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내가 감정적으로는 이모의 조언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것과 달리, 불안과 초조감에 짓눌린 뇌는 이모의 말을 완전히 수용하는 걸 거부했다. 절반의 의심과 믿고 싶은 마음 반이 춤을 춘다. 저건 이모가 나와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사고 아닐까. 이모는 성공했으니까. 이모는 남다르니까. 


    그러면서도 절반의 나는 이모의 말이 진짜였으면 좋겠다고 절박하게 생각한다. '그 나이 먹고 대안도 없이 일을 그만 두고, 경력에 공백을 만들며 영어공부를 한다고?', '누구는 결혼한다던데', '누구는 이번에 승진했대', '서른 넘으면 취업 안 된다고들 하던데 너 괜찮아?'.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수도 없이 겪고 있으며 본의 아니게 전염시키는 뒤쳐짐에 대한 불안, 사회에서 굴러 떨어질까 전전긍긍하는 염려. 그 모든 염려는 아마 진짜일 거다. 현실의 일면이 사람들의 염려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모의 말도 정말인 순간이 있기를. 진짜이기를 바라며 오늘 몫의 공부를 하려고 애써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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