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
영화의 전개 방식이 참 마음에 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영화 초반부까지는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그로 그럴 게, 초반엔 미나토와 사오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영화 제목과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왜 '괴물'인 건데?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여기서 대체 괴물은 누구인가. 이야기 속에 분명 괴물이 있으리라. 의심스럽게 비치는 미나토인가, 아 그렇다면 괴물은 미나토를 의미하는 걸까? 근데 왜 그가 괴물이지? 나는 계속해서 괴물을 찾으려고만 했다. 당시의 난 영화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전혀 없고, 주어진 건 그저 '괴물'이라는 제목 하나였기에... 그래서 '괴물'에 집착했던 것 같다. 두 번째 시점이 나오기 전까지는.
영화는 총 세 명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의 시점이 첫 번째, 두 번째는 호리 선생,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나토의 시점까지. 본격적인 이야기는 두 번째, 호리 선생의 시점이 드러나며 시작된다. 이때, 영화의 메시지가 드러난다.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호리 선생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다시 전개되며 이전의 장면들이 하나 둘 비로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간의 혼란스러웠던 감정은 나에게 고스란히 충격으로 돌아왔다. 그건 아마 우리가 보는 세상은 단편적임을, 그래서 그 이면의 사실을 정확히 알 수 없음을 간과한 나 자신에 대한 죄책감.
이야기의 시작인 사오리의 시점에선 학교의 모든 인물이 말 그대로 악역 같았다. 학교는 학급에서 발생한 체벌 문제를 쉬쉬하려 하고, 체벌을 한 선생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그러니까 내가 완벽히 사오리의 시점에 동화된 거다. 아들의 운동화 한 짝이 없어지고, 물통에서 흙더미가 나오고. 한 번은 귀를 다쳐오기도 했는데 어느 학부모가 걱정을 안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아들의 말과 친구의 증언까지. '나는 돼지 뇌를 가졌다'니. 그러나 내가 본 건 그저 결과에 불과했다. 그것도 정확한 상황이 아닌 '말'로 전해진 결과.
하나의 사건도, 영화에서는 세 번에 걸쳐서 등장한다. 세 개의 시점으로. 그 과정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그러나 중요한 진실이 시점이 변화하며 점차 드러난다. 그 과정을 따라가며 겪는 심정의 변화, 그리고 충격. 이것이 바로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싶다. 미나토가 교실에서 난동을 부리는 장면만 해도 그렇다. 처음엔 호리 교수의 폭력이라고 생각했고, 그다음엔 미나토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괴물은 호리 교수도, 미나토도 아닌, 오로지 문제만을 찾으려 한 나 자신이었다. 괴물만을 찾으려 한 내가, 괴물이었던 거다.
결과만 본 나는 '왜' 미나토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거든. 모든 사건에는 원인이 존재하는 법인데, 나는 벌어진 사건 자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독하게 편협한 시선으로. 사오리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때 호리 선생은 나에게 있어 지독하게 나쁜 사람이었다. 변명만 늘어놓는 체벌 교사. 그러나 호리 선생의 시점으로 전개될 때 나는 나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그는 학생에게 진실한 선생이었다. 영화를 보며 호리 선생에 대한 나의 인식은 실시간으로 변화해 갔다. 누구의 시점으로 보이느냐에 따라.
'학생을 때리다니, 나쁜 선생이네, ' '아... 오해였구나'
근데 그게 참, 정말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그동안 너무 오만했구나...
만약 영화의 시점이 두 가지뿐이었다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잘 전달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두 번의 시점 변화를 통해 알려주려고 한 게 아닐까?
'너, 또 잘못 생각했어. 정말 다 안다고 생각해?'
왜냐면 사람들은 자주 같은 실수를 반복하거든. 그리고 단 한 번의 실수는 정말 '실수'라고 생각하기에. 능력이 아니라 실수. 내 자질이 아니라 어쩌다 한 번 발생한 실수. 그런데 그게 정말 '실수'였을까? 그동안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이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어왔던가
있잖아 너 그거, 정말 '실수' 맞아?
우리는 '나'의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기에 그 이면의 숨겨진 이야기는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단편적으로 바라보고 내가 겪은 모습이 그 인물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왜, 그래서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사람은 단편적인 존재가 아니다. 수많은 감정이 뒤얽혀 움직이는, 그래서 진실한 속마음 하나 알기 힘든 복합적인 존재이지. 영화는 끊임없이 나의 시선을 지적한다. 네가 본 그들의 모습, 네가 생각한 그들의 심정. 그게 정말 '진실'이 맞는가. 이미 기울어진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가.
이 장면이 너무 인상 깊었다.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거짓말을 안 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아마 아무도 없지 않을까. 거짓말은 사람의 저 깊은 내면에서 올라온 방어기제 같다. 우린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내뱉고 말지 않는가. 한 번 내뱉은 거짓말은 다시 회수하기도 어려우니, 그건 엄청난 용기를 요하는 일이기에. 그래서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다는 말이 있는 거겠지. 영화에서의 미나토도, 그리고 교장도 모두 거짓말을 했다. 그 깊이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 어쩌면 자신에 대한 죄책감을 털어버리는 혹은 악기에 깊이 숨을 불어넣으면서 해소하려는 그 방식. 그리고 둘의 대화. 여기서 난 교장도 인간임을 느꼈다. 그전까지는 인간이라고 생각을 안 했냐고 물어본다면 뭐, 그렇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사오리처럼 교장에게 '당신은 인간입니까?'라는 질문을 몇 번이나 던졌으니까. 근데 이 장면. 전까진 아이들을 위한다는 교장의 말이 참 거짓처럼 느껴졌었는데, 진실을 고백한 미나토를 대하는 교장의 태도를 보며 어쩌면 그 말이 진실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미나토에게 하는 말은 참 따뜻했으니까.
'몇 사람만 누릴 수 있는 건 행복이라 하지 않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걸 행복이라고 한단다'
영화의 매력이 또 여기에서 드러난다. 인물들이 다 입체적이야. 그런 인물들을 보면 볼수록 자꾸 나를 반성하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인물의 단편만 바라보고 또 내 멋대로 재단하고 있는 나를. 쟨 저런 사람이구나, 나쁜 사람 아니면 착한 사람. 이분법적으로. 그래서 더 인상 깊었나 보다. 영화를 보던 내내 가졌던 '나쁜 교장'이라는 이미지가 깨지는 순간이라서. 동시에 나의 오류를 인지한 순간이라서.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진 두 인물이 악기로 말하는데, 숨을 불어넣으면서 풍성하게 울려 퍼지는 악기 소리가 마치 말하지 않아도 말한 것 같은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순간의 분위기가 참, 좋다.
아이들은 결국 죽었을까, 살았을까.
어떤 결말이든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회의 때 묻은 시선에서 벗어나, 정말 순수하고 자유롭게,
그들의 세상을 향유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