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의 회귀

[도서] 삼체 시리즈

by 양수경

인류는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물리 법칙을 발견해 냈다. 그러나 그 법칙들이,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믿음이 일순간 무너지게 된다면, 우리는 완전히 무(無)로 돌아가게 된다. 그건 바로 인간의 과거이자, 우주의 탄생, 결국 無知로의 회귀.


SF 소설 <삼체>는 물리학자들의 집단적 실종, 그리고 자살로 이야기의 막을 연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의미의 유서.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모두 하나의 결과를 향하고 있다. 물리학은 존재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것은 알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인간에게 있어 물리 법칙은 삶의 법칙이자, 기반이다. 그런데 물리학이 존재한 적이 없다, 라니. 물리 법칙의 붕괴에 제일 큰 영향을 받는 건, 과학에 무감한 나보단 아무래도 물리학자들일 것이다. 무언가 우연이라 줄잡을 수 없는 사건이 그들의 신념을 흔들었고, 그렇게 그들의 세계엔 걷잡을 수 없는 돌풍이 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돌풍은 머지않아 지구를 뒤흔들 것임이 분명했다.


총 세 편의 이야기로 구성된 삼체는, 방대한 우주의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그려낸다. 수많은 과학적 가설을 기둥으로 삼고, 상상력으로 가지를 뻗쳐간다. 그리고 그 모든 기반엔 삼체문제 (The three-body problem)가 있다. 물체가 세 개 있는 문제이자, 해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문제. 책에선 그것이 ‘세 개의 태양’으로 비추어진다. 예측 불가능하기에 답이 없는, 그리하여 그들이 벗어나야만 했던 공간으로.


<삼체>는 과학 이야기이자, 무엇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서술이기도 하다. 무지에서 나오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 인간의 결정. 어쩌면 인류의 존망을 결정하고, 우주 전체를 뒤흔들고, 뒤늦은 후회는 무의미한, 그런 결정을 결정해야만 하는 순간들의 반복. 이때 살고자 하는 인간의 몸부림,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자신의 생존이 걸린 문제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가 되고, 그 순간 세계를 보호하던 윤리적 장벽이 얼마나 하찮은 것으로 전락하게 되는지. 그러나 우리는 윤리를 저버린 그들을 함부로 지탄할 수 없다. 윤리와 생존의 갈림길에서, 과연 주저 없이 윤리적 선택을 할 인간은 얼마나 될까.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든, 어떤 선택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이 인류의 생존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도. 아무도 선택의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다. 마치 삼체문제처럼, 완벽하게 떨어지는 해를 구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그들의 선택이었다. 결국 수많은 삼체문제들의 본성이, 소설 그 자체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우주에 대해 무지했다. 지구 중에서도 내가 발 밟고 서 있는 이 동네만이 나의 세계인 줄 착각했다. 무수히 많은 은하 속 태양계, 그중에서도 지구, 그리고 대한민국. 내가 보는 세계는 작은 점일 뿐이었다. 작디작은, 점 하나. 삼체는 우주에 대한 기막힌 상상력을 보여주며 그로 말미암아 나에게도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별이 보고 싶어 졌고, 우주가 궁금해졌다. 드넓은 우주에서 나란 존재는 얼마나 미미한지, 점으로 보일 나란 존재를 끊임없이 되새기는 과정이기도 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하늘은 우주를 다 담지 못한다. 밤하늘 밝게 빛나는 별은 지구와 몇 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우리가 보는 빛은 수백만 년 전의 빛이다. 빛의 속도로 몇십 년을 가야만 도달할 수 있는, 그 공간을 우리는 볼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은 찰나이다. 깜빡이는 별빛같이, 눈 감았다 뜨면 사라질 우리의 이야기. '우주가 나를 바라본다면 먼지의 세포, 정도 되려나. 보이지도 않겠지' 생각했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왜인지 대단하게 살아야 할 것 같았는데, 그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 같아서, 안심했다. 그리고 동시에 제사날로 궁금해졌다.

"우주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물론 우린 영영 알 수 없겠지만)


덧붙이자면,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삼체>가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됐는데, 곧 2-3부도 나온다고 한다. 책 내용이 많아서 부담이 되거나 읽어볼까 고민하는 분들은 드라마 먼저 보고 결정해도 괜찮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인물 관계 정리에 도움도 되고, 개인적으로 책 보다 이해하기 쉽다. 다만, 책에서 초반에 주인공들이 하는 ‘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참 흥미롭고 신선했는데, 이는 드라마보단 책이 훨씬 더 방대하고 세밀하게 서술하니까 세계관을 확실히 이해하고 싶으신 분들은 책을 나중에라도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각설하고,

삼체를 읽어라! 삼체를 읽어라! 삼체를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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