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사운드 인사이드
작: 박천휴
연출: 박천휴
출연: 서재희, 강승호
제작: 라이브러리컴퍼니
장소: 충부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일시: 2024.08.13. (화) ~ 2024.10.27. (일)
내 안의 소리를 들어라
'인생은 혼자다'라는 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요즘, 현대인들에게 고독은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타인의 고독은 물론이고, 스스로의 고독도 마땅한 것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과연 자신의 고독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고 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하물며 우리는 언젠가 타인의 고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는 고독했던 두 인물이 문학으로 소통하며 종국엔 서로의 마음 깊은 곳에 놓여있던 고독을 마주하게 되는, 누구도 쉽게 알 수 없는 내면에 관한 이야기이다. 예일대 문예창작과 교수인 '벨라'와 학생 '크리스토퍼'의 2인극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2020 토니 어워즈에서 작품상을 비롯한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2020 외부 비평가상 6개 부문을 수상하며 호평을 이끌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문학으로 매개된 두 인물의 고독과 관계의 불확실성을 살펴보려고 한다.
연극은 벨라가 마치 한 편의 소설을 낭독하듯 지나온 나날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시작된다. 자신의 어머니가 그러했듯, 암 2기를 선고받은 벨라는 예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러나 그녀의 주변은 적막과 고독으로 점철된 듯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런 예고 없이 크리스토퍼라는 학생이 벨라에게 면담을 요청한다. 소설을 쓰고 있다는 그는 자신은 이메일과 SNS, 그리고 노트북을 극도로 싫어한다며 면담 약속을 먼저 잡을 것을 요청하는 벨라를 무시한다. 소설로 타자기로 쓰고 있다는 그의 일상엔,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쩐지 당연한 고독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곧 크리스토퍼는 벨라에게 자신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벨라는 그의 첫 독자가 된다. 그렇게 문학을 매개로, 쉽게 정의 내리기 어려운 그들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고독했던 벨라와 크리스토퍼는, 고독한 서로를 만나 자신의 내면에 점차 깊이 다가간다. 그리고 동시에 서로의 깊은 내면까지도. 문학에 대한 사랑은 상대에 대한 사랑과 혼재되어 나타나고, 마주한 고독은 감정의 혼란을 불러온다. 그것이 '사랑'인지, 아니면 그저 문학이라는 공동의 관심사를 가진 두 인물이, 서로에게서 발견한 고독으로 인한 '유대감'인 건지. 연극에서는 그들의 감정선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는다. 크리스토퍼는 벨라에게 분명 '누군가를 만지는 것도, 누군가가 자신을 만지는 것도 싫어한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내, 그는 벨라의 볼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댄다. 볼과 손이 맞닿고, 그들은 서로를 향해 무언의 감정을 전달한다. 지극히 자연스럽게. 그 순간, 그들의 관계는 확실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사운드 인사이드>는 인물의 감정선을 확실히 드러내지 않으며 관객이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본래 감정은 그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을 만큼 애매모호하다. 작품에서의 불확실은 관객에게 불편함을 주지만, 극은 자신의 깊은 고독을 인지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을 벨라와 크리스토퍼에 투영해 드러낸다.
크리스토퍼와 벨라의 관계가 깊어짐과 동시에, 벨라의 암은 악화한다. 고통스럽게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린 벨라는, 이내 곧 고통 없이 자살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녀는 세 가지의 약물을 사용해 죽음에 이르는 방법을 발견해 내고, 자신의 죽음을 도울 믿을만한 조력자로 크리스토퍼를 떠올린다. 어쩌면 마지막 순간이 될지도 모르는 저녁 식사 자리. 그곳에서 벨라는 자신의 죽음을, 크리스토퍼는 완성된 소설을 생각한다. 이내 벨라는 그에게 힘겹게 말을 꺼낸다. 나의 죽음을 도와달라고. 편안하게 죽을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러나 크리스토퍼는 자신이 쓴 소설을 먼저 읽고 평가해 줄 것을 조건으로 벨라의 죽음을 돕겠다고 답한다.
주인공의 이름이 '크리스토퍼'인 그의 소설은 마치 그 자신의 삶을 투영하고 있는 듯하다. 소설은 말 줄임표 세 개로 끝이 난다. '...' 어디까지 진실인지, 목적과 이유조차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주인공이 집을 나가며 끝나는 소설의 결말은, 어쩐지 크리스토퍼의 결말과도 닮아 있다. 그는 벨라 죽음의 조력자가 되지 못했다. 죽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난 벨라는, 책상 위에 그대로 놓인 약병 두 개를 발견한다. 이미 크리스토퍼는 사라졌고, 얼마 후 벨라는 그가 눈밭 속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벨라의 부탁으로부터, 그녀의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하던 고독을 비로소 직면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벨라의 고독으로부터 그 자신의 고독까지도. 그에게 있어 '소설의 완성'은, 깊은 고독의 발견이자 인정이었을 것이다.
<사운드 인사이드>에서는 삶을 살아가는 벨라를 뒤로한 채, 하얀 눈이 펑펑 내린 나무 사이 눈밭에서 홀로 서 있는 크리스토퍼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마치 이승과 저승 사이, 감히 정의 내릴 수 없는 고독의 공간을 한없이 걷고 또 걷는 듯하다. 완전한 고독의 공간이자 그 자신이 마주한 내면의 공간을 소설 속 인물이 되어, 소설과 동일하게. 그리고 동시에 극의 초반부터 계속 언급했던, "자기 작품을 인식시키기 위해선 자살하거나 SNS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그의 말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는 소설의 첫 독자인 벨라에게 자신이라는 소설의 결말을 계속해서 들려준 게 아니었을까? 제목부터 첫 문장, 그리고 마지막까지 온몸으로, 온 힘을 다해 그는 자신의 고독과 외로움을 드러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SNS를 싫어하는 그에게, 자신의 작품이 처음으로 인식되는 순간의 결말은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는지도.
사소한 발걸음 소리, 물속에 잠긴 듯한 음향 효과,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그리고 끊임없는 고독을 표현하는 정적. <사운드 인사이드>는 배경의 사소한 소리까지 놓치지 않고 드러내며 내용을 풍부하게 표현한다. 한편, 조명의 사용은 배우의 심리를 극대화하며 극의 몰입을 유도하는데, 빠르게 깜빡이는 조명은 시간의 흐름을 실감 나게 재현한다. 벨라를 압박하는 듯 그녀를 중심으로 점점 줄어드는 조명은 그녀의 초조하고 불안한 심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며 관객에게 인물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기도 한다. 또한, 이 작품은 원형으로 돌아가는 장치를 사용해 벨라와 크리스토퍼가 나누는 소설로의 몰입을 극대화한다. 해당 장치는 작품 속에서 다양한 방면으로 사용되는데, 시간의 변화 그리고 공간의 변화를 드러냄과 동시에 같은 시간 흐름 속에서 두 인물의 공간적 차이를 보여준다. 분명 한 장소이지만, 관객은 마치 분리된 느낌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사운드 인사이드>는 풍부한 연출로 두 인물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후반부 배경 영상에 등장한 벨라와 크리스토퍼의 모습을 통해 관객은 오로지 그들의 표정과 감정에 깊이 빠져든다. 벨라에 의해 전해지는 크리스토퍼의 말, 대사의 공백을 통해 우리는 그의 고독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벨라가 전하는 '그'의 말도, 그의 '감정'도 '온전한 그의 감정'인지 관객은 알 길이 없다. 마지막까지 극은 '확실한' 결말을 남기지 않는다. 고독의 인식과 불확실성. 작품은 끊임없이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의문을 남기며 질문을 던질 뿐이다. 우린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듯. 그렇다면 이제 불확실한 것들은 불확실한 채로 남겨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