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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Jul 20. 2019

아무튼, 무협

 "강호의 도의가 떨어진 지 오래다." <영웅본색>의 대사가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뉴스를 보면서, 주먹을 쥐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다. 저건 아니지라며 울분을 토하다가도,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간들이 있다. 그런 나에게 위안을 주는 도피처 중 하나가 '무협'이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주된 이야기는 영웅 활동, 혹은 자경 활동을 하는 '어벤저스'의 국제기구 산하 조직화 찬반에 대한 각 영웅들의 갈등이다. 아이언맨은 책임론을 들며, 시스템 속에 영웅이 포함되길 지지하고, 캡틴 아메리카는 시스템의 경직성 때문에 영웅은 독립적인, <저지 드레드>와 같은, 개개인이 기관인 '판사'와 같이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다. 


 왜 '무협'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가져왔는가. 무협의 본질적인 이야기가 '캡틴 아메리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를 모사한 가상 세계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속에서 나는 아이언맨의 주장에 동감하는 편이었다. 세계 시민의 총의를 가진 집단과 그 아래에 무력은 통제되어야 하며, 시스템에 귀속되는 것이 옳다고 믿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세계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경단 활동이 헌법에 명시된 미국과 같은 국가에서 영웅 서사가 인기를 끄는 것처럼, 종교가 아닌 규범체계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었던 동양, 특히 중국의 역사에서 '무협' 같은 서사가 인기를 끄는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무협의 시초라고도 이야기되는 사마천의 '자객열전'과 같은 내용들은 시스템에 반하는. 그렇지만 바람직하다고 말해지는 이야기를 한다. 이른바, '강호의 도의'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물론, 모든 장르가 그렇듯이 대중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발전한 한국의 무협은 이제 와서 '강호의 도리' 와는 동떨어진 다양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신무협의 조류 이후 다음 세대를 열어낸 작품 중, <묵향>의 경우에는 '도의'라고 할 만한 모습을 별로 보여주진 못한다. <비뢰도>는 무협의 세계 속의 시트콤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고. 작금의 대다수의 무협은 자기 것은 건드리면 안 된다~라는 식의 현대적인 도의를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중국, 혹은 동양적인 배경. 외부의 기를 내재화하여 마법같이 싸우는 사람들. 사제 관계 혹은 혈연관계 중심으로 탈국가화된 무력집단의 등장. 집단 간의 대립 등의 요소는 무협의 장르적인 특징이지만, 그 안의 이야기는 이제 당대의 독자들의 요구에 맞추어 여러 가지로 분화되어 나가고 있다. 기존의 복수극, 대의에 따르기 위한 이야기보다는 카타르시스의 극대화를 위한 연출이 많으며, 한국에서는 민족주의적 색채를 띈 작품이 많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강호의 도의'를 이야기하는 무협의 이야기는 끊기지 않고 있으며, 장르의 근간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 촌부의 <천애 협로>를 읽으며, 아직 이 야이 가는 '무' 뿐만이 아니라 '협'을 이야기하는 데에 적격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 무협은 '무'와 '협'의 조어이다. 무공, 싸움 등 장르적인 특징을 말해주는 '무'와 다르게, '협' 은 장르의 주제를 말해준다. 캡틴 아메리카가 나는 시스템과는 달리 활동하는 영웅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강호의 도의'가 바로 '협'이다. <자객열전> 속에서, 진시황을 암살하려고 하는 행위의 의도도, <군림천하>의 진산 월이 사부의 유지를 이어 '군림천하' 하기 위해 나서는 강호행도 모두 '협'이다. 


 그런 이야기를, 나는 좋아한다. 부모의 복수를 위해, 개인의 영달을 위해 개성이 강한 주인공들이 각자의 힘을 길러서, 세상에 도전하는 이야기. 특히, 많은 경우 '무협'의 주인공들은 세계가 정해준 규칙 안에서 개인의 노력을 통해서 힘을 기른다. 국가의 슈퍼 솔저 프로젝트, 감마선 사고, 외계에서 주어진 힘과 달리,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의 세계를 좋아한다.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협을 펼칠 수 있는 능력이 극대화 되는 세계. '무협' 그 안의 이야기는 대체로 개인적이다. '협' 은 '정의'와 같이 모두에게 달리 존재한다. 따라서, 계속되는 복수극 사이에서 누군가는 그것을 극복하기도, 누군가는 매몰되기도 한다. 그 안의 드라마든 작가의 역량에 따라서 비극적이기도, 희극적으로 풀어내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들. 개개인이 자신의 개성을 극대화하여 부딪히는 이야기를, 나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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