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멋대로 생각하기 #01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진 않는다. IQ 보다 EQ가 중요하다고 미디어가 말한 지는 오래되었다. 우리는 왜 애플을, 닌텐도를 못 만드나고 할 때도 그렇고. 창의성은 시대에 조직이 개인에게 요구하는 필수 덕목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꽤 흘렀고, 조직에 속한 지 수년이 지난 지금, 생각이 조금 정리되어 글을 쓰게 되었다.
조직에는 창의성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70억 이상의 인간이라는 변수가 있고, 거기서 집합체로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는 그 변수들에 적응하며 조직은 나아가야 한다. NGO라면 모금을 위해서, 활동에 서명을 받기 위해서 창의성이 필요하다. 회사라면 더 많은 돈을 벌고, 영속기업의 전제를 지키기 위해 창의성이 필요하다. 70억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변동성 속에서 영속적인 캐시카우는 존재할 수 없으니까.
그렇다면 창의성이란 무엇일까. 존경하는 지인이 책 <머신, 플랫폼, 크라우드>를 읽고 말한 정의가 인상 깊었다. "창의성: 맥락에 맞는, 기존과는 다른 효과적인 결과를 만드는 능력, 혹은 그런 결과물들의 특성" 이 문장을 남긴 글에서 그 지인분은 다른 마술적이고 신비로운 여러 가지 인식을 거둬내고 이렇게 정의를 해보자고 제안을 하였다.
그 의견에 동의를 한다. 창의성에는 여러 가지 인식이 있겠지만, 세태에 맞추어(snac culture) 더 짧고 쉽게 창의성을 정의해보자. 새로운 무언가. 그러나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것은 결과이다. 우리가 '창의성'을 경외할 때는, 우리가 생각지 못한 방식 등으로 '더 나은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창의성을 결과로 판단하는 이야기를 깔아 두고, 생각해본다. 창의성은 어떻게 MECE(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 하게 나눠볼까? 나누는 이유는 단순하다. 창의성이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하는 영역은 많다. 하지만 그 모든 영역에서 창의성은 조금은 다르게 다뤄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술의 영역의 창의성. 말 그대로 창의성, 참신함 자체가 점수가 되는 세상이다. 피겨 스케이팅에서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기술을 선사한다거나. 그 결과가 예술점수로 이어지고, 메달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 본연적 가치는 '창의적인 결과물' 그 안에 있다. 몹시 흥미로운 영역이지만, 아쉽게도 이 영역은 오늘 다룰 영역이 아니며, 앞으로도 내가 다룰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내가 관심이 있는 영역은 수단으로의 창의성이다. A에서 B로 가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상상하는 능력, 아니 애초에 B로 갈 필요가 없지 않냐고 말하는 능력 말이다. 애플이 아이팟을, 아이패드를 내놓는 목적은 그 자체의 창의성을 인정받고 싶어서가 아니다. 결국은 회사의 수익을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목적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가 플래시 드라이브가 아닌 하드 드라이브를 넣은 mp3 player, 그리고 아이폰까지 나아갔다.
가장 최근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방법론. 디자인 싱킹, 혹은 서비스디자인을 생각해보자. 목적 세팅의 영역을 제외하고 (Double Diamonds에서 define까지) 창의성은 수단으로 발휘된다. 이런 문제가 있다. 이걸 어떻게 고칠 것인가(How might we) 하는 고민들의 집합. 그를 통해서, Keep the change(신용카드로 결제 시, 특정 단위 아래 거스름돈 영역을 저축해주는 서비스) 같은 결과물들이 나온다.
꼭 돈벌이만 있는 건 아니다. 의료 영역에서 창의성은 이렇게 발휘된다. MRI는 큰 소리를 내고 밀폐된 공간으로 사람이 들어가야 하는 기기이다. 때문에 아이들은 이 기기를 두려워한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아이들에게 이것이 '모험'이라고 인지시키는 것이다. 벽면을 예쁘게 꾸미고, 지금 해적선에 잠입한다는 식으로 스토리텔링을 어린 환자들에게 전달하는 서비스. 아이들을 덜 무섭게 한다는 목적에 부합했고, - 사실 우는 아이로 인한 딜레이가 많이 사라져서 수익성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위 두 구분이 정말 MECE하진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창의성이 수단이라는 점이 대다수의 조직에서는 특별히 틀린 말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직원에게 창의성을 요구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라는 말이다. 대체로는 더 적은 비용을 들여서 더 큰 수익을 가져오라는 말과 같고.
그럼 조직원의 창의성은 어떤 식으로 발휘되는가. 쉽다. 수단으로의 창의성의 시작은 목적을 이해하는 것이다. 목적을 쪼개고 쪼개서 어디로 가는지 맥락을 우선 이해해야 하고, 최종 결과물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결과물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세부 목적을 짜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창의성의 시작점은 굉장히 논리적인 영역에 머물게 된다.
그다음은? 여러 가지 답변이 있겠지만 핵심은 Trial & Error의 반복이다. 전술한 서비스디자인 / 디자인 싱킹을 보자. 그 방법론의 핵심은 결국 많은 데이터 수집(관찰, 인터뷰 등)을 '정성적'으로 진행하여 아직 숫자로 볼 수 없는 영역까지 가는 것과 더불어 '반복'이다. '가'의 인터뷰 결과로 무언갈 만들었더니, '나' '다'라는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럼 어떻게? 다시 하는 것이다.
또한 아이디어 역시 무지막지하게 많이 내야 한다. 정확한 아이디어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정확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논리적인 결과 만으로도 세상이 움직였고, 세상이 창의성을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창의성을 표현하는 수식어 중 유명한 게 무엇인가? '생각도 못해본 방식' 이런 것 아니겠는가? 그럼 생각도 안 해 본 것을 생각하려면? 생각을 엄청, 많이 해야 되지 않겠는가. 창의성의 결과는 이렇게 수많은 아이디어의 무덤 속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조직원 개개인의 창의성이 얼마나 허무하게 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개개인이 훌륭해도, 제도의 뒷받침 없이는 조직원의 창의성이 조직의 창의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경영대에서 주야장천 배우는 3M의 케이스가 그런 것이다. 그들의 방법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구글처럼 80:20(기존의 일 80, 새로운 일에 20을 투자하라는 문화)이 100:20으로 120을 요구한 것처럼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조직이 조직원의 창의성을 기반으로 창의적인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관련한 여러 가지 기법과 도서가 시중에 많이 널려 있다. 물론, 거의 읽지는 않았다. 모든 조직은 각자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전술한 바와 같이 하나의 사람은 하나의 변수인지라, 모든 조직에 들어맞는 방법론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어떤 기조는 생각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어떤 식의 '목적지'가 있는지. 그리고 그 수단에 있어서의 창의성은 각자의 조직이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래는 내 생각에 조직의 창의성을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다.
안정성
<오리지널스>에서는 놀라운 이야기가 하나 등장한다. 애덤 그랜트가 역설하길, 올인 (all-in) 하는 창업자보다는 안전망이 있는 창업자가 더 성공적이라고 한다. 왜냐고? 돌아갈 곳이 없어서 열심히 할 순 있지만, 그래서 더 과감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로프 없이 번지 하는 것은 미친 짓일 뿐이고, 결국은 로프를 만들고 난 다음에 뛰어야 한다는 말이다.
창의성은 기존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따라서 과감해야 하는데, 이를 주도하는 이가 스스로 불안하면 과감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이런 거다. 질문을 하면 욕을 먹을 것을 아는데 질문을 할까? 내 아이디어가 틀리면 혼나는데 아이디어를 낼까? 이런 간단한 문제를 좀 어렵게 꼬아서 써보면, 불안 속에 아이디어는 꽃피지 않는다 라고 할 수 있겠다.
불안 속에 아이디어는 꽃피지 않는다 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생각보다 많은 혁신은 안정적인 대기업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무어의 법칙이 그렇고, 황의 법칙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를 단순히 자본과 인력의 투입의 결과물로 보는 것은 부당한 대우라고 생각한다. 물론, 크리스텐슨 교수가 지적한 파괴적인 혁신, 혁신가의 딜레마(innovator's dillema)에 갇힐 순 있다. 하지만 이것이 안정성의 탓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또한, Innovator's dillema의 해결책 중에 하나도, 사업단위별 조직 분할이니, 안정성의 문제보다는 Legacy의 조건들이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문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분리된 조직이 본 조직의 support 아래에서 신규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이니, 성공의 가능성이 더 높을 확률이 있고. 그러니 실패를 견고하게 떠받칠 수 있는 하부구조가 있는 - 최소한 신규 사업 프로젝트가 실패해도 내 월급이 잘리지 않는 구조가 되어야 한단 말이다.
여유
디자이너 짤방(meme) 중에 그런 게 있다. 마감(deadline) 이 창의성의 원천이라고. 물론 맞는 말이다. 사람은 닥치면 꽤나 활발하게 머리를 쓰니까. 하지만 조직 단위에서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서 무작정 마감을 늘리는 것은 좋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내 생각에 마감은 창의성의 원천이 아니라, 마지막 화룡정점에 해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충분히 빈둥거린 후의 마감과, 계속해서 바쁘게 움직이고 다른 일을 하다가 진행하는 마감은 다르다는 말이다. 뇌과학에 대해 제대론 모르지만, 어떤 주요한 과제를 받았을 때, 뇌는 직접 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때에도 여러 가지 과제에 관련된 사고를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게, 실제로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꽤 그럴싸하게 들렸다. 불현듯 찾아오는 유레카의 순간.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 가지 않았다면 모르지 않았을까?
김태호 PD와 나영석 PD를 생각해본다. 쓰러져가는 M본부를 지켜야 했던 전자와 K를 박차고 나와 CJ에 둥지를 튼 후자. 후자는 보다 빠르게 한국 예능판의 새로운 창의성을 가져왔다. 나는 더 많은 돈을 지원하는 제작사 - 방송사에 둥지를 튼 효과라고 본다. 그리고, 그 지원은 나영석에게는 충분한 여유를 만들어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서유기>는 독특했지만, 완전히 새롭진 않았다. 하지만 <꽃보다할배>, <삼시세끼> 같은 작품은 한국 TV 예능판을 뒤바꾸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물론 이런 아이디어들이 꼭 나영석 PD의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많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어쨌든 대표자는 나영석 PD니까..) 김태호 피디도 휴식기를 가지고 돌아와서 새로운 작품 <놀면 뭐하니>를 하고 있는데, 이 역시 몹시 창의적이라고 생각한다.
재미
창의성은 힘든 과정이다. 아이디어의 무덤이란 말은, 개인에게 엄청난 실패가 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 과정 속에서 개인의 감정은 소모당하고, 번아웃의 위험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창의성이 발휘되는 과정에서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재미는 조금은 확장된 의미이다. 본질적인 재미와, 보상이 결함 되었달까. 보상이 있어야 그 과정이 재미있지 않은가? 엄청 조야하게 말하자면 창의성의 과정은 충분히 게이미피케이션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결과물. 회사 입장에서도 중요하다. 하지만 조직 안의 개인에게는 수개월에서 몇 년간의 과정이며, 법인 격체 혹은 그와 유사한 조직과는 별개로 삶을 살아가는 개인에게는 몹시 긴 시간이다. 그것을 버텨내는 힘은 일 자체에서 오는 재미이다. 다만,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 유심히 관리하지 않는다면 지치는 일이라는 점을 조직은 명심해야 한다. 정말 머리를 쥐어짜는 수준의 고민을, 잦은 실패 속에서 진행해야 한다. 웬만한 멘탈리티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안정성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리워드가 확실해야 한다. 또는 그 과정 자체가 재미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원이 버티지 못하고, 자연히 조직의 창의성은 고갈될 것이다.
나는 경영의 구루도 아니고, 가방끈 긴 석학도 아니다. 때문에 본 글에서 쓰인 여러 개념은 오독의 결과물이거나, 헛소문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실험을 하거나 문헌연구를 하지도, 다만 못해 간단한 통계자료 하나 보질 않았다.
이 글은 그냥 일개 조직원의 수년간 고민의 결과일 뿐이다. 신입 사원에서부터, 남들과는 다른 일을 하고팠던 흔한 사람. 그 사람이 회사에서 여러 가지 장벽에 부딪히면서 뚜렷한 결과물을 못 내는 것을 경험하고 난 후의 생각이다. 사실, 이 외에도 회사 내에서 나오는 아이디어의 저장, 부서원-조직원 간의 아이디어 공유 및 장려 문화 등 여러 가지 생각이 지금도 세어 나오고 있다. 그래서 이것은 조직에게 기대하는 바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런 조직이 갖춰진다고 내가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것이라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어쩌면 그냥 운칠기삼이지 않을까 하는 순간도 많이 있고. 다시 말하지만, 70억이 넘는 변수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과학의 법칙을 빼고 정확한 것을 바라는 것은 욕심일 테니까. 그럼에도, 저런 조건이라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창의적인 결과물을 위해 노력할 수 있진 않을까란 생각은 하게 되었다. 아니, 적어도 저 정도 원칙은 있어야 노오오오오력은 할 것 아닌가...
2019.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