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멋대로 분석하기 #06
친애하는 Dr.Yu 그리고 Jang 님의 페이스북 글을 읽고.
내 멋대로 분석하기 시리즈는, 대체로 TV와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글입니다. 이번에는 그냥 최근에 떠오른 생각들을 무작위로 넣어 보았습니다.
제가 뭐라고 존경하는 TV님께 사망선고를 내리겠습니까. 하지만 삼성전자가 세로를 만들고, 거기에 혁신상을 주는 시대에 TV 형님의 힘이 예전 같진 않다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아재스런 이야기를 해볼까요. 키패드가 살아 있는 시절에 이런 폰이 있었습니다. <가로본능> 콘텐츠는 규격화된 영역에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당연히 화면은 가로 여야지, 영상에 최적화되는 것이었지요. 5년 전에 학교 프로젝트를 할 때에 세로로 동영상을 찍어온 사람들에게 이놈들이!라고 외치던 친구가 기억나네요.
그런데 이제는 TV가 세로가 됩니다. 오호. 유튜브에서 딩고 라이브니 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세로 콘텐츠로 재미를 본지가 몇 년 안되었는데, 역시 삼성은 다르다고 할까요. 빠른 혁신입니다.
물론 이게 결정적인 'TV 형 한물갔어'의 증거는 아닙니다. TV 중에 디바이스 영역의 변화일 뿐이니까요. 의미심장만 할 뿐이지요. TV가 영화관의 비율을 좇아가고, 핸드폰이 TV의 해상도를 좇아가는 와중에 다른 변화가 하나 있었다 정도일까요.
하지만 확실한 것은, 전술했던 '세로형 콘텐츠' 만의 맛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슬 라이브나 이런 콘텐츠를 볼 때의 느낌은 '영상통화'와 유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 영화 첫 상영 때 사람들이 도망갔던 경험이 이제는 '세로' 콘텐츠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 같단 말입니다. 재현된 가상이 현재에 착시를 주는 것이지요. 시야각이고 뭐고 나발이고, 우리는 모바일 폰의 '세로' 화면의 경험에 강렬하게 지배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찾아보면 나오겠지만 TV 보다 가깝고, 나만을 위한 콘텐츠가 차고 넘치는 시대에 모바일 폰 사용 시간이 TV를 추월했지 않을까 합니다. 자연스레, 수년 전 '웹툰'의 부상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내가 선택하고, 나만 집중해서 볼 수 있는 방식의 콘텐츠 소비에 익숙해진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게 유튜브로 이어질 생각을 왜 못했지? 괜히 심술 나서 5년 전의 제 자신을 탓해봅니다.
결국 TV의 죽음은 매스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죽음 중, 게이트 키핑의 죽음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블록체인이 쏘아 올린 작은 공, '탈집중화' 요 말입니다. 진짜 탈집중화가 될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개인화 콘텐츠가 강화될수록 TV 채널 방식의 콘텐츠 소비는 줄어들 것이 당연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OkbyVfDKOc
쇼미더머니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더그라운드를 빌빌되던 힙합을 붙잡고 오버그라운드에서 놀라고 끄집어낸 현대 한국 미디어의 첨단을 달리는 힙합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입니다.
슈퍼스타 K 이후, 여러 포맷을 거쳐서 힙합 서바이벌이 대박을 칩니다. <미스 트롯> 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트로트 자체가 시장이 적었던 것도 아닐 뿐더러, 그 효과가 증명이 되려면 2,3가 성공한 다음을 봐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쇼미는 확실히 시즌 8까지는 이슈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가수다>처럼 옛 가수들을 발굴하기도 하고, 음원 차트를 좌지우지합니다. 각종 행사에도 연결되고, 음악을 기반으로 매스컴이 하는 일들은 이슈도 잘되고 파워풀합니다. 장사가 잘되니까, 자동차 회사도, 의류 회사도 대놓고 PPL을 잘 놓습니다. 그러니 맘먹고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2년 전쯤인가, 방심위 홈페이지에서 쇼미 의결서를 보면서 웃음을 참지 못한 기억이 나네요. 쇼미 제작진의 배짱과 더불어, 방송 심의 자체가 올드하단 생각도 들고요.
각설. 이런 열풍은 씨제이 미디어를 벗어나, 지상파-공중파로 넘쳐흐릅니다. 그중에 인상 깊은 사례가 있는데, <킬빌>이라는 예능 프로그램 이야기입니다. 빌보드를 타깃으로 한국 힙합 뮤지션들을 모아놓고 하는 경연이었습니다. 힙합 + 나는 가수도 정도일까요.
그런데 유튜브를 보다 보니 다른 흐름도 읽힙니다. 마미손도, 영 앤 리치 레코즈도 비슷한 포맷으로 쇼미를 흉내 내고 비틀고 있습니다. TV는 언더그라운드에 있던 영역을 오버그라운드로 강제로 끄집어 왔습니다. 힙합이 상술에 지배되지 않는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굳이 TV의 지배를 받지 않는 시대가 왔단 생각도 들죠.
드렁큰타이거가, '드렁큰타이거'라는 랩 네임을 내려놓았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까지를 떠올려보면, 홍서범의 <김삿갓> 이후로, 랩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통해서, 듀스를 통해서 계속 있었지만 언제나 대중음악의 하위문화였습니다. 드렁큰타이거가 나오고, 아역 스타 YDG가 힙합을, 아이돌 출신 은지원이 힙합을 들고 나오면서 조금은 대중화되었지만 여전히 하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 당시 한국 힙합의 대다수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오버그라운드 X까 라는 마인드로 가고 있었는데 말이죠.
시대가 바뀌었고, 힙합 아이돌로 기획된 BTS는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지요. 그리고 <쇼미 더 머니>가 있었습니다. 서바이벌로 충분히 재미를 본 M.net의 시도에 힙합 조상님들, 그러니까 MC Meta와 이현도(aka D.O)가 올라탑니다. 그리고 판도가 바뀌었죠. 컨트롤 비트에 맞추어 서로를 디스 하는 것까지, 모두가 미디어로 노출되고 많은 것이 콘텐츠화되었습니다. 힙합은 <쇼미 더 머니> 이후로 더 이상 하위에 있다고 말할 것이 아니게 되었네요?
결국 시청률을 좌지우지하는 채널의 게이트 키핑을 넘어온 힙합. 물론, 하위에서 사람들에게 충분히 퍼져서 TV에서 집중해주지 않아도 올라올 내용이었습니다. M.net 은 대세에 올라탄 것일 뿐일지도요. 하지만 자녹게에서 놀던 블랙 넛이 붙잡은 것은 문스윙스의 뱃살만이 아니었습니다. 쇼미더머니, 심지어 K-Pop을 이끈다는 남자 아이돌과 정면 매치가 선사되는 21세기 한국의 콜로세움이란 콘텐츠.
그런데 이제, 드렁큰타이거는 방송사에서 불러주지 않아도 - 마지막 앨범의 홍보를 위해 감스트의 개인 방송에 찾아 나갔습니다. 그로 인해서 앨범이 잘 팔렸는진 모르겠습니다. 힙합씬에 더 이상 <쇼미 더 머니>는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티스트에게 최소한으로 필요한 팬은 1,000이라는 글을 <유튜브 레볼루션>에서 읽었습니다. 그 정도라면, 이제 홍대에서 신촌까지 깔아놓은 힙합 리듬 속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TV 채널, <쇼미 더 머니>라는 프로그램보다는 다시 - 문스윙스, 슈퍼비 같은 콘텐츠들이 직접 올리는 영상과 그 유통채널만 있다면 말이지요.
아, 그걸 요즘 유튜브라고 하긴 합니다.
여러 글에서 JTBC <캠핑 클럽>에 카메라맨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했었습니다. 관련 기사에서도 언급을 해주죠. MBC의 새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지>는, 카메라맨이 없음을 정면으로 내세웁니다. 출연진들의 릴레이 카메라를 통해 일상을 담아서, 출연진의 집에서 VCR 형태로 보는 예능입니다. 출연진이 곧 카메라맨이고, 현장 PD이고, 작가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돌아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강조합니다.
캐릭터가 곧 제작자인 방송. 1인 미디어란 그래 왔습니다. 2008년 이래로 시민기자를 자처하던 이들은 스스로 VJ이고, 앵커이자 리포터이며 편집자였고 CG 담당이었습니다. 내 이름을 걸고 한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함과 동시에 적어도 '나'라는 프레임을 현장에 참여시킴으로써 기존의 저널리즘과 달리 참여형 보도를 진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생방송(Live) 이 많다는 점도 그렇지요.
<가상현실을 말한다>라는 책을 읽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해 들은 인상 깊은 구절이 있었습니다. 그 책을 읽은 이의 전언에 따르면, 인스타그램에 #nofilter라는 말이 돌아다니는 것이 현실이란 가상현실의 안티 체제로 존재한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명제에 대해서 특별히 동의도 부정도 못하겠습니다만, 프레임 속에 세상을 담는 사람들에게는 생각할 거리가 좀 있다고 생각합니다.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 이후, 사람들은 재현된 영상(motion picture)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한 세기 넘게 학습해왔습니다. 이제는 기존의 TV 채널이 프레임을 가지고 영상을 편집하는 것이, 문지기(Gate keeping)의 역할이 얼마나 심각한 지 알게 되었고, 개인 미디어의 날 것 (생방송)이 더 좋은 메시지를 주는 것이 아니냐는 반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리얼에 천착하기 시작합니다. Fake MC를 욕하던 래퍼들보다 더 거세게, 조작된 방송에 항의를 합니다. <정글의 법칙> 이 정말 리얼하지 않다고 욕을 합니다. 자연히 PD 들은 날 것에 가까운 인터넷 방송을 모사할 수밖에 없어집니다. 구성만 남고, 대본을 사라집니다. 이내, 구성도 사라지게 됩니다. <놀면 뭐하니>가 어느 정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태호 PD는, 그 구성조차도 캐릭터에게 어느 정도 맡겨본 실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유재석'이라는 캐릭터는 한국 리얼 버라이어트 예능의 중심에 있는 존재이기에, 기존의 구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그림을 보여주고 있긴 합니다만, 뭐 이제 시작일 테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실제로 찾아가 볼 수 있는 것을 소재로 삼은 것 - <수요 미식회> <짠내 투어> <뭉치면 뜬다> <골목식당> 들은 이 최전선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됩니다. 우리가 유재석과 게임을 할 수는 없지만, <와썹 맨>에 나온 핫플레이스는 가볼 수 있으니까요. 과거에는 <VJ특공대> <생생정보통>에서 다루던 방식이었다면, 이제 거기에 셀럽이 좀 뿌려지고, 예능 자막이 더해진다거나 전문가의 리뷰가 툭툭 얹혀지면서 마! 이게 리얼 콘텐츠다!라고 자랑하고 있는 것 같고요.
네, 그러니까 그 영역도 사실 TV가 꼭 해야 하는 영역은 더는 아닌 것 같단 생각은 듭니다. 잘 풀리지 않았던 TV 프로그램에서 독립한 <와썹 맨> 같은 걸 보면요.
사실은 24/7 편성 기반의 채널. 그 한계나, 라이브의 중요함 같은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요즘 정신이 혼미하게 지내는 나날이 많아서 중구난방입니다.
그러니까, 콘텐츠 컨테이너도 TV 중심에서 모바일로 가고 있고, 탈집중화된 영역에서도 콘텐츠는 자생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는데 이게 요즘 - 그리고 아마 예전부터 있던 - 취향인 '리얼'에 부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렇게 쓸 수 있는 걸 쓸데없이 길게 늘여놓은 걸 보니, 스스로 논지에 별로 확신이 없었던 것 같네요.
그래도 내 멋대로 분석은 언젠가 계속됩니다.
2019.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