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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스푼

씀 어플로 글쓰기, 첫째 날

2020년 11월 23일, 벗어나다

by Jamin

햇살이 동공을 찌르기라도 하듯 쏟아지는 날이었다. 아무 소리가 없이 잠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여름 햇살. 꺼진 몸의 엔진에 시동을 걸기 위해 카페인이 필요하지 않은 날. 갑갑하게 옥죄던 습기가 지난밤 바람에 날아가버리기라도 한 듯 뜨거운 공기에 텁텁함이 옅었다.

가벼운 운동으로 몸을 풀고, 간단히 씻고 어젯밤 챙겨둔 옷가지를 입고, 짐을 챙겨 집 밖을 나선다. 아직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거리에는 출근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 그들과는 반대로 향한다. 사람들이 일터로 떠나는 시간의 동네 카페. 취미로 글을 쓰기에 나쁘지 않은 곳이다.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뉴스들과, 지겨울 정도로 열정적인 댓글들을 흘려보내면서 홀짝인 커피가 반쯤 남았을 때야, 트랙패드에서 키보드로 손가락이 옮겨졌다. 늘, 시작이 어려웠다. 왜 글을 써보려고 했지? 생각이 찰수록 잔인 비워가고, 랩탑의 키보드 커서는 징그럽게 깜박였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아 거슬린다. 놀리는 것만 같다.

글을 쓴다는 것은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의 발현이다라고 첫 문장을 적는다. 더럽다. 무엇을 정의하는 글쓰기는 딱히 좋아하진 않는데, 하지만 지금 맘에 있는 문장이라곤 저런 것 밖에 없네. 아이스커피는 떨어졌고, 얼음만 뎅구르르 하는 컵을 들어 입안으로 차가운 것들을 쑤셔 넣는다.

다른 누구들과는 다르게 글을 쓴다고 딱히 생각이 정리되지는 않는 타입인데. 모처럼 휴일에 난, 왜 이렇게 또 서성이나 같은 진부하고, 베껴온 문장들만 가득한 화면을 보다 그냥 덮고 자리를 벗어날까, 어쩔까 하는 생각에 턱을 괸 채로 다리만 떤다. 카페에 사람들이 하나 둘 오는 걸 보면 점심시간이다.

붐벼가는 카페에 커피 한잔으로 죽치는 내가 고깝지는 않은지, 아니면 별로 매상에 신경을 쓰지 않는 건물주 카페 주인인지. 고맙게 무시해주는 덕분에 몇 천 원에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이렇게 앉아는 있지만. 이렇게 글이 나오지도 않고, 쓸 것도 없는데 왜 굳이 난 글을 쓰러 여기에 온 걸까.

그냥. 진짜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평소에 하던 생각들. 그 밖의 무언가 아지랑이로 피어난 예쁜 말들을 모아서 내 글을 엮어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물론, 이렇게 오늘도 그러는 건 실패다. 예쁘지 않더라도 붙잡을 말들이 있었으면 모르겠지만 도망쳐 나온 이에게 미소 지을 뮤즈는 없나 보다.

랩탑을 덮고, 짐을 다시 싸면서 그래도 몇 자 적었다는 위안을 한다. 소설이라도 써볼까, 아무도 보지 않을 소설 같은 거.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지만 그냥 그래 보면 재밌을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에 조금은 따가운 햇살을 잊을 수 있었다. 내 만족을 위한 글인데, 너무 멋져야 한다, 예뻐야 한다는 굴레에 갇혀 있었던 걸까. 진짜 벗어나야 하는 건 되려 이쪽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어떤 글을 써볼까. 원래 좋아하던 글들. 습작도 안되었던 설정을 가지고 판타지를 써야 하나. 조사를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니다. 또 이렇게 일하듯 접근한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쓸 수 있는 걸 써봐야지, 기대에서 벗어나서 써야지 재미있을 것 같다. 글 말고 내가. 다음번에 나올 수 있을 때는 그렇게 해봐야지. 아무런 계획도 없이, 틀리지 않는 계획을 들고 나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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