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3일의 기록
비가 온다. 비를 좋아해 본 적이 있었나, 딱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귀찮은 건 질색이다. 비가 오면 해야 할 게 늘어나니, 좋아할 리가 만무하다. <봉신연의> 만화책에 나온 ‘노자’와 같이 ‘나태슈트’를 만들고야 말겠다고 생각한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존재하면서 '무위'험이야 말로 필멸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태도가 아닌가 하는 따위의 중2 중2 한 나날들.
그렇지만 옷을 챙겨 입고 우산을 들고 터벅터벅. 빗소리를 이어폰 노랫소리와 중첩시킨 리듬에 맞춰 걸어본다. 아이고, 다 젖는다. 귀찮아서 방수가 잘 되는 신발을 신지 않았는데, 뭐 어쩔 수 없지. 회사로 와선 말려두고, 맨발에 슬리퍼로 갈아 신는다. 약간의 해방감도 있는 편. 귀찮지만 커피도 내린다. 풀 오토매틱 머신이라지만 역시, 여전히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내가 필요한 것은 커피가 아니라 잠에서 깨고 회사에서 글쓰기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지, 이 과정은 아니니까.
통상적으로 결과는 컨트롤할 수 없으니, 과정을 설계하는 것이 맞긴 하다. 결과란 다양한 조건들이 맞아야 나오는 것이고, 결정적으로 시간이 지나야 만 하니까. 투입을 바꿔서 결과를 도출해야지. “과거가 결정되었기에 미래는 결정되었다” 는 <퓨쳐 워커>의 이야기. 관측이 결과를 고정한다는 양자역학을 영상 하나로 이해시키겠다는 과다한 야망의 어제 유튜브 썸네일을 떠올려본다. 흥미롭다, 어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아니, 유튜브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만 하고, 늘 하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는 하는데.
어제는 운동을 사실상 빼먹었다. 8,000여 걸음을 걷긴 했지만, 바라는 대로 운동하지 못했고. 밤에는 심지어 스트레스에 못 이겨 아이스크림을 먹고 말았다. 어느 공간에서 약간의 현훈증, 눈앞이 흐려졌고 목이 간지러웠다. 어쩌면 그저께 운동을 하다가 목, 승모 근육들이 뭉치면서 여러 가지로 두뇌 활동에 영향을 주는 것일지도, 아니면 고지혈증 약을 복용하면서 생긴 부작용일지도 또는 고지혈증 약에 대한 부작용을 설명하는 유튜브를 본 탓일 수도 있겠다. 약하디 약한 사람의 몸이여, 그리고 마음이여.
그러나 비가 오는 소리를 그래도 즐기려고 하며. 공짜 워터밤이네! 하며 걸었다. 비가 오지 않는 다른 날에 비해서 출근하는 사람의 패션, 표정을 관찰하긴 어렵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어폰 속 신나는 노래와 온몸에 튀는 차가운 빗방울들이 꼭 축제와 같을 순 없나 하는 생각도 하고. 회사에 와서 다시- 커피를 내리고 할 일을 준비한다.
서장훈 씨의 텔레비전 강연이 떠오른다. ‘즐기면서 한다는 거 다 뻥이에요, 치열하게 해야 해요’ 분명 다 본 것 같은데 기억에 잘 남진 않는다. 오케이, 특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과정은 보통 어렵고, 행복이란 특수 상태이긴 하다. <멋진 신세계>와 같이 ‘소마’에 절여진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리고 보통 성취는 고통을 수반하는 편이긴 하다. 아프지 않으면 청춘이 아니라고 말한 ‘김난도’ 교수는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불필요하게 공격을 많이 받긴 했다. 아프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뭐 별반 다르진 않았을지도.
그럼에도 억지로 웃기 연습을 멈추지 않아 본다. 어제는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와 고통 속에서 쉽진 않았다. 그러나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는다’ 보다는 ‘태도가 기분을 결정한다’로 넘어가는 수련을 한다고 생각해야지. 아, 물론 아프면 병원 가고 슬프면 울고, 화나면 소리 질러야 할 때는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분명하게 ‘이건 아니라고 생각해’라는 말은 해야겠지만,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즐겁기 위해 노력하고, 억지 미소로 시작하여 실제 웃음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본다.
카도노 코우헤이의 <나이트워치> 3부작 중 2편인데,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책에서 달에 거주하는 로봇이 말하길 ‘즐겁지 않으면, 즐겁게 한다’라는 식의 아주 쉬워 보이고 힘든 사람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가격하고픈 말을 하는데, 그럼에도 나는 그게 내 인생의 모토이자 철학으로 삼아 버렸다. 오, 되게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오케이. 요즘 유튜브에서 본 것처럼 나의 느낌은 다양한 요인으로 결정된 무언가이고. 태도는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이라면, ‘즐겁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해야지.
한 유튜브인지 인스타그램 릴스인지, 우울할 때는 ‘왜 우울하지’ 보다는 ‘어떻게 하면 덜 우울할까, 즐거울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좋다는 걸 보았다. 당당하게 그 인용구 그대로 팀원에게 안내하기도 했는데, 나 스스로가 먼저 실천할 일이다. 일이 왜 많지? 고민한다고 일이 줄어들진 않으니까, 그러나 어떻게 고민하면 어찌 저지 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어쨌든 일을 마친다는 것은 순간의 사건이고 일을 하는 것은 연속적이니까 - 다시, 중요한 건 꺾여도 다시 웃으며 하는 그 마음이 아닌가 싶은데.
데프트가 그 말을 할 때 기분은 어땠을까. 사실 정확한 워딩은 기자의 것이었지만, 그런 식의 표현을 하는 스포츠 선수들은 운동을 할 때, 연습을 할 때 마냥 즐거울 것인가. 가끔 티브이로 보이는 영국 프리미어리거들의 훈련 장면은 꽤 즐거워 보일 때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숨이 차도록, 근력이 다하도록 움직이고 거기서 나오는 고통과 그 이후 분비되는 여러 호르몬 속에서의 만족감. 그리고 높은 연봉과 팬들의 사랑이 버무려져서 - 그러니까 과정은 고통이지만, 그것을 감내하고 즐기는 것 아니겠는가.
결국은 해낼 것이다, 혹은 무엇이라고 앞으로 나간다는 믿음. 자기 확신과 자기 확언이 중요하다. 제리 양인가 하는 중국계 미국인이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그런 말을 했다. 자기 확신이라니, 우리 부모님은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라는 식으로. 오케이, 어쩌면 서구 문명의 어느 시점에서의 발 빠른 성장은 거기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겸손인 중요한 가치이긴 하지만 - 난 된다라는 근거 없는 믿음들. 그 태도가 결정한 어떤 것이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그 배경에는 일신교, 유일신 전통에서 오는 신이 보듬어 줄 것이고 믿음에 보답할 것이라는 배경과 나의 열심히 삶 자체가 신에게 받치는 경배라는 청교도적인 관습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까 UMC 가 말한 것처럼 ‘생각이 많아지면, 힘들어지는 것’이고. 좀 더 단순화해서 노력할 수 있는 기반 - 그러니까 기천년에 걸쳐 이뤄지만 기독교라는 가스라이팅이 인류사의 발전에 큰 해악도 주었지만, 저런 발전의 토대, 문화를 만들어내지 않아나 하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어찌 되었건 동양에서. (물론 비교의식에 대한 밈은 서구권에서도 발견은 되는 것 같긴 한데) 순응적인 문화와 자기 확신보다는 검열에 빠져서 - 무한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코피를 흘려가며 공부를 했던 나는, 보다 자유로운 대학이라는 곳에서 길을 잃었었다. 어라, 이제 뭐 하지? 목적의식이 사라진 지점에서 보낸 아까운 시간들이 있었는데. 뭐 딱히 후회를 하진 않지만 아쉽긴 하지. 가끔은 열받기도 하고. 그러나 어쩔 수 없었는데 여기서 다시. 우리가 왜 를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이 지점이지 않나.
왜 살아야 하지? 왜 더 고생해야 하지? 나는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현재 시점에 대해서는 어떻게에 집중해야 하지만, 사이먼 시넥이 <나는 왜 일하는가>에서 말했듯, 나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이유에 대해서 더 고민해야 한다. 특히, 도달한 적이 없는 어떤 상태로 가기 위해서는 거기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니까, 스스로를 코딩해야 한다. 나라는 사람이 제품이라면, 서비스라면 그 의미는 무엇인가? 삶은 태도와 별개로 원래 힘들고 힘들다. 뭐 즐기려면 즐길 수 있어도, 혹은 올드 머니를 받은 누군가에게는 쉽더라도 그런 대상은 여기서 논외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그것이 비교적 뾰족해진다면, 노력에 수반하는 고통은 나의 선택이 되고 따라서 캘리 클락슨이 노래했듯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 대충 이런 느낌으로 이어질 것이다. (사실 다른 더 예전의 가수가 부른 원전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진 않는다) 고통은 나의 즐거움이라는 격언을 외치는 기사단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휘긴경의 <더 로그>가 떠오르는데, 고통이 마조하스트적인 자향을 가진 사람이 아닌 이상 즐거움일리가 있나 싶은데, 그들에게는 그들 나람의 목적이 있고 따라서 고통을 즐겨야만이 거기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 않았나 하는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여전히 약간의 두통이, 살짝 안압이 올라간 듯한 느낌을 받고 있는데, 어쩌면 이게 비로 인한 증상이기도 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원래 비 오면 아픈 것이 나이 듦의 증거이지 않은가. 예전에도 힘들었지만 갈수록 쉽지는 않다. 유재석 씨가 금연을 하면서 생각한 것, 선택과 집중.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덜 좋아하는 담배를 이제는 끊어야겠다고 다짐한 순간을 떠올려보고. 또 그가 진행하는 <유퀴즈>에 등장한 ‘박진영’ 씨가,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20시간 금식을 하면서 아, 배고파 배고파, 죽겠다, 죽겠다를 계속했다는 이야기와 그럼에도 자신이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로 무대 위에 올라가서 공연을 마치고 나서 가지는 행복감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음, 역시 너무 아프면 그냥 병원을 가는 게 맞지만, 그러나 그러한 종류의 고통은 감내하고 이겨낼 필욘 있겠다. 하지만 그 선택이 어렵겠고. 또 성공의 경험이 별로 없는 입장에서는 또 복잡하기도 하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작은 성공을 쌓고, 이런 노력이, 이 고통이 나를 어디로 이끌 것이라는 확신을 심도록 훈육하는 게 좋긴 할 텐데, 이미 늦은 이 시점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런 글쓰기를 통해서 다시 나를 코딩할 수밖에 없겠지.
밖엔 비 오고, 머리는 약간 아프고. 할 일은 쌓여 있고, 이번주 일정은 생각만 해도 귀찮은 상황이고. 존재론적인 고민도 가끔 찾아오는 2023년이지만 그럼에도 더 웃으려고 노력하고, 더 친절하게 사람들을 대하려고 노력해야지. 그것이 어디로 이끌지 확신을 가지는 것은, 음…. 위의 말은 취소. 잘 모르겠다. <뉴스룸>에서 맥킨지가 윌에게 하는 평가, ‘그는 절대 확신하지 않아’라는 말. 그래, 그런 태도는 중요하지. 그럼에도 확신에 찬 것처럼 걸어야겠지만 확신은 필패일 뿐. 대신 그 의심 속에서도 웃으며, 그래도 내가 세운 가설을 실험해 볼 뿐.
그렇지만 비는 역시 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