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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프로야구 KBO의 관중 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티켓값’이 주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반면, 대형 뮤지컬이나 최신 게임을 즐기기 위한 비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러한 단편적인 현상들은 어쩌면 우리 시대의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풍요의 시대, 우리는 과연 제대로 ‘놀고’ 있는가?
놀이(Play)는 단순한 여가나 오락이 아니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 개념에서 보듯, 놀이는 인류 문명의 발생 동력이자, 개인의 자아실현, 창의성 발현, 사회성 함양에 필수적인 인간 본연의 활동이다. 로제 카이와 같은 학자들이 설파했듯, 놀이는 그 자체로 고유한 질서와 가치를 지닌 인간 삶의 근본 영역이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놀이는 본연의 의미를 잃고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첫째, 놀이는 끊임없이 상품화되고 있다. 친구들과 규칙을 만들어가며 즐기던 골목길 놀이는 사라지고,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프로 스포츠, 정교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디지털 게임, 고가의 장비가 필요한 취미 활동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놀이는 자발적인 즐거움의 과정이기보다 소비해야 할 상품, 혹은 경쟁에서 승리하고 과시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린다. P2E(Play to Earn) 모델의 등장은 놀이와 노동의 경계마저 허물며 이러한 경향을 극단으로 몰고 간다.
둘째, 놀이의 비용 장벽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KBO와 뮤지컬의 대비처럼,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놀이의 영역은 줄어드는 반면, 특정 놀이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경제적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이는 결국 ‘놀이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경제적 여유에 따라 경험할 수 있는 놀이의 질과 범위가 달라지고, 이는 사회적 격차를 여가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킨다.
셋째, 우리는 ‘더 강한 자극’을 향한 끝없는 추구에 내몰리고 있다. 동네 친구들과의 소박한 놀이 대신, 미디어와 SNS가 제시하는 ‘힙한’ 문화, 더 새롭고 강렬한 경험을 찾아 헤맨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놀이를 통해 휴식과 재충전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한 경쟁과 소비 압박 속에서 탈진(Burnout) 상태에 이른다. 소셜 미디어는 다양한 소통을 가능케 하는 듯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알고리즘과 인플루언서에 의해 소수의 트렌드로 관심이 집중되는 ‘중앙집중화’ 현상을 낳으며 이러한 피로감을 가중시킨다.
이러한 ‘놀이의 위기’는 단순히 개인의 여가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건강한 놀이의 부재는 스트레스 해소 능력 저하, 정신 건강 악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삶의 의미와 즐거움을 찾지 못한 이들이 도박이나 마약과 같은 파괴적인 탈출구에 의존하게 만들 위험을 높인다. 과거 중국의 아편이나 현재 미국의 펜타닐 위기는 단순한 약물 문제를 넘어, 희망을 잃고 건강한 대안을 찾지 못한 사회의 깊은 병리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부익부 빈익빈’으로 상징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이러한 절망감을 더욱 심화시키는 배경이 된다.
궁극적으로 놀이의 위기는 공동체의 위기로 이어진다. 함께 어울려 놀며 자연스럽게 형성되던 사회적 유대감은 희미해지고, 각자도생의 고립감은 깊어진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필자는 그 답이 ‘놀이 공동체’의 복원에 있다고 본다. 스포츠 클럽, 취미 동호회, 학습 공동체, 마을 축제 등, 공동의 즐거움을 매개로 자발적으로 모여 교류하고 연대하는 ‘놀이 공동체’는 파편화된 개인을 연결하고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다.
물론, 바쁜 현대 사회에서 놀이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놀이 안전망’ 구축이라는 사회적 투자가 필요하다. 이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3S 정책처럼 국민을 우민화하는 수단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경제적 부담 없이 다양한 놀이에 접근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필수적인 사회 인프라여야 한다. 공공 놀이 공간 확충, 저렴하고 질 높은 프로그램 개발, 지역 기반 활동 지원 등이 포함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놀이 공동체 활동에 참여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과 실질적인 일-생활 균형 보장은 공동체 부활과 놀이 회복을 위한 핵심적인 전제 조건이다.
AI가 인간의 노동을 상당 부분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는 우리에게 ‘무엇으로 살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생산과 효율성 너머, 삶의 의미와 행복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그 답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활동, 바로 ‘놀이’와 ‘관계’ 속에 있을지 모른다. 이제 우리 사회는 경제 성장 지표만큼이나 ‘잘 노는 사회’, ‘함께 어울리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중요한 시대적 과제로 삼아야 할 때다. 더 늦기 전에, 우리의 ‘잃어버린 놀이터’를 되찾기 위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와 실천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