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Proejct (376/365)(+11)
365개의 글.
2025년을 마무리하며 내 브런치 통계를 들여다본다. 사실 그보다 더 많이 썼다. 물론 매일 기계처럼 당일 생산한 것은 아니다. 미리 써서 '예약 발행'을 걸어두는 시스템의 힘을 빌렸다. 하지만 끊기지 않고 1년을 채웠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처음 시작은 꽤나 현실적이고 건조한 목표였다. "웹소설 작가로 먹고살려면 하루 5,000자는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정도의 '글쓰기 근력'을 키우려면 맨땅에 헤딩할 순 없었다. AI든 뭐든 써서 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365일의 기록으로 남았다.
지난 1년은 단순한 글쓰기 훈련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와 AI 사이의 치열한 '스파링(Sparring)' 기록이자, 급변하는 기술의 파도를 몸으로 겪어낸 시간이었다.
지난 1년간 AI 모델들의 발전 속도는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연초의 AI가 단순히 내가 던져준 정보를 잘 정리하는 '똑똑한 비서' 수준이었다면, 하반기의 AI는 섬뜩할 정도로 예리한 '동료', 혹은 나를 뛰어넘는 '경쟁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처음엔 그저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는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녀석들은 맥락(Context)을 이해하고, 행간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A를 말하면 B를 유추하고, 때로는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C라는 관점까지 제시해 올 때가 있었다.
"이건 내가 쓴 건가, 저 녀석이 쓴 건가?"
내가 쓴 초안과 AI가 다듬어준 글을 나란히 놓고 보면, 확실히 AI의 손을 거친 글이 논리적이고 탄탄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묘하게 불편했다. 마치 누군가 내 얼굴을 사진관에서 아주 예쁘게 보정해 준 것 같은 느낌.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이질감.
그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AI의 성능이 좋아질수록, 역설적으로 '인간인 내가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승패를 가른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AI가 글을 다 써주면 작가는 뭐 하냐"고 묻는다. 직접 365일간 부딪혀보니 답은 명확했다. AI는 '대답'을 잘하는 기계지, '질문'을 하는 존재가 아니다.
AI에게 단순히 "글 써줘"라고 하면 누구나 쓸 수 있는 뻔한(Cliché) 글만 뱉어낸다. 교과서적이고, 윤리적이며, 지루할 정도로 올바른 소리들. 재미도 감동도 없는 텍스트 뭉치일 뿐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뻔함에 균열을 내는 것이었다.
"너무 교과서적이야. 비유를 섞어서 비꼬아 봐."
"이 논리는 너무 평범해. 반대 사례를 들어서 역설적으로 접근해."
"독자가 읽다가 멈칫할 만한 질문을 던져봐."
AI가 똑똑해질수록, 나 역시 더 날카로운 지시(Prompt)를 내려야 했다. 그것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는 것과 같았다. 연주(작문)는 AI가 기가 막히게 잘한다. 하지만 어떤 곡을, 어떤 템포로, 어떤 감정선으로 연주할지 결정하는 건 온전히 지휘자인 나의 몫이었다.
결국 AI 시대의 글쓰기는 '쓰는 행위(Writing)'에서 '설계하고 지휘하는 행위(Directing)'로 변화하고 있었다.
1월의 내 글을 다시 읽어보면 투박하다. 12월의 글은 문장에 리듬이 있고 시야가 넓어졌다. 혹자는 묻는다. "그게 정말 당신 실력이냐"고.
솔직히 답하겠다. 순수 100% 내 문장력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100% 이 글에 책임을 진다. AI가 쏟아낸 수많은 문장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고, 내 의도와 다르면 과감히 삭제하고, 부족하면 내 경험을 채워 넣은 것은 나다.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시스템이다.
[읽기 → 생각 → 대화(AI와) → 정리 → 발행]
이 파이프라인이 내 몸에 체화되었다. 이제 책을 읽으면 자동으로 AI와 토론하고 싶어진다. 영화를 보면 즉시 리뷰의 뼈대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 시스템이 내 '두 번째 뇌'가 되었다. 내 색깔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AI라는 도구를 통해 더 선명하게 '증폭'된 것이다.
2026년을 앞둔 지금, 누군가 "AI 시대에 어떻게 글을 써야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AI를 경쟁자로 두세요. 그리고 매일 싸우세요."
도구로만 쓰면 의존하게 된다. 적으로만 보면 거부하게 된다. 그 중간, 나를 성장시키는 가장 강력한 스파링 파트너로 삼는 것. 그것이 내가 365일을 통해 찾은 답이다.
AI가 뻔한 소리를 하면 되물어라. 훌륭한 답을 내놓으면 훔쳐서라도 배워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멈추지 말고 반복하라.
나의 2025년은 AI와의 즐거운 스파링이었다. 기술은 더 발전할 것이고, 녀석들은 더 똑똑해질 것이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 싸우는 동안 나 역시 더 강해졌으니까. 2026년에도 이 즐거운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