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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 도장에 처음 등록한 날을 기억한다. 샌드백을 향해 주먹을 꽉 쥐고 온몸에 힘을 주었을 때, 코치는 다가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힘 빼세요. 어깨가 굳으면 주먹이 안 나갑니다." 시간이 흘러 골프를 배울 때도 똑같은 말을 들었다. "그립에 힘 좀 빼세요. 그렇게 꽉 쥐면 채가 안 던져집니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힘을 빼라니, 그럼 어떻게 강하게 칠 수 있단 말인가?' 이 의문은 단순한 기술적 질문이 아니었다. 우리 뇌에 깊이 각인된 생존 본능과 관련이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중요한 순간에 몸을 단단하게 만든다. 위협을 마주할 때 근육을 긴장시키는 것은 수십만 년 동안 우리를 살아남게 한 진화적 전략이다. 뻣뻣한 몸은 포식자의 이빨이나 적의 주먹으로부터 우리를 조금이라도 더 보호해주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중요한 순간'은 호랑이와의 대결이 아니다. 프레젠테이션이고, 면접이고, 골프 스윙이다. 생존이 아니라 수행(Performance)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우리의 원시적 뇌는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중요한 회의 앞에서도, 첫 데이트 앞에서도, 우리 몸은 마치 맹수를 마주한 것처럼 경직된다. 이것이 바로 모든 역설의 출발점이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힘을 빼라'는 조언은 마치 경전처럼 반복된다. 초심자에게 이 말은 늘 모순처럼 들린다. 강하게 치고 싶은데 힘을 빼라니, 멀리 보내야 하는데 힘을 쓰지 말라니. 우리는 흔히 '힘을 뺀다'는 것을 '대충 한다'거나 '약하게 한다'는 뜻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세계 최고의 타자들은 배트를 휘두르는 순간 손의 압력을 거의 느슨하게 풀어낸다. 무하마드 알리의 잽은 마치 채찍처럼 빠르고 부드러웠다. 일류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은 건반을 누르는 순간 외에는 거의 힘이 빠져 있다. 이들은 게으르거나 무기력해서 힘을 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강력한 힘을 만들어내기 위해 힘을 빼는 것이다.
물리학 공식 F=ma(힘은 질량과 가속도의 곱)를 떠올려보자. 강력한 힘(F)을 내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내 몸의 질량(m)을 온전히 실어야 하고, 그것을 빠르게 휘두를 가속도(a)가 붙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온전히 싣는다'는 표현이다. 복싱의 크로스 펀치를 생각해보자. 주먹의 무게만 싣는다면 기껏해야 500g에 불과하다. 하지만 발에서 시작해 엉덩이, 허리, 어깨를 거쳐 주먹으로 전달되는 운동 에너지에는 당신의 전체 몸무게 70kg이 실린다. 이것이 질량(m)을 극대화하는 원리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우리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면 이 두 가지 변수가 모두 훼손된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어깨 관절이 잠기고, 상체와 하체의 연결이 끊어진다. 발에서 올라온 힘이 어깨에서 차단되어 주먹까지 전달되지 못한다. 70kg이 실려야 할 주먹에 팔뚝 5kg만 실리는 것이다. 질량(m)이 급격히 감소한다.
동시에 뻣뻣한 근육은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 긴장한 근육은 수축과 이완의 사이클이 느려진다. 마치 녹슨 체인처럼 움직임이 둔해진다. 가속도(a) 역시 떨어진다. 결국 F=ma라는 냉정한 공식 앞에서, '빡' 하고 힘을 준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가장 약한 상태로 만들고 마는 것이다.
골프에서 이것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아마추어 골퍼들은 공을 멀리 보내고 싶은 욕심에 그립을 꽉 쥐고 팔에 힘을 잔뜩 준다. 그 결과 손목이 경직되고, 클럽 헤드의 속도가 오히려 떨어진다. 반면 프로 골퍼들은 그립을 "새 한 마리를 잡듯이" 부드럽게 쥔다고 표현한다. 새를 죽이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하지만 날아가지 않을 정도로만 잡는 것이다. 이 절묘한 긴장의 균형이 클럽 헤드 속도를 극대화하고, 결국 가장 먼 비거리를 만들어낸다.
이것을 물리학에서는 '에너지 전달 효율'이라고 부른다. 시스템 내부의 마찰이 적을수록, 에너지 손실이 적을수록, 같은 에너지로 더 큰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힘을 빼는 것은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 마찰을 제거해 에너지 전달 효율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이 원리는 비단 몸을 쓰는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의 생각, 업무, 그리고 관계에서도 똑같은 물리 법칙이 작용한다. 우리는 종종 "이번 일은 정말 잘해내야 해", "반드시 내 능력을 증명해야 해"라며 마음에 힘을 잔뜩 준다. 겉보기에 이 상태는 열정이나 비장함처럼 보인다.
회사에서 중요한 기획서를 쓰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마감이 다가오고, 상사의 기대가 크고, 이 프로젝트로 당신의 역량을 증명해야 한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이렇게 생각한다. "완벽한 첫 문장을 써야 해. 논리가 빈틈없어야 해. 한 번에 임팩트 있게 써야 해." 그리고 커서가 깜빡이는 빈 화면을 몇 시간이고 바라본다.
이것이 바로 정신적 차원의 '힘을 준 상태'다. 뇌과학과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내면의 '마찰 계수'를 극도로 높이는 비효율적인 행위일 뿐이다.
전문 용어로는 이를 '공동수축(Co-contraction)'이라 부른다. 우리 몸의 근육은 움직이려는 근육(주동근)과 버티려는 근육(길항근)으로 나뉘는데, 긴장 상태에서는 이 두 근육이 동시에 힘을 쓴다. 자동차로 치면 엑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꼴이다. 엔진은 굉음을 내고 차체는 덜덜 떨리지만, 차는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정신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잘 써야 해"라는 주동 욕구와 "실패하면 안 돼"라는 길항 불안이 동시에 작동한다. "창의적이어야 해"라는 압박과 "틀리면 안 돼"라는 검열이 충돌한다. "빨리 끝내야 해"라는 조급함과 "완벽해야 해"라는 강박이 서로를 잡아당긴다.
이때 우리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신경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과도한 긴장 상태에서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과활성화된다. 전전두엽은 계획, 판단, 통제를 담당하는 CEO 같은 뇌 부위다. 문제는 이 CEO가 너무 많이 개입하면 오히려 창의성과 직관을 담당하는 뇌의 다른 영역들이 억제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 때문에 지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잘하려는 마음과 실패하면 안 된다는 불안이 서로 충돌하며 발생하는 이 '내부 마찰(Internal Friction)' 때문에 탈진한다. 실제로 작업량 자체는 적은데도 극도로 피곤한 날들을 떠올려보라. 대부분은 일 자체가 아니라 "이걸 어떻게 하지", "저 사람이 뭐라고 할까", "시간이 부족하면 어쩌지"라는 내면의 전쟁 때문에 에너지가 소진된 날들이다.
에너지가 밖으로 쓰이지 못하고 안에서 서로를 갉아먹으며 소진되는 것이다. 물리학의 마찰열처럼, 이 내부 마찰은 실제 성과로 변환되지 못하고 그저 당신을 지치게 만들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내부 마찰을 없애고 생각의 힘을 뺄 수 있을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안의 모드를 전환하는 것이다. 우리의 정신에는 두 가지 기어가 있다. 하나는 의식적으로 통제하고 쥐어짜는 '두(Do) 모드'이고, 다른 하나는 흐름에 맡기는 '얼로우(Allow) 모드'다.
'Do 모드'는 운전 초보가 핸들을 꽉 쥐고 바로 앞 10미터만 노려보는 상태와 같다.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통제하려 한다. "지금 2단 기어에서 클러치 밟고, 액셀에서 발 떼고, 3단으로 기어 올리고..." 머릿속으로 매 순간을 해설하며 운전한다. "실수하면 안 돼", "완벽한 문장을 써야 해"라고 의식할수록 우리의 전전두엽은 과부하에 걸리고 시야는 좁아진다.
이 상태에서는 뇌의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이 급격히 소진된다. 인간의 작업 기억은 한 번에 약 4~7개의 정보만 처리할 수 있다. Do 모드에서는 이 제한된 용량이 "잘 써야 해", "완벽해야 해", "시간이 없어", "저 사람이 볼 거야" 같은 메타 인지로 가득 차버린다. 정작 일 자체에 쓸 인지 자원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반면 'Allow 모드'는 베테랑 운전자가 조수석의 동승자와 대화하며 자연스럽게 차선을 바꾸는 상태다. 의식적으로 "지금 기어 바꾸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몸이 알아서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수천 시간의 운전 경험이 소뇌와 기저핵에 자동화된 패턴으로 저장되어 있고, 그것이 의식의 개입 없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내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축적된 경험과 데이터가 알아서 일하도록 허용한다.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이 상태를 '몰입(Flow)'이라고 불렀다. 몰입 상태에서는 자의식이 사라지고, 시간 감각이 왜곡되며, 행위와 인식이 하나가 된다. 이때 우리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낸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는 지하 깊은 곳까지 내려가 물을 길어 올리는 작업과 같다. 너무 힘을 주면 밧줄이 끊어진다. 팔의 힘을 빼고 중력에 맡겨 양동이가 자연스럽게 내려가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Allow 모드의 본질이다.
물론, 무조건 힘을 뺀다고 능사는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다. 힘을 빼는 것은 '숙련의 결과'이지 시작이 아니라는 점이다.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 "힘 빼고 쳐봐"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손가락이 건반에 흐느적거리며 닿고, 소리는 웅얼거리듯 약하게 날 것이다. 이것은 힘을 뺀 것이 아니라 그냥 힘이 없는 것이다. 진짜 힘을 빼는 것은 정확한 운지법을 수천 번 반복하고, 근육에 기억을 새기고, 어떤 건반을 얼마의 힘으로 쳐야 원하는 소리가 나는지 몸이 아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골프의 전설 벤 호건은 하루에 천 개의 공을 쳤다고 한다. 손에서 피가 날 때까지 연습했다. 그렇게 수년을 보낸 후에야, 그는 스윙의 순간 그립의 힘을 빼는 기술을 터득했다. 그 이완은 무기력이 아니라, 몸에 새겨진 완벽한 스윙 패턴이 자동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허용'이었다.
프로그래밍도 마찬가지다. 초보 개발자는 코드 한 줄 한 줄을 의식하며 쓴다. 문법이 맞는지, 로직이 맞는지 끊임없이 확인한다. 하지만 10년차 개발자는 마치 모국어로 말하듯 코드를 쓴다. 손가락이 알아서 움직이고, 패턴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 10년 동안 수만 줄의 코드를 작성하며 뇌에 축적된 데이터베이스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훈련도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힘을 빼면 그건 그냥 무기력하거나 흐느적거리는 것이다. 치열하게 폼을 익히고(Do 모드),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내 안에 어떤 '패턴'이 만들어졌을 때, 비로소 우리는 힘을 뺄 자격을 얻는다.
이것을 신경과학에서는 '자동화(Automatization)'라고 한다. 처음에는 의식적 노력이 필요한 기술이 반복을 통해 무의식적 수준으로 내려가는 과정이다. 뇌에서는 대뇌 피질에서 시작된 제어가 점차 소뇌와 기저핵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이 완료되면, 우리는 '생각하지 않고도' 그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생각하지 않을 때 가장 잘하게 된다.
그러니 힘을 뺀다는 것은 결국 '믿음'의 문제로 귀결된다. 종교적인 믿음이 아니다. 내가 보낸 시간, 내가 고민했던 밤들, 내가 읽고 쓰고 겪어온 데이터에 대한 믿음이다.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쓸 때를 생각해보자. 당신이 만약 해당 주제에 대해 50권의 책을 읽었고, 10년간 현장에서 일했고, 수십 번의 비슷한 글을 써왔다면, 당신의 뇌 어딘가에는 이미 그 글이 거의 완성된 형태로 존재한다. 다만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을 뿐이다.
이때 "빡! 해야지"라며 온몸에 힘을 주는 건, 내 무의식과 경험치를 믿지 못해 내가 일일이 개입하고 통제하겠다는 조바심의 발로다. 마치 씨앗을 심고 매일 파내서 "왜 아직 안 자라났어?"라고 확인하는 것과 같다. 성장은 당신이 보지 않는 순간에도 일어난다. 당신이 통제하지 않아도 일어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무의식적 사고 이론(Unconscious Thought Theory)'으로 설명한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의식적으로 골몰하는 것보다 일단 문제를 인식한 후 다른 일을 하거나 쉬는 동안 무의식이 작업하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낸다는 이론이다. 흔히 말하는 '유레카 모멘트'가 샤워 중이나 산책 중에 찾아오는 이유다.
실제로 많은 창작자들이 이 원리를 활용한다. 작곡가 베토벤은 빈의 거리를 산책하며 곡을 구상했다. 수학자 푸앵카레는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다가 막히면 산책을 나갔고, 돌아와 책상에 앉는 순간 해답이 떠올랐다고 한다. 이들은 게으른 것이 아니었다. 의식의 긴장을 풀어 무의식이 작동할 공간을 만든 것이다.
"나는 준비가 안 됐어", "아직 부족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되돌아보라. 당신이 이 일에 쏟은 시간을, 읽은 자료를, 겪은 실패를, 터득한 노하우를. 당신의 뇌는 이미 그것들을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했다. 다만 당신이 입구를 너무 꽉 막고 서서 그것들이 나오지 못하게 할 뿐이다.
결정적인 순간, 정말로 잘하고 싶다면 역설적으로 그립을 느슨하게 쥐어야 한다. 타자가 홈런을 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공의 실밥을 보는 데 집중하듯, 우리도 '결과'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지금 눈앞의 '동작'에만 집중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긍정적 사고가 아니다. 신경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현상이다. 우리가 결과에 집착하면, 뇌는 끊임없이 미래를 시뮬레이션한다. "만약 실패하면?",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 "이게 내 경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런 생각들이 뇌의 처리 용량을 잡아먹는다.
반면 과정에 집중하면, 뇌는 현재 순간에 필요한 정보 처리에만 자원을 할당한다. "지금 이 문장을 어떻게 쓸까", "이 데이터는 어떻게 해석할까", "다음 단어는 뭐가 적절할까". 이렇게 작은 단위로 집중하면, 역설적으로 전체 퀄리티가 올라간다.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때의 일화가 있다. 한 직원이 그에게 "내일 키노트가 정말 중요한데, 긴장되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잡스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는 키노트의 성공을 생각하지 않아. 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가는 순간의 손동작과, 다음 문장의 첫 단어에만 집중해. 그 순간순간이 모여 키노트가 되는 거야."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기획서를 쓰겠다"는 거창한 힘을 빼고, "지금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가장 쉬운 단어로 옮기겠다"는 가벼운 마음을 먹을 때, 뇌의 브레이크가 풀리고 비로소 진짜 실력이 가속도를 얻기 시작한다.
선불교에 '다도(茶道)'라는 개념이 있다. 차를 마시는 행위 자체에 완전히 몰입하는 것이다. 차의 색을 보고, 향을 맡고, 온도를 느끼고, 맛을 음미한다. 이 순간 과거의 후회도, 미래의 걱정도 사라진다. 오직 지금, 이 한 잔의 차만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과정에 집중하는 상태다.
당신의 일도 그렇게 대할 수 있다. 위대한 결과물을 만들겠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지금 이 문장, 이 코드 한 줄, 이 계산 하나에만 온전히 존재하라. 그 순간들이 모여 결국 당신이 원하던 것보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힘을 뺄 수 있을까? 몇 가지 실천 가능한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 호흡을 바꿔라. 긴장하면 호흡이 얕고 빨라진다. 의식적으로 호흡을 깊고 느리게 바꾸면,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며 몸과 마음이 이완된다. 중요한 일을 시작하기 전, 4초 들이쉬고, 4초 멈추고, 6초에 걸쳐 내쉬는 호흡을 5회 반복하라. 이것만으로도 당신의 내부 마찰이 줄어든다.
둘째, 몸의 긴장을 스캔하라. 작업 중 10분마다 한 번씩 자신의 몸을 점검하라. 어깨가 올라가 있는가? 턱에 힘이 들어가 있는가? 주먹을 쥐고 있는가? 이런 불필요한 긴장을 발견하면 즉시 풀어라. 몸의 긴장은 마음의 긴장과 연결되어 있다.
셋째, '드래프트 모드'로 시작하라. 완벽한 결과물을 한 번에 만들려고 하지 마라. 첫 번째 버전은 그저 생각을 쏟아내는 과정이라고 여겨라. "이건 초안이야, 나중에 고치면 돼"라고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순간, 글은 물 흐르듯 써진다. 코드는 빠르게 짜진다. 아이디어는 막힘없이 흘러나온다.
넷째, 작은 단위로 쪼개라. "기획서를 완성해야 해"는 너무 크고 무겁다. "서론의 첫 문단을 쓴다", "현황 분석 표를 만든다", "결론의 키워드 3개를 뽑는다"처럼 작게 쪼개라. 작은 목표는 뇌를 압도하지 않는다. 하나씩 완성하다 보면 어느새 전체가 만들어진다.
다섯째, '어떻게'가 아니라 '무엇'에 집중하라. "이걸 어떻게 잘 쓸까"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를 물어라. 방법론에 집착하면 긴장한다. 본질에 집중하면 자연스러워진다. 당신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명확하면, 표현 방식은 저절로 따라온다.
어깨에 힘을 뺄 때 주먹이 가장 빠르듯, 마음에 힘을 뺄 때 당신의 생각은 가장 날카롭고 자유롭게 뻗어 나갈 것이다.
돌이켜보면 당신이 가장 잘했던 순간들은 언제였는가? 아마도 "잘해야 해"라고 이를 악물었던 순간이 아니라, 일에 몰입해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순간,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던 순간, 끝나고 나서 "어? 내가 이렇게 했어?"라고 놀랐던 순간일 것이다. 그 순간들에 당신은 힘을 빼고 있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준비되었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이 있고, 익혀온 기술이 있고, 겪어온 실패에서 배운 지혜가 있다. 그것들은 당신의 뇌와 근육에 이미 각인되어 있다. 다만 당신이 불안과 통제욕으로 그 문을 막고 서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제 엑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던 발을 떼고, 당신 안에 쌓인 것들이 스스로 일하게 하라. 새를 쥔 손처럼, 죽이지도 않고 날려 보내지도 않는 그 절묘한 긴장을 찾아라.
힘을 뺀다는 건 무력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가로막던 모든 방해물을 치우고 전력(全力)을 다하는 기술이다. 당신의 70kg 전체를 실은 펀치처럼, 당신의 모든 경험과 역량이 한 점으로 수렴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진짜 힘은 힘을 줄 때가 아니라 뺄 때 나온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