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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을 이어 쓰기 008: 환상의 진실 효과 를 이어 쓰다.
우리는 어떻게 존엄한 지성을 지킬 수 있는가
옛말에 "세 사람이 우기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낸다(삼인성호, 三人成虎)"고 했습니다. 하지만 2024년, 호랑이를 만드는 데는 굳이 세 사람까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지치지 않고 24시간 정보를 쏟아내는 AI 챗봇과, 그 정보를 순식간에 수천 명에게 퍼나르는 알고리즘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최근 의학계를 혼란에 빠뜨린 "특정 영양제 조합이 암을 예방한다"는 근거 없는 낭설이나, 미국 대선 기간 유권자들을 속인 '바이든 대통령의 딥페이크 음성(로보콜)' 사건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진실'이 빠르게 증발하고, 그 자리를 '그럴듯한 거짓'이 채우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뻔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까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환상의 진실 효과(Illusory Truth Effect)'로 설명합니다.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에너지를 아끼려는 성향이 있어서, 자주 들어서 '친숙한(Familiarity)' 정보나, 이해하기 쉽게 '유창하게(Fluency)' 설명된 정보를 진실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제는 현대의 기술이 이 뇌의 약점을 파고든다는 점입니다. AI는 전문 용어를 섞어가며 누구보다 유창한 문장으로 거짓 정보를 생성해내고,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은 이 정보를 반복적으로 노출시켜 우리에게 친숙함을 심어줍니다.
여기에 더해 '에코 챔버(Echo Chamber)' 현상은 상황을 악화시킵니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정보, 내 생각과 일치하는 뉴스만을 골라 보여줍니다. 마치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내 목소리만 메아리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안에서 우리는 반대편의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한 채, 왜곡된 확신만 키우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자신이 보고 싶은 세상만 보며, 객관적인 진실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개인은 필연적으로 지쳐갑니다. 특히 정치 뉴스는 정책과 비전이 아닌, "누가 누구에게 막말을 했다"는 식의 가십과 혐오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미디어는 이를 마치 경마 중계하듯 자극적으로 보도하고, 시민들은 피로감을 느낍니다.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은 '뉴스 회피(News Avoidance)'를 선택합니다. "어차피 다 똑같은 놈들"이라며 냉소하고 귀를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에서 지구를 향해 혜성(재난, 위기)이 날아오고 있음에도, 사람들이 정치적 진영 논리에 갇혀 서로 싸우거나 아예 하늘을 보지 않으려(Don't Look Up) 했던 모습은 소름 끼치는 현실의 은유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고개를 돌린다고 해서 혜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정치 혐오와 무관심에 빠져 감시를 멈추는 순간, 기득권과 이해 집단은 그 틈을 타 자신들에게 유리한 '가짜 호랑이'를 만들어내고 사회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통제하려 들 것입니다. 즉, 무관심의 대가는 내 삶의 통제권을 남에게 넘겨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혼란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까요? 모든 정보를 일일이 팩트체크하며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에게는 '에너지 절약형 뉴스 소비 전략'이 필요합니다.
첫째, 스스로를 '문지기'가 아니라 '편집장'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문지기는 모든 출입자를 검문하지만, 편집장은 가치 있는 기사만 지면에 싣습니다. 믿을 수 있는 소수의 채널을 '단골 가게'로 정해두고, 그 외의 출처 불분명한 정보는 과감히 차단하는 '정보 다이어트'가 필요합니다.
둘째, '감정'을 신호등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가짜 뉴스와 선동은 논리가 아닌 분노와 혐오를 연료로 삼습니다. 만약 어떤 뉴스를 보고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통쾌한 감정이 든다면 일단 '멈춤 신호(Red Light)'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누군가가 당신의 감정을 트리거로 삼아 클릭 수나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 한다는 강력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수평적 읽기(Lateral Reading)'를 습관화해야 합니다. 전문 팩트체커들은 기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수직적 읽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새 탭을 열어 "이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가?", "이 매체는 어디인가?"를 먼저 검색합니다(수평적 읽기). 내용의 그럴듯함에 빠지기 전에, 발화자의 신뢰도를 먼저 검증하는 이 1분의 습관이 거짓 정보의 90%를 걸러냅니다.
하지만 개인의 태도와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기억은 휘발되고 왜곡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기술을 역이용하여 나만의 '지식 요새'를 구축해야 합니다. 기억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내 뇌가 아닌 외부 시스템에 아웃소싱하는 것입니다.
첫째, 정보의 '소비'가 아닌 '판단'을 기록해야 합니다.
좋은 기사를 보고 단순히 링크를 저장(스크랩)하는 것은 정보의 무덤을 만드는 행위입니다. 판사가 판결문을 쓰듯, 그 정보에 대한 '나의 판단'을 기록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사를 저장할 때 #검증필요, #논리적비약, #신뢰할만함 같은 태그를 붙이고, "이 주장은 A연구소의 데이터와 상충됨"이라는 짧은 비평을 남기는 것입니다. 이 기록들이 쌓이면 훗날 유사한 선동이 있을 때 흔들리지 않는 기준점이 됩니다.
둘째, '세컨드 브레인(Second Brain)' 도구를 활용해 청정 구역을 만들어야 합니다.
구글의 NotebookLM과 같은 도구는 내가 신뢰한다고 판단하여 업로드한 문서(PDF, 논문, 양질의 기사) 내에서만 답을 찾도록 설정할 수 있습니다. 오염된 인터넷 바다에서 헤엄치는 대신, 내가 검증하여 구축한 '청정수' 안에서 AI에게 질문하고 답을 얻는 것입니다. 이는 나만의 전용 팩트체크 엔진을 갖는 것과 같습니다.
셋째, AI에게 나의 맥락을 심어야 합니다.
최근의 MemoryMCP(Model Context Protocol) 같은 기술은 AI가 사용자의 정보와 맥락을 기억하게 합니다. "나는 데이터에 기반하지 않은 주장을 싫어한다", "나는 양쪽의 입장을 모두 듣고 판단한다"는 나의 철학을 시스템에 입력해 두십시오. 그러면 AI는 새로운 정보를 가져올 때 이 기준에 맞춰 불순물을 1차적으로 걸러내고, 내가 원하는 형식으로 정보를 가공해 줄 것입니다.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은 단기 기억 상실증 때문에 자신의 몸에 문신을 새겨 진실을 기억하려 했습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끊임없이 망각과 왜곡을 강요받는 우리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몸이 아닌 디지털 공간에, 문신이 아닌 시스템으로 진실을 새겨야 한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쏟아지는 정보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관전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나만의 원칙과 시스템으로 굳건히 서서 세상을 조망하는 '설계자'가 될 것인가.
이제 우리는 단순히 뉴스를 읽고 소비하는 것을 넘어, 판단하고, 기록하고, 시스템화해야 합니다. 그렇게 축적된 나만의 기록과 시스템만이, 거대한 거짓의 파도와 알고리즘의 유혹 앞에서 나의 존엄과 지성을 지켜주는 유일한 닻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