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제품 팀은 이렇게 일합니다

좋은 제품 팀을 만들고 싶어서 쓴 글

by Jamin

달력을 가득 채운 회의, 언제 끝날지 모를 백로그, 그리고 바쁘게 움직이지만 제자리인 것 같은 느낌.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성장통입니다. 우리는 더 잘하고 싶어서 수많은 방법론을 도입하지만, 때로는 그 도구들이 오히려 우리의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제품 팀'은 복잡한 방법론으로 무장한 팀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일의 본질에 집중하는 팀입니다. 여기 제가 지향하는 건강한 제품 개발의 다섯 가지 원칙을 공유합니다. 이 원칙들은 따로 떨어진 팁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하나의 시스템입니다. 포수 같은 PM이 심리적 안전감을 만들어야 팀이 과감하게 베팅할 수 있고, 집중할 수 있어야 진짜 가치를 좇을 수 있으며, 그래야 실패가 학습이 되는 문화가 뿌리내립니다.


1. PM은 경기를 설계하면서도 모든 공을 받아내는 포수여야 합니다


흔히 프로덕트 매니저를 '미니 CEO'라고 부릅니다. 결정하고 지시하는 권한을 강조한 표현이겠죠. 하지만 저는 PM이 야구 경기의 포수와 더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여기서 포수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포수는 단순히 공을 받아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경기 전체를 읽고 투수에게 배구 사인을 보내며, 상대 타자의 약점을 파악해 한 이닝의 전략을 설계하는 필드 위의 감독입니다. 동시에 어떤 공이 와도 몸을 던져 막아내는 최후의 방어선이기도 합니다.


좋은 PM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해내야 합니다. 제품의 방향을 설정하고 우선순위를 조율하는 전략가이면서, 경영진의 압박이나 외부의 잡음이 팀원들에게 날아들지 않도록 몸으로 막아내는 블로킹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받아주기만 잘하는 포수는 투수를 편하게 해줄 수 있어도, 경기를 이기기는 어렵습니다. 반대로 사인만 내리고 막상 폭투가 왔을 때 뒤로 빠지는 포수와는 아무도 함께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왜 실수했어?"라고 묻기보다 "우리가 무엇을 놓쳤을까?"라고 묻되, 다음 타자를 어떻게 상대할지 이미 생각하고 있는 포수. 그런 PM이 있을 때 팀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방향을 잃지 않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다음 원칙과 직결됩니다. 팀이 심리적으로 안전하다고 느껴야만, 백로그를 과감히 버리고 진짜 중요한 것에 베팅하는 결정을 함께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백로그를 버릴 때 비로소 중요한 일이 보입니다—단, 버리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언젠가 해야 할 일'을 쌓아두는 백로그는 언뜻 체계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팀의 부채입니다. 수백 개의 티켓이 쌓여 있는 목록을 볼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미 늦었다'는 압박감을 느낍니다. 심리학에서는 완료되지 않은 과업이 뇌의 리소스를 계속 점유한다고 하죠.


그래서 저는 '백로그' 대신 '베팅'이라는 개념을 제안합니다. 정해진 사이클 동안 우리 팀의 자원을 어디에 투자할지 결정하는 것입니다. Basecamp가 제안한 Shape Up 방법론에서는 이 사이클을 6주로 잡는데, 이는 의미 있는 기능을 완성하기에 충분히 길면서도 방향 수정이 너무 늦어지지 않을 만큼 짧은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6주가 모든 팀에 맞는 것은 아닙니다.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2주가 적절할 수 있고, 복잡한 인프라를 다루는 팀이라면 8주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이 기간 동안 완결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약속입니다.


다만 솔직히 인정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모든 조직이 백로그를 완전히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규제 산업에서 일하거나 엔터프라이즈 고객을 상대하는 B2B 제품팀은 고객과의 계약적 약속이나 컴플라이언스 요구사항이 백로그 형태로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과 "베팅의 대상이 되는 기회"를 명확히 분리하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입니다.


"과감히 잊는다"는 말이 낭만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잊는 것과 무책임하게 방치하는 것은 다릅니다. 버린 아이디어가 왜 버려졌는지, 당시 어떤 맥락에서 그 결정을 내렸는지 간략히 기록해두는 것도 조직 학습의 일부입니다. 정말 중요한 아이디어라면 언젠가 더 나은 타이밍에 돌아올 테고, 그때 과거의 맥락을 알면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베팅이 가능하려면 팀에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여유는 다음 원칙에서 이야기할 '집중'에서 나옵니다.


3. 빨리 가고 싶다면, 동시에 하는 일의 수를 제한해야 합니다


도로가 꽉 막혀 있으면 아무리 빠른 스포츠카도 달릴 수 없습니다. 팀의 업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멀티태스킹을 능력이라 착각하지만, 실제로 A 업무에서 B 업무로 컨텍스트를 전환할 때마다 뇌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 전환 비용은 생산성의 20-40%를 잠식합니다.


'진행 중인 일(Work In Progress)'을 인위적으로 제한해 보세요. "우리 팀은 한 번에 두 가지 기능만 개발한다"는 식의 제약은 역설적으로 팀의 속도를 높입니다. 일이 막혔을 때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대신, 막힌 곳을 함께 뚫어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개발자가 코드 리뷰를 기다리는 동안 새 작업을 시작하면 두 작업 모두 늦어집니다. 대신 리뷰어가 우선적으로 리뷰를 처리하면, 첫 번째 작업이 빨리 완료되고 전체 흐름이 빨라집니다.


이 원칙을 실행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먼저 팀원들이 자신의 작업이 막혔을 때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앞서 이야기한 심리적 안전감과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또한 누군가의 작업을 도우러 갔다가 자신의 작업이 늦어지는 것을 비난하지 않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시작했습니다"라는 말보다 "완료했습니다"라는 말이 더 자주 들리는 팀—그것이 진정으로 빠른 팀의 모습입니다.


집중할 수 있게 되면, 이제 무엇에 집중할지가 중요해집니다.

그리고 그 답은 매출이 아니라 고객 가치에 있습니다.


4. 매출은 따라오는 것이지, 좇는 것이 아닙니다—단, 인과관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많은 팀이 매출이나 가입자 수를 목표로 달립니다. 하지만 이런 지표들은 이미 일어난 일의 결과입니다. 이를 직접 움직이려 하면 단기적 꼼수에 빠지기 쉽습니다. 할인 행사로 매출을 올리거나, 가입 허들을 낮춰 숫자만 채우는 식으로요. 팀이 바라봐야 할 진정한 북극성은 '고객이 얻는 가치'입니다.


페이스북이 초기에 '10일 안에 7명의 친구 연결'을 핵심 지표로 삼았던 것을 떠올려 보세요. 이 지표가 의미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고객 가치"여서가 아니라, 이것이 장기 리텐션과 궁극적으로 매출에 이어진다는 인과관계가 데이터로 검증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좋은 북극성 지표는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첫째, 고객이 우리 제품에서 실제로 가치를 얻었는지를 반영해야 합니다.

둘째, 그 가치가 비즈니스 지속가능성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이 명확해야 합니다.


"가치만 좇으면 돈은 따라온다"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가치와 매출 사이의 연결고리를 이해하고 검증하는 것도 제품팀의 일입니다. 우리가 측정하는 고객 가치 지표가 실제로 리텐션이나 확장 매출로 이어지는지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만약 이어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치'라고 믿은 것이 사실은 고객에게 진짜 가치가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팀원들이 숫자를 채우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할 때, 그리고 그 해결이 비즈니스 성과로 이어지는 구조를 모두가 이해할 때, 제품은 건강하게 성장합니다.


고객 가치에 집중하면 필연적으로 실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가설이 맞는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실험에는 실패가 따릅니다.


5. 좋은 실패는 투자이고, 나쁜 실패는 낭비입니다


"실패는 학습이다"라는 말은 이제 클리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실패가 수업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거나,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것을 다시 실험하거나, 명확한 가설 없이 "일단 해보자"고 덤비는 것은 학습이 아니라 낭비입니다.


좋은 실패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검증하려는 가설이 명확해야 합니다. "사용자들이 이 기능을 좋아할 것이다"가 아니라 "결제 단계에서 이탈하는 사용자의 40%는 배송비 때문이며, 무료 배송 임계점을 보여주면 객단가가 15% 올라갈 것이다"처럼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둘째, 최소 비용으로 최대 학습을 얻도록 설계되어야 합니다. 완성된 기능을 만들기 전에 프로토타입으로, 프로토타입 전에 고객 인터뷰로 검증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셋째, 실패 후 인사이트가 팀과 조직에 공유되어야 합니다. 개인의 머릿속에만 남는 학습은 조직의 자산이 아닙니다.


제품을 다 만든 뒤에 아무도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이야말로 가장 비싼 실패입니다. 반면, 아이디어 단계에서 가설을 검증하고 방향을 수정하는 것은 가장 현명한 투자입니다.


좋은 팀은 '지속적 발견'을 습관처럼 수행합니다. 매주 고객을 만나고, 우리의 가설이 틀렸음을 확인하는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고, 그 배움을 다음 실험에 어떻게 적용할지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실패를 학습으로 만드는 문화는 앞서 이야기한 모든 것이 갖춰졌을 때 가능합니다. 포수 같은 PM이 만들어낸 심리적 안전감, 과감하게 선택하고 버릴 수 있는 베팅 문화,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WIP 제한, 그리고 매출이 아닌 고객 가치라는 명확한 방향. 이것들이 맞물릴 때, 실패는 비로소 팀을 더 강하게 만드는 연료가 됩니다.


마치며: 일하는 방식이 곧 제품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제품은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그대로 닮습니다. 쫓기듯 일하면 쫓기는 제품이 나오고, 존중하며 일하면 배려가 담긴 제품이 나옵니다.


제가 이야기한 다섯 가지 원칙은 독립된 팁이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입니다. PM이 전략가이자 수호자로서 팀을 이끌 때 심리적 안전감이 생기고, 그 안전감 위에서 팀은 진짜 중요한 것에 베팅할 용기를 얻습니다.


동시에 하는 일을 줄여야 그 베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고, 매출이 아닌 고객 가치를 좇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실험이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좋은 실패의 조건을 갖추었을 때, 그 실험들은 팀의 자산이 됩니다.


월요일부터 당장 모든 것을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한 가지만 시도해 보세요. 이번 주 회의에서 "왜 안 됐어?"대신 "우리가 뭘 배웠지?"라고 물어보는 것. 백로그에서 6개월 넘게 손대지 않은 티켓 열 개를 조용히 닫아버리는 것.


진행 중인 프로젝트 수를 세어보고 "정말 이게 다 필요한가?"라고 자문해보는 것. 작은 변화가 쌓여 문화가 되고, 문화가 결국 제품이 됩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건강하게 일하는 팀이, 결국 어제와 다른 멋진 제품을 만들어낼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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