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의 시대가 가고, 욕망의 시대가 온다

2026 All-Day-Project (019/365)

by Jamin

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34: 코세라 x 유데미 합병 소식을 보면서

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35: AI 가 빌보드 1위... 를 보면서


바른 욕심이라는 질문 에 이어서 생각하기


2025년 11월, 흥미로운 뉴스가 떴다. AI 가수 '브레이킹 러스트'가 빌보드 컨트리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스포티파이에서 350만 회 이상 재생되었고, 팬들은 "실존 인물인 줄 알았다", "투어 언제 하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AI 배우 '틸리 노우드'가 할리우드 에이전시들로부터 계약 제안을 받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제작사 측은 "차세대 스칼렛 요한슨이나 나탈리 포트먼처럼 성장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현직 배우들의 반응은 격렬했다. "역겹다", "그 에이전시 이름부터 공개하라", "수백 명의 실제 젊은 여성 얼굴을 합성해 만든 AI인데, 그중 한 명을 직접 고용하지 그랬나." 예술 생태계의 파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나는 이 상황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된다. 파괴라기보다는 재편에 가깝지 않을까. 그리고 이 재편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지배한 것은 희소성이었다. 톱스타의 시간과 육체는 유한했다. 그 유한함이 곧 가치였고, 권력이었고, 자본이었다. 그런데 AI는 이 희소성을 무너뜨린다. 잠들지 않고, 늙지 않으며, 무한대로 복제 가능한 존재. 공급이 무한대가 되면 가격은 0에 수렴한다. 경제학의 기본 원리다.


이건 배우나 가수라는 직업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들이 가졌던 독점적 지위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과정일 수 있다. 자본으로, 기술로, 혹은 아직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어딘가로.


많은 사람들이 이 변화를 두려워한다.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두려움과 별개로,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는 지점이 있다. AI가 가져온 변화에는 두 가지 층위가 있다.


첫 번째는 접근성의 민주화다. 이건 명백히 진보다. 수백억 원의 제작비나 인맥 없이도, 누군가의 방구석에서 헐리우드급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기술적 장벽이 낮아졌다.


두 번째는 결과물의 획일화 위험이다. 알고리즘은 대중이 좋아할 만한 확률적 평균값을 학습한다. 자칫하면 세상이 '그럴듯하지만 뻔한' 콘텐츠로 뒤덮일 수 있다.


디저의 연구에 따르면, 글로벌 플랫폼에 매일 업로드되는 음악 중 약 34%가 AI 생성 음악이라고 한다. 하루 5만 곡. 그리고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응답자의 97%가 AI 음악과 인간 음악을 구별하지 못했다.


이 두 가지를 혼동하면 안 된다. 접근성이 열린 것과 결과물이 획일화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전자는 기회이고, 후자는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근본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기술이 그리기, 작곡하기, 연기하기 같은 '실행'을 대체한다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게 욕망과 상상력이 아닐까 싶다.


AI는 지치지 않고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스스로 원하지 않는다. AI에게는 결핍이 없다. 고통이 없다. 무언가를 미치도록 표현하고 싶은 충동이 없다. 예술은 언제나 인간의 결핍과 갈망에서 시작되었다. 이건 AI가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다.


또한 AI의 상상은 데이터에 기반한 확률적 예측이다. 반면 인간의 상상은 확률을 거스르는 비약이다.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들을 잇고, 0%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무모함. 이건 오직 인간의 몫이다.


앞선 글에서 도구가 강력해질수록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무게가 커진다고 썼다. 이 상황이 정확히 그렇다. AI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해결해줄수록, "무엇을 만들 것인가", "왜 만들 것인가"의 질문이 더 중요해진다.

미래의 창작자는 붓을 잘 다루거나 연기를 잘하는 기능인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자신의 욕망을 정확한 언어로 구조화하고, AI라는 거대한 도구를 지휘해서 머릿속 세계를 현실로 끌어내는 설계자에 가까워질지 모른다.


실행의 시대가 가고 있다. 이제 욕망하는 능력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오는 것 같다. 기술이 우리 손에서 도구를 뺏어간 게 아니다. 오히려 묻고 있는 것이다.


손발은 내가 움직여줄 테니, 당신은 대체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 앞에서, 앞서 썼던 고민이 다시 떠오른다. 욕망을 부려야 한다. 하지만 어떤 욕망을 부릴 것인가. 모두가 증강된 능력으로 자기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그 끝은 어디일까.


기술이 강력해질수록, 그 기술을 쥔 손의 방향이 중요해진다. 무엇을 원하는가만큼, 어떤 방향으로 원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답은 아직 없다. 하지만 질문은 점점 선명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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