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ll-Day-Project (018/365)
도구가 강력해질 수록... 에 이어서 생각하다
앞선 글에서 욕심을 부려야 한다고 썼다. 동기가 연료라면, 욕심은 그 연료를 만드는 원천이다. 원하는 것이 있어야 움직인다. 열망을 억누르지 말고 키워야 한다. 그렇게 썼다.
그런데 글을 쓰고 나서 한 가지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욕심을 부리라고 했는데, 어떤 욕심을 부려야 하는가. 방향의 문제다. 동기가 있다는 것과 그 동기가 어디를 향하는가는 다른 문제다.
사이먼 시넥의 《인피니트 게임》에 나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네이비 실을 선발할 때 성과(performance)와 신뢰(trust)를 축으로 놓고 평가한다고 한다. 흥미로운 건, 성과가 높고 신뢰가 낮은 사람보다 성과가 중간이어도 신뢰가 높은 사람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실력보다 태도를 본다. 이유는 단순하다. 실력은 가르칠 수 있지만, 태도는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한 상황에서 팀을 망가뜨리는 건 실력 부족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이 이야기가 요즘 자주 생각난다. 도구가 개인의 능력을 증강시키는 시대에, 태도의 비중이 더 커지는 게 아닐까 싶어서다.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개인의 능력에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라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정해져 있었다. 시스템이 개인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다. 규칙을 어기거나 시스템을 악용하려 해도, 개인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과 능력에 한계가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도구가 개인을 증강시킨다. 예전에는 팀이 필요했던 일을 혼자서 할 수 있게 된다. 전문가가 필요했던 분석을 비전문가도 할 수 있게 된다. 이건 분명 좋은 일이다. 개인의 가능성이 확장된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가능성도 열린다. 시스템을 자기 이익을 위해 공략할 수 있는 개인이 많아진다. 예전에는 소수의 전문가만 할 수 있었던 일을 이제 더 많은 사람이 할 수 있게 된다.
극단적인 상상을 해봤다. 시스템 트레이딩을 예로 들어보자. 알고리즘으로 시장의 비효율을 찾아 수익을 내는 전략이다. 이게 소수일 때는 작동한다. 비효율이 존재하고, 그걸 발견한 사람이 이득을 취한다. 그런데 모든 개인이 AI 도구를 활용해서 시스템 트레이딩을 한다면? 비효율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알파는 소멸하고, 결국 시장 자체가 이상하게 작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모두가 시스템을 이기려 하면, 시스템이 버티지 못한다.
이건 비단 금융 시장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증강된 개인들이 각자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려 할 때 벌어지는 일.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그린 세계가 떠오른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그런데 이제 그 만인 각각이 예전보다 훨씬 강력한 도구를 들고 있는 거다.
그래서 "바른 욕심"이라는 말이 자꾸 맴돈다. 욕심을 부려야 한다고 했는데, 그 욕심이 순전히 개인의 이익만을 향한다면? 모두가 그렇게 하면? 이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직감이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걸 조율해줄 거라는 믿음은, 개인의 능력이 이 정도로 증강되는 상황까지 고려한 건 아니었을 테니까.
솔직히 말하면, 바른 욕심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쉽게 정의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다만, 이게 질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점점 강해진다. 능력을 키우는 것만큼, 그 능력을 어디에 쓸 것인가를 묻는 것. 동기를 갖는 것만큼, 그 동기의 방향을 살피는 것. 이게 빠지면 위험하다.
그리고 이건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교육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미디어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능력을 키워주는 건 이제 도구가 상당 부분 해준다. 그러면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방향을 보여주는 것, 태도를 보여주는 것, 어떤 욕심이 바른 욕심인지 함께 고민하는 것. 이게 어른들의 숙제가 아닐까.
재미있는 점이 있다. 기술이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 가장 오래된 질문들이 다시 중요해진다. 첫 번째 글에서는 빨리 시도하고 배우라는 실용적 지혜를 이야기했다.
두 번째 글에서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글에서는 더 오래된, 아니 어쩌면 영원히 오래된 질문 앞에 서 있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덕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는가.
철학, 인성, 도덕. 한때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여겨졌던 이 오래된 고민들이, 어쩌면 지금 가장 절실한 고민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구가 강력해질수록, 그 도구를 쥔 손의 방향이 중요해지니까.
답은 아직 없다. 하지만 질문은 분명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