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ll-Day-Project (017/365)
행운의 표면적을 넓히기 를 이어서 생각하다
앞선 글에서 행운의 표면적을 넓히는 법에 대해 썼다. 빨리 출시하고, 틀리고, 수정하라. 정보 비대칭이 존재하는 한 머릿속에서 다듬는 건 한계가 있다. 사이클을 빠르게 돌려라. 그게 요지였다.
그런데 글을 쓰고 나서 계속 생각이 이어졌다. 출시의 속도, 틀려도 된다는 마인드셋, 복리 효과 — 이건 모두 "어떻게"에 대한 이야기다. 방법론이다. 그런데 더 근본적인 층위가 있지 않을까. 애초에 "무엇을" 할 것인가. 왜 그것을 하려 하는가. 이 질문에 답이 없으면 방법론은 공허해진다.
요즘 도구가 급격히 강력해지고 있다. 코딩, 글쓰기, 분석, 디자인 — AI가 이미 상당 부분을 대신하고 있고, 그 범위는 계속 넓어지고 있다. 나도 매일 이 도구들을 쓰면서 일하고 있고, 솔직히 말하면 예전에는 며칠 걸리던 일이 몇 시간으로 줄어드는 경험을 자주 한다. "어떻게"의 영역이 빠르게 도구에게 넘어가고 있다는 걸 체감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도구가 강력해질수록 편해지기보다 오히려 다른 종류의 무게가 느껴진다. 처음엔 뭔지 잘 몰랐는데, 조금씩 윤곽이 잡히는 것 같다. 도구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대신 정해주지 않는다.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 열망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이건 여전히,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인간의 몫이다.
그러니까 능력이 따라잡히는 시대에 마지막까지 인간에게 남는 건 뭘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그게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답이 아닐까 싶다. 기술이나 지식이 아니라 방향. 스킬이 아니라 의지. 이게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 같다.
도구는 기본적으로 바깥을 향해 있다. 더 넓게 알고, 더 깊게 분석하고, 더 빠르게 처리한다. 세상을 다루는 능력이 확장된다. 그런데 "내가 뭘 원하는가"는 바깥에 답이 없다. 아무리 강력한 도구를 써도, 검색해도, 분석해도 나오지 않는다. 이건 안으로 파고들어야만 찾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어쩌면 도구가 바깥 세상을 더 잘 다룰수록, 역설적으로 우리는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가 AI 시대에 다시 절실해지는 건 묘한 아이러니다. 가장 오래된 질문이 가장 새로운 맥락에서 돌아온다.
물론 자기 이해를 돕는 도구들이 있다. 명상, 저널링, 코칭, 심리 상담. 다 의미 있는 방법들이다. 하지만 도구는 도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건 그 방향이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왜 이것을 하는가. 이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계속 붙들고 있는 것. 그게 본질인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삶에서 진짜 피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나는 점점 그게 실패가 아니라는 확신이 생긴다. 실패는 정보다. 앞선 글에서 말했듯, 틀림은 다음 시도를 위한 데이터다. 틀리는 건 괜찮다. 오히려 필요하다.
진짜 피해야 할 것은 권태가 아닐까. 무료함. 동기의 상실.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는 상태. 이게 가장 위험한 것 같다. 권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상태. 방향을 잃은 상태. 능력이 부족하면 배우면 된다. 도구가 없으면 만들거나 빌리면 된다. 하지만 동기가 사라지면 애초에 시작하지 않게 된다. 시작해도 지속하지 못한다.
그래서 동기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동기는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이 관리의 핵심에는 어쩌면 욕심이 있지 않을까 싶다.
욕심이라는 단어가 좀 거슬릴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욕심을 부정적으로 본다. 겸손해야 한다, 분수를 알아야 한다,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맥락에 따라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동기의 관점에서 보면 욕심은 연료와 비슷하다. 원하는 것이 있어야 움직인다. 더 잘하고 싶다, 더 만들고 싶다, 더 알고 싶다 — 이런 마음이 권태를 이긴다.
그러니 욕심을 억누르기보다 오히려 키워야 하는 게 아닐까. 내가 뭘 원하는지 탐색하고, 발견하면 증폭시키고, 열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이게 도구가 강력해지는 시대에 인간이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정리하면 이런 흐름이다. 도구가 "어떻게"를 대신해줄수록, "무엇을"의 무게가 커진다. "무엇을"에 답하려면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아야 동기가 생긴다. 동기가 있어야 권태를 이긴다. 그래야 포기하지 않고 무어라도 하는 힘이 지속된다.
Do the work. Tell people. 그리고 그 전에, 어쩌면 더 중요한 것 —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계속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