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ll-Day-Project (039/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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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미디어랩의 <Your Brain on ChatGPT> 연구 결과를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본능적인 서늘함이었다. 인공지능에 의존할수록 인간의 뇌 활성도는 떨어지고, 도구가 사라지는 순간 우리의 수행 능력은 곤두박질친다는 경고.
그들이 명명한 '인지 부채(Cognitive Debt)'라는 개념은 마치 우리가 편의를 대가로 미래의 지능을 저당 잡힌 것은 아닌가 하는 묵직한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과학적 증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서늘함이 가시고 이성이 돌아오자, 나는 스스로에게 냉정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가? 아니, 과연 돌아가야만 하는가?
변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파도를 막기 위해 댐을 쌓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한 전략이 아닐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어떤 서핑보드에 올라탈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겪어온 수많은 시험들은 철저히 '기억력'과 '암기력'을 측정하는 무대였다.
교과서 구석의 연도를 기억하고, 복잡한 수학 공식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우는 능력이 곧 지능의 척도였고, 두뇌라는 생체 저장 장치의 용량이 클수록 우수한 인간으로 대우받았다. 그 시절의 '공부'란 정보를 뇌에 각인하는 지난한 노동이었다.
하지만 학교 울타리를 벗어난 현실이라는 거대한 시험장은 100% '오픈북 테스트(Open-book Test)'의 현장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책을 펴볼 수도, 구글링을 할 수도, 동료에게 물을 수도, 심지어 세계 최고의 지능을 가진 AI에게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
오픈북 테스트에서 중요한 것은 교과서의 몇 페이지에 정답이 있는지 외우고 있는가 하는 능력이 아니다. 책이 펼쳐져 있어도 원리를 모르면 풀 수 없는 문제들이 현실에는 가득하다. 이제 와서 아무런 도구 없이 맨손으로, 오직 자신의 기억에만 의존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는 성실함이라기보다 미련함, 혹은 직무유기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내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느냐가 아니라, 눈앞에 놓인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얼마나 탁월한 최종 결과물을 만들어내느냐는 것이다.
과거에는 도서관에서 책 열 권을 뒤져 개념을 연결하고 파편화된 지식을 꿰어맞추는 행위 자체가 고귀한 지적 노동으로 칭송받았다. 정보가 부족했던 시절에는 정보를 찾아내는 것 자체가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 연결과 탐색, 그리고 초안을 작성하는 일은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는 영역이 되었다.
굴착기가 발명된 시대에 삽질의 근육을 자랑하는 것이 낭만일 수는 있어도 효율은 아닌 것처럼, 나는 기꺼이 그 지루한 검색과 자료 정리, 초안 작성의 노동을 기계에 외주 주기로 했다. 나의 '제2의 뇌'인 옵시디언과 인공지능에게 말이다.
다만, 이 편리하고 강력한 외주의 시대에도 MIT의 경고를 방어할 단 하나의,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조건은 남는다. 바로 과정은 기계에 위임하더라도 최종 결과물만큼은 온전히 나의 것이어야 한다는 '소유권(Ownership)'의 원칙이다.
오픈북 테스트라 할지라도 답안지는 결국 내가 작성해서 내 이름으로 제출해야 한다. AI가 짜준 우아한 코드나 유려한 에세이라 할지라도, 마지막 순간에는 내가 꼼꼼히 검토하고(Review), 내 논리로 소화하여(Internalize), "이것이 최선인가?"라고 되물어야 한다. 누군가 "이 문장은 왜 여기에 있습니까?", "이 로직은 어떤 원리로 작동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도구 없이도 내 언어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설명할 수 있음'의 유무가 바로 '인지 부채'와 '인지 자본'을 가르는 결정적인 분기점이다. AI가 써준 글을 읽지도 않고 복사해 붙여넣는다면 도구가 사라지는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겠지만, AI에게 열 개의 시안을 요구하고 그중 최선을 골라 내 문체와 철학으로 다듬는다면, 도구가 사라져도 그 선택의 안목과 논리는 내 머리에 고스란히 남는다.
그것이 바로 축적되는 자본이다. 우리는 '작성자(Writer)'에서 '편집장(Editor-in-Chief)'으로 지위를 옮겨가야 한다. 주니어 기자인 AI가 가져온 초고를 보고 "이건 팩트가 부족해", "논리가 비약되었어", "어조를 좀 더 부드럽게 바꿔봐"라고 지시할 수 있는 안목, 그것이 새로운 시대의 지적 역량이다.
그래서 나는 내 뇌의 용량을 더 이상 단순한 '기억'에 할애하지 않기로 했다. 사소한 팩트와 문법, 과거의 데이터는 기계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 꺼내 쓰면 그만이다. 대신 나는 질문을 던지는 힘, 맥락을 설계하는 능력, 그리고 결과물에 책임을 지는 '최종 결정권자'로서의 권한에 집중하려 한다.
기계가 가져온 벽돌들로 집을 짓게 하되, 그 집이 무너지지 않을지 판단하고,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고민하며, 최종적으로 문패를 다는 일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모든 것을 기억하는 천재가 될 필요가 없다. 기억을 부리고, 도구를 지휘하여, 끝내 탁월한 결론을 내는 사람. 그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그리고 내가 지향하는 새로운 지능의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