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인간이 설계해야 할 '질서'에 대하여

2026 All-Day-Project (044/365)

by J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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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40: chatGPT 사용 시 인지부하... 를 보고

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41: 엉망진창은 자동화 할 수 없다를 보고



며칠 전, "You Can't Automate a Mess(엉망진창은 자동화할 수 없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아티클을 읽었다. 2026년의 디자인 시스템 생존 전략을 다룬 이 글은, AI 도입을 앞둔 조직들에게 뼈 때리는 경고를 던진다. "시스템이 엉망이면, 자동화는 그 엉망인 상태를 더 빠르게 확산시킬 뿐이다." 이 문장은 디자인 시스템뿐만 아니라, 생산성 도구를 다루거나 글을 쓰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도 서늘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기술 낙관론자인 나의 머릿속에는 곧바로 반론이 떠올랐다.


"잠깐, 엉망인 걸 정돈하는 것도 AI가 제일 잘하는 일 아닌가?"


이 글은 그 단순한 반문에서 시작해, AI라는 강력한 엔진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고의 궤적을 담고 있다.


가설: AI를 청소부로 먼저 고용하면 된다?


과거의 규칙 기반 자동화는 입력값이 조금만 틀려도 에러를 뱉었다. 데이터의 형식이 완벽해야만 작동했기에, 엉망인 것은 자동화할 수 없다는 명제가 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거대언어모델(LLM)은 다르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맥락 이해 능력이 있다. 그렇다면 접근 방식을 바꾸면 되지 않을까? 엉망인 데이터를 바로 자동화 파이프라인에 태우는 게 아니라, 순차적 접근을 취하는 것이다.


생각을 전환해 보았다. AI를 건축가로 투입하기 전에 청소부로 먼저 고용하는 것이다. 뒤죽박죽인 변수명과 제각각인 문서 스타일, 정리 안 된 회의록을 AI에게 먼저 던져주고 표준 포맷대로 정리하게 시키는 식이다. 그렇게 정돈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비로소 자동화를 돌린다면, 엉망인 상태에서도 시스템 구축이 가능할 것이라 믿었다.


현실의 벽: 토큰의 한계와 밀러의 법칙


하지만 막상 AI에게 방대한 양의 '엉망진창'을 던져보면, 기대만큼 작동하지 않을 때가 많다. 앞뒤 말이 달라지거나, 중요한 맥락을 놓치는 환각 증세를 보인다. 나는 이것이 단순히 모델의 지능 문제가 아니라, 처리 용량의 병목, 즉 '토큰의 한계' 때문임을 깨달았다.


이는 인지 심리학의 '밀러의 법칙'과도 맞닿아 있다. 인간의 단기 기억 용량은 한 번에 7개 내외의 정보만을 처리할 수 있는데, 정보가 이 한계를 넘어서면 우리는 과부하에 걸려 멍해진다. AI의 컨텍스트 윈도우도 이와 유사한 한계를 지닌다.


아무리 성능 좋은 모델이라도 무질서한 정보가 한꺼번에 쏟아지면 정보의 우선순위를 판단하지 못하고 표류하게 되는 것이다. 컴퓨터 과학의 오래된 격언인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GIGO)"는 생성형 AI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했다. 다만 예전에는 에러가 났다면, 지금은 그럴듯한 쓰레기가 나온다는 점이 더 위험할 뿐이다.


해법: 인간의 사고 방식을 이식하기


결국 "AI에게 다 맡긴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대신, 인간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때 사용하는 인지적 전략을 AI 워크플로우에 적용해야 한다.


첫째는 추상화다. 우리는 책 한 권을 읽고 나서 모든 문장을 기억하지 않는다. 핵심 주제와 줄거리만 요약해서 장기 기억에 저장한다. AI에게도 마찬가지다. 원본 데이터 전체를 매번 입력하는 대신, AI에게 먼저 구조와 목차를 요약하게 하여 토큰을 적게 차지하는 지도를 그리게 해야 한다.


둘째는 분할 정복이다. 방 전체가 쓰레기장이면 인간은 무력감을 느끼지만, 책상 위부터 치우자고 마음먹으면 할 수 있다. AI 프롬프팅 기술인 '생각의 사슬'도 이와 비슷하다. 복잡한 문제를 한 번에 풀게 하지 않고, 단계별로 쪼개서 추론하게 하면 정확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소설을 쓸 때도 전체를 한 번에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플롯을 짜고 캐릭터를 설정한 뒤 집필하는 순서로 나누는 것이 성능 향상의 핵심이다.


셋째는 외부 뇌의 활용이다. 이는 검색 증강 생성(RAG) 기술의 원리이자, 내가 사용하는 옵시디언 노트의 철학이기도 하다. 모든 정보를 AI의 프롬프트 창에 쑤셔 넣는 것이 아니라, 잘 정리된 외부 저장소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만 꺼내 쓰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결론: LLM 할아버지가 와도 안 되는 것


생각을 발전시킨 끝에, 나는 다시 원점의 문장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엉망진창은 자동화할 수 없다. LLM 할아버지가 와도 그건 안 된다." 왜냐하면 무엇이 정돈된 상태인가라는 기준은 AI가 스스로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AI에게 청소를 시킬 수는 있지만, 양말을 서랍에 넣을지 빨래통에 넣을지 결정하는 규칙은 결국 주인이 정해줘야 한다. 그 기준이 없으면 AI는 그저 확률적으로 가장 그럴듯한 곳에 쓰레기를 숨겨둘 뿐이다.


AI는 마법 지팡이가 아니라 강력한 엔진이다. 엔진이 아무리 좋아도 레일이 깔려 있지 않으면 기차는 탈선한다. 여기서 레일을 까는 작업이 바로 인간이 해야 할 '프로세스 설계'다. 용어를 통일하는 표준화, 데이터 간의 관계를 정의하는 구조화, 그리고 업무를 잘게 쪼개는 모듈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흔히 AI가 내 업무를 대체해주길 바라지만, 역설적으로 AI를 잘 쓰기 위해서는 더욱더 인간적인 기획력과 설계 능력이 필요하다. 엉망인 채로 던져두고 기적을 바라는 게 아니라, AI가 전력 질주할 수 있도록 내 생각과 데이터를 정돈하는 것. 그것이 기술 낙관론자인 내가, 다가올 2026년을 준비하며 직관과 시스템을 다듬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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