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ll-Day-Project (045/365)
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40: chatGPT 사용 시 인지부하... 를 보고
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41: 엉망진창은 자동화 할 수 없다를 보고
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42: 위고비와 위스키 재고 관련 기사를 보고
최근 우연히 본 KBS 뉴스의 한 장면은 꽤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제목은 "위스키 재고 '최대', 항공은 '돈벼락'… 비만약이 바꾼 세상"이었습니다.
비만 치료제, 위스키, 그리고 항공사. 언뜻 보기에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이 세 가지 키워드가 하나의 뉴스 안에서 기묘하게 얽히고설키고 있었습니다. 이 기묘한 인과관계를 따라가다 보니, 문득 20년 전 고등학생 시절 읽었던 류시화 역, 틱낫한 선사의 책 속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이 종이 한 장 속에는 구름이 들어 있습니다. 구름이 없으면 비가 없고, 비가 없으면 나무가 자라지 못하니까요."
세상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상호의존(Interbeing)'의 가르침. 20년 전에는 그저 철학적인 잠언으로만 느껴졌던 이 말이, 2026년 지금 자본주의의 최전선에서 데이터로 증명되고 있었습니다.
이 거대한 변화의 진원지는 바로 '위고비'와 같은 GLP-1 계열의 비만 치료제입니다. 이 약은 뇌의 보상 회로에 작용해 식욕을 억제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기전이 음식뿐만 아니라 알코올에 대한 갈망까지 줄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연구 결과, 투약자들의 알코올 섭취가 41%나 감소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는 지구 반대편 주류 업계에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코로나 시절 '혼술' 열풍을 믿고 대량 생산해 둔 위스키 원액들이, 사람들이 술을 찾지 않게 되자 갈 곳을 잃은 것입니다. 현재 주요 업체들의 재고는 32조 원, 10년 만에 최대치라고 합니다. 약 한 알이 거대한 주류 시장의 재고 그래프를 바꿔버린 셈입니다.
반면, 항공 업계는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승객들의 평균 체중이 줄어들면 비행기가 가벼워지고, 이는 곧 막대한 연료비 절감으로 이어집니다. 미국 항공사들은 이 '강제 다이어트' 덕분에 올해 최대 8,500억 원을 아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약 한 알로 인해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는 이 아이러니한 현상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나비효과'이자, 불교 철학에서 말하는 '연기(緣起, 인연생기)'의 완벽한 예시입니다.
어릴 적 읽었던 책에서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은 다분히 시적이거나 종교적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 연결은 '공급망(Supply Chain)'과 '소비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우리 삶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무심코 삼킨 알약 하나가, 누군가의 저녁 식탁 풍경을 바꾸고, 지구 반대편 공장의 가동률을 멈추게 하며,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연료 효율까지 결정짓습니다. 철학적 깨달음이 실물 경제의 숫자로 치환되는 순간입니다.
이런 연결 고리를 미리 예측할 수 있을까요? "비만약이 나오면 위스키 주식을 팔고 항공주를 사야 한다"는 식의 통찰은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이는 단순히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이 아니라, 현상의 바로 다음 단계가 아닌 그 너머를 보는 '2차적 사고(Second-Order Thinking)'의 영역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1차적 사고는 "비만약이 나왔으니 다이어트 식품 회사가 힘들겠구나" 정도의 직관적인 반응에 머무릅니다. 하지만 2차적 사고는 연쇄적이고 입체적입니다. "식욕이 줄면 술도 덜 마실 테니 위스키 재고가 쌓이겠네", 혹은 "승객의 몸무게가 줄면 운송 수단의 에너지 효율이 바뀌겠구나"와 같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를 하려면 의도적인 '이질적인 것들의 충돌'이 필요합니다. 기술(Tech)의 변화를 보면서 인간 본성(Humanity)의 변화를 상상하고, 다시 그것을 경제(Economy)의 언어로 풀어보는 연습입니다.
제가 애용하는
비만약
이라는 기술 노트와
욕망
이라는 철학 노트를 연결해 볼 때, 남들은 보지 못하는 새로운 시나리오가 탄생합니다.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하게, 그리고 더 촘촘하게 연결되고 있습니다. 20년 전 책 속의 문장이 오늘날 비즈니스 인사이트의 핵심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필요한 능력은 엄청난 데이터를 분석하는 기술 그 자체보다, "그래서 그다음은(And then what)?"이라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흩어져 있는 점들을 연결해 하나의 별자리를 그려내는 '상상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나는 틱낫한의 구름을 생각하며, 뉴스 속 숨겨진 연결고리를 찾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