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ll-Day-Project (080/365)
제5장. Narrative Expansion (이 글)
4장 끝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하드웨어를 정비하고, 데이터를 정리했다 — 그러면 이 시스템으로 무엇을 만들 것인가?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이야기를 써보자.
갑자기 웬 창작인가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을 다시 따라가보면, 이 제안은 꽤 자연스럽다. 1장에서 우리는 욕망의 수신 범위를 넓히자고 했다. 나 → 가족 → 공동체 → 천하. 2장에서는 '나'라는 서사적 자아를 해체했고, 3장에서는 몸이라는 인프라를 정비했고, 4장에서는 생각을 밖으로 꺼내 네트워크로 만들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나'의 경계는 조금씩 느슨해졌다. 감정도 로그이고, 생각도 로그이며, '나'는 그것들의 관리자일 뿐이다.
그런데 한 가지가 남아 있다. 지금까지의 연습은 전부 나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내 감정을 관찰하고, 내 몸을 자각하고, 내 생각을 정리했다. 1장에서 말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경로에서, 아직 '수신(修身)'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자아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느슨해진 자리에 다른 존재를 들여놓는 연습은 아직 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쓰는 것은 그 연습이다.
한번 해보자. 오늘 지하철에서 맞은편에 앉은 사람을 떠올려보자. 아무나 좋다. 피곤한 표정의 중년 남성.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고 있다.
이제 이 사람의 아침을 상상해보자. 몇 시에 일어났을까. 아침을 먹었을까. 출근길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가족이 있을까. 있다면 오늘 아침 아이에게 뭐라고 말하고 나왔을까. 어젯밤에 잠은 잘 잤을까. 무슨 걱정이 있을까.
이것만으로도 이미 자아 확장이 시작된다. 내가 아닌 존재의 내면에 들어가보는 행위. 그의 시점에서 세상을 잠시 바라보는 행위. 이것이 서사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다. 그리고 이것은 1장에서 말한 공감 회로의 수신 범위를 강제로 넓히는 훈련이기도 하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보자. 상상한 것을 글로 쓰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과 글로 쓰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머릿속에서는 모호해도 괜찮다. "대충 힘들어 보이는 사람"으로 뭉뚱그릴 수 있다. 하지만 글로 쓰는 순간, 구체적이어야 한다. 이 사람은 왜 피곤한가. 야근 때문인가, 아이 밤수유 때문인가, 아니면 어젯밤 부부 싸움 때문인가. 이유가 달라지면 이 사람의 내면이 완전히 달라진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 구체성을 채워 넣어야 한다는 뜻이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삶에 대한 상상이 비약적으로 정밀해진다.
형식은 정말 아무래도 좋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시나리오든, 일기 형식이든. 세 줄짜리 장면 묘사도 좋다. 중요한 것은 '나'의 서사 바깥으로 나가보는 것이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눈으로 한 장면을 보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것.
이것을 꾸준히 하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일상에서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편의점 알바생이 무표정할 때, 예전에는 "불친절하네"로 끝났을 장면에서 "이 사람은 오늘 몇 시간째 서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회의에서 공격적으로 나오는 동료를 보면, "왜 저래"가 아니라 "저 사람이 저렇게 방어적인 이유가 뭘까"라는 호기심이 생긴다. 서사적 근육이 발달하면, 세상이 단면이 아니라 입체로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에 AI를 도구로 활용할 수도 있다. 4장에서 AI를 사고의 거울로 쓸 수 있다고 했는데, 서사 창작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내가 쓴 짧은 장면을 AI에게 보여주고 "이 인물이 이렇게 행동한 동기가 뭘까?"라고 물으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심리적 층위가 드러나기도 한다. 혹은 "이 장면을 이 인물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시점에서 다시 써줘"라고 요청하면, 같은 사건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은 2장에서 말한 시점의 전환 — 주체에서 관리자로의 전환 — 을 서사의 차원에서 극대화하는 것이다.
물론 AI가 써준 것을 그대로 쓰라는 말이 아니다. 4장에서 말했듯, AI는 거울이지 스승이 아니다. AI의 제안을 보고 "아, 이런 시점도 가능하구나"라고 깨닫는 것이 핵심이다. 그 깨달음은 내 것이다.
마지막으로, 왜 이것이 이 시리즈의 마지막 장인지를 말해야겠다.
1장에서 우리는 도덕을 재정의했다. 도덕은 욕망의 확장이라고. 그리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경로를 그렸다. 나 → 가족 → 공동체 → 천하. 서사 창작은 이 경로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한다. 가족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은 수신에서 제가로 가는 길이고, 공동체의 문제에 반응하는 것은 치국의 영역이다. 하지만 만나본 적 없는 존재, 심지어 실재하지 않는 존재의 내면에까지 들어가보는 것 — 이것은 천하의 영역이다.
한 편의 이야기를 쓸 때, 우리는 악당에게도 논리를 부여해야 하고, 영웅에게도 결함을 허락해야 한다. 나와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인물의 시점에서 세상을 그려봐야 한다. 이것은 고도의 도덕적 시뮬레이션이다. 내 욕망의 수신 범위를, 상상력의 힘으로 최대한 넓히는 훈련이다.
거창할 필요 없다. 오늘 마주친 한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짧은 상상이, Life OS의 수신 범위를 한 뼘 넓혀줄 것이다.
에고라는 감옥에서 나와, 시스템이라는 광장에 서자. 그 광장에서 당신이 아닌 누군가의 이야기를 써보자. 그것이 이 가이드북이 안내하는 여정의 끝이자, 아마도 진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