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ll-Day-Project (083/365)
내 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46: 삶의 원칙/상수와 변수의 균형 에 이어서
삶은 때로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파도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저는 '상수와 변수의 균형'이라는 단순한 원칙을 통해 이 복잡하고 예측 불허한 세상을 항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상수는 제가 아무리 애써도 바꿀 수 없는 것, 변수는 제 선택과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을 뜻합니다.
이 작은 구분은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 결정하는 지혜가 되었고, 나아가 삶의 불확실성을 돌파하는 단단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통찰은 결코 현대인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수천 년 전, 고대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남긴 명제와도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이다. 세상의 일들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구분하라." 통제할 수 없는 상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통제 가능한 변수에 온전히 집중하라는 이 오래된 지혜는 현대의 삶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삶의 모든 상황을 상수와 변수로 나누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집니다. 모건 하우절은 『불변의 법칙』에서 "세상은 변수가 존재하는 것이 상수이다"라는 통찰을 제시합니다. 세상이 계속 변한다는 사실 자체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죠.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기대는 '상수'들 중 상당수는, 사실 과거의 경험이 귀납적으로 누적되어 만들어진 '확률 높은 가설'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단 한 마리의 검은 백조(Black Swan)가 나타나는 순간,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상수는 단숨에 깨져버립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충격이 일상화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안티프래질(Antifragile)'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이는 단순히 충격을 견디는 회복력(Resilience)을 넘어, 혼란과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성장하는 성질을 뜻합니다.
이처럼 예측할 수 없는 변화 속에서 오히려 스스로를 진화시키기 위해, '열린 사고'는 단순히 마음이 넓은 상태를 넘어 가장 치열한 생존 전략이 됩니다. 퉁구스카의 소설 『납골당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다음 구절은 이 지점을 날카롭게 짚어냅니다.
"세상이 그렇게 돌아간다는 것과 세상은 원래 이래야 한다는 건 굉장히 다른 겁니다.
(...)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들어요."
이 거친 문장은 현재의 룰(상수)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영원한 진리로 맹신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바꿀 수 없는 현실을 수용하되, 언제든 그 상수가 무너질 수 있음을 가정하고 새로운 변수(플랜 B)를 준비하는 태도. 충격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안티프래질의 삶은 바로 이 유연함에서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상수는 그저 타파해야 할 답답한 한계일 뿐일까요?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자유의지와 노력이 의미를 가지려면, 절대 변하지 않는 단단한 상수가 필요합니다. 매력적인 서사 속에는 중력이나 마법의 대가처럼 가혹한 세계의 섭리가 존재합니다. 그 척박한 한계를 극복하려 발버둥 치는 주인공의 선택이 묵직한 감동을 주는 것처럼, 우리 삶의 가혹한 상수들 역시 내 삶을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훌륭한 무대 장치입니다. 무대가 굳건해야 그 위에서 펼치는 나의 연기(변수)가 가장 찬란하게 빛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무대 위에서 '건강한 수용'과 '무력한 체념'을 구별하는 일입니다. 이 둘의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증명해 낸 인물은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입니다. 그는 나치 강제 수용소라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변수가 '0'에 수렴하는 극한의 상수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즉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
나이라는 물리적 시간, 굳어버린 체질, 불공평해 보이는 출발선은 당장 어찌할 수 없는 상수입니다. 이를 핑계 삼아 주저앉는다면 그것은 '체념'입니다. 하지만 그 한계를 냉정히 인정한 뒤, 그 안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 선택하고 오늘 하루의 땀방울을 통제하는 것은 위대한 '수용'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강조한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도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거대한 무대(상수)의 부조리함을 꿰뚫어 보되(서생적 문제의식), 그 무대 위에서 지금 당장 내가 딛고 설 위치와 연기(변수)를 정교하게 실행해 내는(상인적 현실감각) 팽팽한 균형 감각입니다.
이영도의 소설 『드래곤 라자』에는 이런 대사가 등장합니다.
"신은 변화할 수 없지만 인간은 변화할 수 있지요."
변화의 주체로서 우리는 어떻게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은 생물학적 진화, 그중에서도 '돌연변이'의 메타포에 있습니다.
자연이 예측 불가능한 거대한 위기에 대처하는 완벽한 전략은 바로 '다양성'입니다. DNA라는 고정된 유전자 구조(상수)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상수들이 교차하고 결합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돌연변이'라는 변수가 태어납니다. 안정된 환경에서 이 변수는 종종 쓸모없는 에러 취급을 받습니다.
그러나 빙하기가 오거나 운석이 떨어지는 치명적인 환경 변화(블랙스완)가 닥쳤을 때, 종을 살아남게 만드는 구원자는 바로 그 엉뚱해 보이던 돌연변이들입니다. 상수와 상수가 만나 이전에 없던 완전히 고유한 특성, 즉 '창발성(Emergence)'을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예를 들어 '내향적이고 조용한 성격'이라는 나의 고유한 상수와,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직무'라는 환경적 상수가 충돌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두 상수를 그저 방치하면 고통이 되지만, 이를 능동적으로 결합하면 '화려한 언변 대신 깊이 있는 글과 정교한 시각 자료로 청중의 마음을 울리는 독창적인 프레젠테이션 스타일'이라는 새로운 돌연변이(변수)가 탄생합니다.
내게 주어진 상수들을 이리저리 결합해 보고 부딪혀보며 끊임없이 '작은 변수'들을 세상에 던져놓는 것. 이질적인 상수들을 엮어 기적 같은 창발성을 이끌어내는 것. 이것이 불확실성을 뚫고 나아가는 가장 지혜로운 인간의 진화 방식입니다.
긴 사유를 거쳐, 저의 삶의 원칙은 다음과 같이 진화했습니다.
의심하는 수용: 바꿀 수 없는 상수는 스토아 철학자처럼 흔쾌히 수용하되, 그것이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임시 동맹임을 기억하고 안티프래질의 태도를 기른다.
무대 위의 주체성: 가혹한 현실을 체념의 핑계가 아닌 나를 빛나게 할 훌륭한 무대로 삼고, 내게 남은 유일한 자유인 '오늘 당장의 행동과 태도'에 집중한다.
결합과 창발: 내게 주어진 상수들을 탓하는 대신, 그것들을 끊임없이 섞고 결합하여 나만의 고유한 돌연변이(새로운 변수)를 창출하는 진화의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일상의 작은 한계를 깨트리려는 오늘의 시도 하나가, 혹은 내 안의 콤플렉스와 환경을 엮어 만들어낸 새로운 돌연변이 하나가 거대한 진화를 이끌어냅니다. 세상이 나를 바꿔주길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될 때,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라는 체 게바라(혹은 볼테르)의 낡은 격언은 비로소 현실이 됩니다.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결합하고 돌연변이를 만들어내며, 더 단단하고 멋진 삶을 향해 진화해 나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