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간다는 것

2026 All-Day-Project (097/365)

by Jamin

함께 간다는 것 — 프롤로그: 왜 이 이야기를 시작하는가


어느 순간부터 '협업'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일을 하면서 매일같이 듣는 말이에요. 협업이 중요하다, 함께 해야 한다, 시너지를 내야 한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협업이 무엇인지, 왜 어떤 협업은 놀라운 결과를 만들고 어떤 협업은 서로를 지치게만 하는지, 거기까지 파고드는 이야기는 의외로 드물었어요. "협업 잘하세요"라는 말은 많은데, "협업이 왜 이렇게 어렵죠?"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해주는 사람은 적었달까요.


돌이켜보면 저도 협업에 대해 단순하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좋은 사람들이 모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마음만 맞으면 일은 자연스럽게 풀릴 거라고 믿었어요. 물론 그런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도 엇나가고, 마음이 맞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던 적이 있었어요. 능력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둘 이상 모이면 생기는, 그 자체의 어려움이 있었던 겁니다.


그 어려움의 정체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주변을 조금 더 주의 깊게 들여다보기 시작했어요.


친구와 둘이 하는 일도 협업이고, 회사에서 수백 명이 움직이는 것도 협업입니다. 국가 간 기후 조약도, 우리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벌어지는 소리 없는 줄다리기도 따지고 보면 협업의 한 형태죠. 그런데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어요. 둘이서 할 때의 어려움과 열 명이 할 때의 어려움, 그리고 수천 명이 할 때의 어려움이 단순히 "더 복잡해진다" 수준이 아니라는 겁니다. 규모가 달라지면 문제의 성격 자체가 바뀝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신뢰'가 핵심이에요. 내가 믿어도 될까, 이 사람이 나를 배신하지 않을까. 그런데 세 명이 되는 순간 갑자기 '편 가르기'가 시작됩니다. 둘이 친해지면 한 명이 밀려나고, 그 구도가 수시로 바뀌죠. 팀 단위로 가면 이번에는 '조율 비용'이 문제가 됩니다. 사람이 늘수록 소통의 연결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까요. 회사로 가면 더 이상 개인의 선의로는 돌아가지 않아서 '구조'가 필요해지고, 국가 수준이 되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끼리 어떻게 약속을 지키게 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힙니다.


재미있는 건 이 각각의 단계에 이미 이름이 붙어 있다는 거예요. 게임이론에서는 두 사람의 협력을 '죄수의 딜레마'로 설명하고, 사회학에서는 세 명의 관계를 '트라이어드'로 분석합니다. 경제학에서는 회사의 존재 이유를 '거래비용'으로 풀어내고, 정치학에서는 공동 자원의 문제를 '공유지의 비극'이라 부릅니다. 이름은 학술적이지만 내용은 전혀 낯설지 않아요. 우리가 매일 부딪히는 일들에 누군가 이미 이름을 붙여둔 것뿐이니까요.


이 시리즈에서는 그 이름들을 하나씩 찾아가 보려 합니다. 두 사람 사이의 신뢰에서 출발해서, 세 명의 역학, 팀의 한계, 회사라는 발명품, 경쟁자 사이의 협력, 그리고 국가 규모의 약속까지. 어려운 이론을 소개하려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겪으면서도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것들의 이름을 찾아가는 여정이 될 거예요.


시작은 간단한 질문 하나입니다. 함께 간다는 건, 정확히 어디서부터 어려워지는 걸까요?

다음 편에서 그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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