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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소음 차이

게스트하우스가 바꾼 하루#10_층간소음

by 김윤섭

층간소음의 끝판왕은 뭘까. 드럼!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 방음조치를 해도 해도 아래층에 끝없이 울린다. 쿵 따락 거리는 드럼 비트는 무슨 곡을 연주하는지 알만큼 너무 생생하다. 마치 콩나무를 타고 내려오는 거인의 발소리처럼 쿵쾅거린다. 연주가 시작되면 온 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벽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소리를 동화 속 잭처럼 싹둑 잘라버릴 수도 없다. 현실 속 층간소음에 과연 해피엔딩은 있을까.


게스트하우스 위층에 음악학원이 들어왔다. 건물 내 공실이 많았던 터라 처음엔 내심 반가웠다. 건물 내 퀭한 기운을 떨치고 활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도 잠깐, 곧 심각한 고민거리가 되었다. 드럼 소리 때문이다. 4층 음악학원에서 두드리는 드럼 소리가 2층 게스트하우스까지 너무 크게 울렸다. 수시로 올라가 조용히 해 달라고 말했다. 우리 게스트하우스는 숙박도 하지만, 별도 모임실이 있어 낮에 간간히 공간 대여를 한다. 비즈니스 미팅도 하고, 교육도 하고, 상담, 스터디, 대여자별 다양한 목적의 모임을 한다. 모임은 대화가 많아 드럼 소리가 직접 방해가 된다. 한번 손님 항의를 받으면 이후에는 드럼 소리만 들려도 신경 쓰인다. 숙박 손님 중에 피곤해 낮에 조용히 쉬겠다는 사람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심장이 조마조마하다. 하필 드럼실 바로 아래 모임실과 많이 사용하는 개인용 객실이 있어 더 그렇다. 코로나로 손님이 뜸해졌지만, 드럼 소리는 여전히 그칠 줄 몰랐다. 참다 참다못한 한 날은 직접 4층에 올라갔다. "드럼 소리가 너무 크게 울려요. 시끄러우니 좀 조용히 해 주세요." 스텝분께 말하고 내려온 얼마 후 사장이 직접 내려왔다. 이쪽저쪽 소리를 들어본 후 말했다. "건물 벽을 타고 내려오는 울림 같아요. 바닥에 방음막을 넣고 창을 닫아도 어쩔 수 없는 소리가 있습니다."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고, 들어주는 태도에 금세 마음이 수그러들었다. 그 후 얼마 간 소리가 주는 듯했다. "뭔가 새로 방음시설을 했나?" 이렇게만 유지되어도 살 것 같았다.


어느 날 다시 드럼 소리가 크게 들렸다. 하나 있는 모임이 끝나기까지 계속됐다. 이래서 모임이 제대로 되겠나 싶을 정도였다. 다시 4층에 올라갔다. 마침 사장도 그 자리에 있었다.

"이해하려고 했지만, 오늘처럼 드럼 소리가 계속 세게 나면 같이 있기 어려울 것 같아요."
"너무 민감한 게 아닌가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요."

"지난번부터 계속 얘기하고, 서로 잘 이해하고 지내보려고 했는데요. 영업을 하는 것 자체도 위축이 되니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할 것 같아요. 연락처 주시면, 모임을 하거나 필요할 때마다 연락할게요. 정 안 되면 경찰이나 구청에 고발하거나 건물 주인한테라도 얘기해보려고요."

"제가 음향을 하는 사람인데요, 그런 소리는 신고 대상도 안 될 거예요. 차 소리도 크잖아요."

"아니, 드럼 하고 차 소리가 같나요? 차는 백색 소음처럼 아무리 커도 그냥 지나가고, 드럼 소리는 반복적이고 멜로디도 선명해 주의를 기울이게 되잖아요. 두 가지만 조치해주세요. 먼저, 방음시설을 더 해서라도 최대한 보강 조치를 해주시고요. 다음은 드럼 치는 사람에게 건물 전체에 울리니까 좀 살살 쳐달라고 말해주세요. 연습인데 그렇게 있는 힘껏 기분 내면서 칠 필요는 없잖아요."

대화 마지막에 또 황당한 말을 들었다.

"나는 음악 하는 사람이라 항상 이런 소리를 들어 익숙한데 이 정도 소리는 들을만하지 않나요?"

"전혀 그렇지 않죠. 설령 우리 게스트하우스에 사람이 많아 떠든다 해도 그건 내가 선택한 거고 영업에 필요하다면 문제 되지 않아요. 하지만 듣기 싫은데 무조건 강압적으로 들어야 되는 소음은 완전히 다르죠!"

음악학원 사장은 자기같이 다른 사람한테도 드럼 소리가 음악처럼 들리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왜 이제껏 그렇게 시끄럽다고 말해도 돌아서면 변함없었는지 분명히 알게 됐다. 누가 성악가 조수미의 일화를 말해줬다. 이탈리아에 있을 때 성악 연습하다가 집을 몇 번 옮겼다는 이야기다. 세계적인 소프라노의 노래도 다른 사람에게는 소음이 될 수 있다. 심지어 음악을 좋아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경우도 그렇다.


"이제 종종 찾아와서 번거롭게 해 드리겠습니다." 점잖은 선전포고와 함께 소음과의 불편한 동거가 본격 시작됐다. 소리 날 때마다 인지시켜주고 요청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보통 때는 아니지만 모임이 있거나 필요할 때마다 바로 문자를 남겼다. "사장님 2층입니다. 오늘 00시부터 00시까지 00가 있으니 드럼 살살 좀 쳐주세요." 이런 문자의 약발은 오래가지 못했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는 듯했지만, 곧 공허한 메아리처럼 느껴졌다. 다시 전화를 들고 항의 수위를 높여야 했다. 그러자 한 날은 사장이 드럼 강사와 함께 다시 찾아왔다. 소리 정도와 울리는 곳도 더 꼼꼼하게 보고 갔다. 우는 아기 젖 준다는 말처럼 계속 두드리자 그런대로 효과는 났다. 소음 생산자가 직접 와봤으니 이제 정말 달라질 것 같았다. 드럼 강사가 올라가며 말했다. "전화 올 때마다 사장님이 저쪽에서 머리를 움켜쥐고 괴로워하세요. 드럼 레슨을 아예 없앨까 고민도 하시고요. 이전에 있던 다른 곳에서도 소음 때문에 옮기게 돼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다시 소음으로 문제를 일으킨단 말인가! 기대와 달리 이번에도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소음과 문자, 다시 전화. 이런 패턴이 반복됐다. 뭐든 반복할수록 점점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문자하고 전화해도 드럼 소리가 더 커질 때도 있었다. 이러다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전화를 했다. "사장님, 정 이러시면 경찰에 영업 방해로 고발할 수도 있습니다!" 서로 감정이 격해졌고 목소리가 커졌다. 이러다 살인까지 나고 하는 거겠지. 음악학원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더 이상 평화로운 공존은 어려워진다. 내가 괴로운 만큼 상대방을 성가시게 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우리 음악학원 사장은 양반이시다. 그 주가 끝나갈 때즘인가 전화가 왔다.

"다음 주 월요일 오전부터 소음이 날 수 있어 미리 알려드립니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바닥을 뜯고 다시 방음 공사를 하려고요."

드디어 진짜가 왔다! 공사를 한다고? 그럼 이제 정말 소음에서 해방되는 것인가? 자체적인 보완 조치보다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될 것 같았다. 설렘을 안고 다음 주를 기다렸다.


음악학원의 드럼은 소음의 신인가. 영원 불사인가. 그렇게 조치했음에도 여전히 울림은 변화가 없다. 조금 둔탁해졌나 싶을 정도였다. 방음 공사 후 다시 음악학원 사장이 내려왔다. 소음이 크게 줄지 않아 다시 상황을 알려드렸기 때문이다. 공사했다고 맘 놓고 드럼을 치면 소음이 더 악화될 것 같았다.

"동그란 방음판을 드럼실 바닥에 300개나 더 깔았어요. 방음 시설한다고 인테리어 비용의 절반이 들었네요."

음악학원 사장은 손바닥을 쫙 펴 보이며 한 마디 덧붙였다. "바닥을 이만큼이나 더 올렸어요. 이러다 바닥이 천장에 닿겠네요."

실소가 났지만, 그러면 뭘 하나. 여전히 울림은 그대로인데. 하지만 바뀐 건 있다. 바로 그 사장님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다. 그만큼 상대방을 배려하고, 비용을 들여서라도 개선하고자 하는 마음에 진정성을 느꼈을까.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맞추고자 노력할 때 비로소 음악은 시작된다. 타인의 소리가 그저 소음에서 음악으로 바뀌는데는 마음과 마음이 맞닿는 화음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음과 시름하지만 오늘 하루도 잦아들 소리 가락을 찾는다. 거슬리는 것들과 공존하며 달려갈 길을 흔들리지 않고 어떻게 완주할 수 있을지 자신만의 노래를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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