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소방 당국을 고발합니다
게스트하우스가 바꾼 하루#9_소방시설 관리
코로나에도 죽지 못한 게스트하우스 운영자의 괴로움은 언제 끝날까. 소규모 숙박업소를 운영하다 보면 가끔 복병을 만난다. 바로 관공서의 습격이다. 먼저는 위생점검. 2년에 한 번 구청 위생과에서 나와 업소별 위생 등급을 매겨간다. 가끔 대장균 검사한다며 정수기 물도 떠간다. 요즘은 코로나 19 때문에 구청에서 수시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보낸다. 정원 제한, 파티 금지 등이 골자다. 시청 담당 직원이 직접 점검하러 나오기도 한다. 이런 류는 애교 수준이다. 최근 역대급 '큰 놈'이 왔다. 바로 소방점검이다. 그것도 아주 특별한.
점검 날 두 분의 인상 좋아 보이는 소방관이 들어왔다. 한 분은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선임자였고, 다른 한 분은 젊은 담당 직원이었다. 보통 불시 소방 점검하면 떠오르는 건 비상통로 적체물이나 소화기 관리상태 확인 정도 아닐까,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날은 왠지 분위기가 달랐다. 처음에 등록증 등 기본 서류를 확인하고는 현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선임자가 대뜸 물었다.
"저기 비상유도등 표시가 작아 보이는데, 사이즈가 어떻게 되나요? 큰 것으로 바꾸셔야 합니다."
"예? 저기 큰 것도 있는데요."
복도 다른 쪽을 보여줬다. 거기 있는 비상구도 보고 문 밖 연결 상태나 적체물 등 이것저것 살피고는 다시 객실로 갔다.
"객실 내 휴대용 조명등은 있나요?"
"예, 각 호실 수량만큼 여기 두었습니다."
"이런 것 말고요. 휴대용 비상조명등이라고 소방용이 있습니다."라고 지적하고는 방 전등 스위치 비스듬히 조금 윗부분에 부착하라고 했다. 각 방에서 비상구까지 탈출 경로를 그린 안내도도 비치해야 된다는 설명과 함께. 여기까지는 좋았다.
"블라인드는 방염인가요?"
"..."
"방염 블라인드는 자체에 방염필증이 붙어있습니다. 전용 제품을 구비하거나 아예 기존 블라인드를 떼어내야 합니다. 기존 제품에 별도 방염제를 칠하는 것은 안됩니다."
뭐가 이렇게 점검할 게 많지, 슬슬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벽지는 뭘로 되어 있죠?"
"아마 실크(고급져 보이니까...)"
"그럼 합지로 다 바꾸셔야 해요."
"아, 아니에요. 합지 같습니다."
이후에도 복도 벽 마감재는 뭔지, 바꿔야 할 것 같다 등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었다. 담당 직원이 벽 마감재 단면이 튀어나온 곳을 직접 확인하면서 가까스로 시정 조치는 면했다.
그러다 또 하나 걸렸다.
"이 문은 뭔가요?"
"다목적 공간입니다."
"그런데 왜 이 안에 소방 발신기가 있죠? 발신기는 불이 나면 경보를 위해 눌러야 해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저 바깥 복도로 옮겨주세요."
그러자 함께 있던 건물 자체 소방담당자가 말했다.
"이 발신기는 허가받을 때 여기 있어도 괜찮다고 한 것입니다."
"누가 그랬어요? 안 됩니다."
거듭 옮기라 했다. 아마 이전에는 다목적 공간이 외부 복도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막혀서 그런 것 같았다.
진짜 문제는 마지막에 터졌다.
"복도와 천장에 목재로 된 인테리어 부분이 많은데 방염 처리는 했나요?"
"아마, 처음 인허가받을 당시 문제없었는데..."
"그럼 방염필증은 있나요?"
"중간에 새로 인수한 거라 지금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럼 다시 하셔야 됩니다."
꾹꾹 눌러왔던 게 드디어 폭발했다. 서러워 울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지금 점검 나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현재 게스트하우스는 손님이 거의 없고, 공실로 폐쇄 직전입니다. 지난 3차 대유행 이후에는 더 심각합니다. 이러시면 안 그래도 힘든 소상공인을 두 번 죽이는 격입니다!"
"사정은 알겠는데 특별 지시가 내려와서 저희도 어쩔 수 없어요."
"그럼 방염페인트 같은 거는 손이 많이 가니 다음 점검 때나 코로나가 잠잠해질 때까지만이라도 좀 연장해 주세요."
"방염페인트 한 통만 사다 바르면 되는데..."
더 이상 어떤 말도 통하지 않아 시정조치 기간만 좀 연장받는 선에서 소방점검을 끝냈다.
다른 건 간단하게 조치가 가능했지만, 소방 발신기 이전은 비용이 꽤 드는 작업이었다. 방염페인트도 전문가를 쓰면 돈이 많이 든다고 해서 직접 페인트를 사서 발랐다.
얼마 후 소방서에서 다시 확인 차 나왔다.
"얘기하신 조치는 다 했습니다."
"방염페인트 칠하고 소방서에서 방염필증은 받았죠?"
페인트통에 붙어있던 방염필증을 보여줬다.
"그것 말고요. 방염페인트는 전문업체가 작업 후 시료를 떼어내 소방서에 방염성능 검사와 성적서를 받아야 합니다."
며칠간의 페인트 작업이 뻘짓이 되는 순간이었다. 거기에다 화재감지기도 3개 추가로 설치하라고 했다. 이전 사무실에 칸막이를 쳐서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분통이 터졌다. 답답한 마음에 민원을 올렸다.
(민원명) 코로나 시기 지역 소상공인 두번 죽이는 특별 소방 점검 유예나 기간 조절을 부탁드립니다.
중부 소방서 관할 소상공인 가족입니다. 최근 소방서에서 점검을 나왔습니다. (화재안전정보조사 등) 2017년 기존 업체 인수 후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몇 가지 지적을 받고 시정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중 일부는 비용도 꽤 들고 전반적인 인테리어 부분을 손봐야 해 상당한 부담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많은 자영업자들이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서 있습니다. 업종 특성상 지난해 2월 코로나 발생 이후 손님이 거의 끊기다시피 했고, 지난해 말 3차 대유행 이후 지금까지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수입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문을 닫고 싶어도 계약 기간이나 대출 등 때문에 2년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시설은 대부분의 시간이 거의 공실로 비어 있습니다.
그런데 꼭 이런 시점에 특별 소방 점검을 나와서 거의 초창기 새로 시설을 만들 때 보는 수준 같이 무자비한 시정을 요구해야 합니까. 안 그래도 코로나로 절망에 빠진 자영업자를 두 번 죽이는 격입니다. 물론 소방서의 입장과 규정은 있겠지만, 2012년 인허가를 받을 당시 절차상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17년 새로 인수한 이후에도 별문제 없이 쓰고 있는 부분입니다. 근 10년 동안 이상 없이 쓰던 부분을 꼭 이 코로나 시국에 다 바꾸라는 소방 당국은 과연 어떤 '특별한' 사정이 있는 건가요.
원칙도 좋지만,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정말 특별한 위기에 처한 소상공인들의 입장을 조금만 더 헤아려주시기를 소방 당국에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코로나 시국 특별 소방 점검에 대한 현실적인 요청
1. 긴급하고 일상적으로 당장 필요한 부분 위주의 시정 조치
2. 비용이 많이 들고 상당한 현상 변경이 필요한 부분은 코로나 종식 시점까지 보완 기간 연장. 수입이 없고 각종 고정 비용에 적자라 수리할 돈도 없지만, 언제 문 닫을지도 모르는데 주요 시설을 보완하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음
3. 코로나 시국 공실 등 업체 특수 상황에 따른 특별 점검 유예 등
출처 https://news.sbs.co.kr/news
이후 소방서 민원 담당자에게 전화가 와 또 한번 호소했다.
"아니, 10년 동안 아무 말 없다가 지금 와서 이렇게 다 바꾸라고 하면 어쩌라는 겁니까. 그것도 코로나 시국에. 그럼 그동안 소방서 담당자들은 아무 일도 안 했다는 건가요."
"그건 아니고 1-2년 전에 새로 법이 바뀐 것입니다. 아마 그동안 대상이 아니던 작은 업체도 점검에 포함된 것일 수도 있어요. 저희도 나가기 싫지만 대형 빌딩 화재 이후 대통령 지시 사항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저도 그런 것 같아 민원 올렸습니다. 현재 특수 상황을 감안해 정책적으로 융통성을 좀 가실 수 있도록요. 꼭 위에 건의 부탁드립니다."
과연 이런 호소가 먹혔을까. 민원 후 다시 찾아온 담당 소방관들에게 최종 변론을 했다.
"방염페인트 필증 받는 거라도 기한을 좀 연장해주세요. 전문 업체에 알아보니 비용도 200만원, 140만원이나 됩니다. 지금은 언제 문을 닫을지도 모르는 상황이고요. 정말 화재 위험 때문이라면 자체적으로 방염 페인트를 발랐으니 응급조치는 된 것 아닌가요? 본질이 아닌 형식적인 요건을 꼭 이런 시점에서도 다 따져야 합니까. 페인트를 더 발라야 한다면 몇 번이라도 바르겠습니다. 현재 시설 가동률도 10%도 채 안돼 실제 화재 발생 위험도 현저히 떨어졌을 거고요."
돌아오는 답변은 똑같았다.
"우리도 어쩔 수 없어요. 뒤에 다른 사람이 점검 왔을 때 조치가 안되어 있으면 우리가 다칩니다. 화재가 났을 때 규정 미준수 등으로 문제가 되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위에서도 아무도 안 할 거예요."
결국 자신들은 권한이 없고 민원을 위에서도 들어줄 수 없을 거란 말이었다.
형식주의, 행정 편의주의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았다.
담당 소방관이 쇄기를 박았다.
"민원 답변은 곧 정리해 올릴 겁니다. 형식적인 답이 달릴 거예요."
뻔한 소리 하러 재차 나온 것도 그 형식 때문이었다. 더 이상 보기 싫어 안 와도 된다고 했는데 막무가내였다. 민원이 들어오면 현장에 가서 설명해줘야 된다나. (아래 자료도 줬다)
마지막에 소방관이 덧붙였다.
"제천 화재 때문에 이렇게 됐네요."
"그게 언제 적 일인데요?"
"..."
벌써 3년 전 일로 시작된 특별 소방점검 우선순위가 밀려 아마 지금 나오게 된 듯했다. 그때와 현재 코로나 시국의 상황은 완전히 다를 텐데, 이 순간 정말 특별한 건 과연 무엇일까.
문뜩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대로라면 사람이 죽어가고 배가 침몰해도 규정에 안 맞아, 추후 책임 추궁당할까 봐 나 몰라라 할 공조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코로나 위기에 울고, 코로나보다 더 센 행정 편의주의에 또 한번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