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친구 여러분. 수지입니다.
안 그래도 짧은 2월인데, 조금 일찍 2월의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원래 매달 마지막 월요일을 편지 발송일로 지정해 놨었는데요. 2월의 마지막 월요일엔 제가 연차를 냈거든요. (유후)
얼마 전 임시완이 출연한 유퀴즈 온 더 블록의 클립을 보았습니다. 이미 많이 알려진 대로 부산대에서 공대를 다니다가 제국의 아이들로 아이돌 데뷔, 처음엔 눈에 띄지 않아 숙소만 지키던 '숙소 지킴이' 멤버에서 어느 날 갑자기 '미생'으로 우리들의 '장그래'가 되어버리죠. 이 방송에서 그는 '미생'을 '정말 다신 만나지 못할 그런 작품'이라고 말하는데요. 먼 훗날의 저에게도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다신 만나지 못할'로 표현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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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에 편지를 발송하고서는 "1월에 부린 객기가 뭐였어?"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올해는 대놓고 객기를 부리겠다고 선언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죠. 제가 정의한 '객기'는 평소의 수지라면 절대 하지 않을 법한 일에 무모한 용기를 내는 것인데요. (부연설명을 이렇게 길게.. 하하.) 그래서 1월에 부린 객기가 뭐였냐고요? 멋지다고 생각한 낯선 남성에게 데이트 신청을 해보았습니다. 인생에 처음 해본 일입니다. 문득 떠오른 이에게 아주 당돌하게 밥을 먹자고 물어보아서 밥을 먹었고요. 노란 조명이 떨어지는 곳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결과는? '내 객기? 아주 멋졌다...ㅎ' 정도로 정리하겠습니다. 제 친구는 이렇게 뻔뻔한 저를 보면서 달마다 만난 12명의 남자를 '객기 시리즈'로 콘텐츠를 만들라고 하더군요. 그것도 능력이라고요. 2월이 아직 지나지 않았는데 저는 2월에 객기를 부렸을까요? (궁금하면 연락하세요)
2월의 주말은 한주도 빠짐없이 결혼식을 다녔습니다. 저와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맺으신 분들이라면 주말마다 올라오는 스토리에 거의 빠지지 않고 각 종 결혼식을 보셨을 테죠. 친구, 가족, 교회, 회사까지 요즘 다들 어쩜 이렇게 결혼을 잘하는지 몰라요! 제 나이 때가 그런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허허. 아무래도 보고 듣는 게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결혼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결혼의 본질이 무엇인지요. 그래서 '팀켈러의 결혼을 말하다'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우연히 요즘 저의 공사다망한 근황을 들은 친한 동생이 선물을 해주었는데요.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즈음엔 나눌 기회가 생기겠죠?
생각 많고 걱정 많은 저에게 '불안'은 늘 해결해야 하는 숙제인 것 같습니다. 평생에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 '외로움'과 '두려움' 중에 저울에 달아서 어느 쪽 하나 더 가볍지 않겠지만 불확실성이 짙은 인생의 문제들 앞에 늘 무릎 꿇게 되는 저니까요. 두려움은 불안을 낳고, 불안이라는 두 글자는 내 안에서 지속적으로 일을 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까지 도달하게 합니다. 저에게는 그 시기가 가장 힘들고 위험한 시기입니다. 자기연민과 무기력에 빠지기 가장 쉬우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면서 사전 조치를 해두는 편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무엇 때문인지 걱정은 있지만 불안하진 않습니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인생의 절반인데 불안하진 않다니 꽤나 다행이죠.
일상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회사에서도 걱정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더 이상 마음이 불안하진 않습니다. 뉴스에 보도된 소식들로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회사는 올 상반기에 해결해야만 하는 미션이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그 미션을 해결해야 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 그 배에 이미 탑승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고요. 빠른 인정은 '잘 나가는 팀의 잘 나가는 매니저 되기'라는 목표 설정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방향을 잘 잡았다면 풍랑에 휩쓸리던 어디에 구멍이 나서 물이 차던 그건 모를 일이고 일단 닻을 올려보는 거죠.
저는 정말 관계적인 사람인 것 같습니다. MBTI를 굳이 따지자면 저는 I 성향이 확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곁을 내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관계들은 매우 소중하게 여기니까요. 처음엔 낯을 많이 가려도 어느 순간 마음을 주기로 작정하면 금방 정을 줘버리는 편입니다. 그 덕에 한번 정을 준 사람을 보내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지요. 그런데 최근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오기도 했습니다.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고요. 새로 등장한 분들과 어느 순간 어우러져 있었고요. 실없는 소리나 비밀 이야기도 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비밀 이야기 진짜 좋아합니다ㅋㅋ) 그러고 보면 가는 사람이 있으면 오는 사람이 있다는 거, 정말 맞는 말이지 않나요. 관계는 참 유동적입니다. 관계의 본질이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사랑' 에 있다면 '누군가'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닐지 몰라요. 그저 그 시기에 만난 누군가와 '어떻게 관계 맺고 사랑했는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그 자체로 충만해질테니까요.
최근에 발견한 저의 특기를 소개해드립니다. 저는 사람들이 저와 함께 있을 때면 말을 잘하게 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사실 이건 저도 몰랐는데요. 최근에 친해진 이들과의 스몰톡 혹은 낯선 이들과의 만남 끝에 꼭 듣는 말이 있었거든요. "수다쟁이가 된 것 같아요.", "제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한건 처음이에요." "말을 술술 하게 돼요." "수지한테만 하는 이야기인데~" 등등이요. 그래서 제가 친한 동생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나 특기 찾은 것 같아. 사람들이 나랑 있으면 말을 잘하게 된대."라고 했더니 "누나, 나는 이미 알았는데~."라고요. 그런데 이 특기가 글쎄 그동안 저의 일에서도 제 힘을 발휘하고 있었더라고요. 클라이언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니즈를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저의 주 업무에서 말이죠!
예전에는 영화 한 편을 보면 꼭 리뷰를 쓸 만큼 영화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영화 한번 보는 게 여간 쉽지 않습니다. 저에게 영화 보기가 지루해진 건 정말 큰 변화입니다. '아바타 2' 같은 대작도 보지 않았어요. 그러던 제가 일요 아침 마음을 단단히 먹고 조조영화로 'After Sun' 을 보았습니다. 주인공의 11살 때 아빠와 단둘이 떠난 터키 여행을 아빠의 나이가 되어서 다시 꺼내어보는 이야기입니다. 아빠와 딸이 참 저렇게 친구 같을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아빠와 행복했던 저의 어린 시절 떠올릴 수밖에 없었고요.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 감성과 또 최근 지진으로 고통받은 튀르키예의 과거 모습까지 생경하게 담겨있으니 여러 가지 볼거리뿐 아니라 생각할 지점들이 맞닿아 있었습니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고요하고 잔잔하게 흘러갑니다. 이너피스가 필요한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1월 설 연휴 때 엄마가 만들어준 만두로 만두전골을 야무지게 끓여 먹고 난 뒤 2월 초가 되자마자 만두전골을 두 번이나 먹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아이스크림이지만 굳이 '음식' 카테고리에서 골라야한다면 '만두'와 '김밥'같은 뭉쳐 있는 음식을 좋아하거든요.) 모두 서울의 내로라하는 만두전골집이었는데 한 곳은 부암동의 '자하손만두'이고 한 곳은 서촌의 '잘빠진 메밀'입니다.
부암동 데이트 코스에 빠질 수 없는 곳이죠. 꼭 '자하손만두'를 가곤 했습니다. 방문할 때마다 새하얀 만둣국을 먹었었는데 이번엔 여럿이 함께 가서 '김치 만두전골'을 먹었습니다. 인왕산 등산하고 부암동 쪽으로 하산해서 먹으면 두배로 더 맛있을 맛입니다.
서촌의 '잘빠진 메밀'은 이미 여러 번 추천을 받았는데 드디어 가보았습니다. 거의 샤부샤부에 가까운 맛이라 누구나 부담 없이 좋아할 맛입니다. 저는 '자하손만두'보다 '잘빠진 메밀'이 좀 더 익숙하고 입에 맞았어요. 그리고 메밀면이 좀 더 소화가 잘돼서 좀 더 부담 없이 먹기엔 좋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만두를 참 좋아합니다. 정성이 담긴 음식을 먹으면 더 꼭꼭 씹게 되고 맛을 더 음미하게 되고 무엇보다 입에 꽉 찬 기분이 좋거든요. 그래서 날이 풀리면 재오픈할 '수지의 헬시캠프' 첫 번째 음식은 만두전골로 정했습니다. 초대장을 받으실 분들 딱 기다려주세요!
점심시간 한 번 정도는 회사 근처에 카페에서 호사를 부린다는 지난달 편지 일부분을 기억하시나요? 그러다가 이번주에 찾은 삼성동 신상 카페를 소개할게요. 바로 '글루글루'입니다. 점심시간 친구와 근처 카페를 가다가 발견한 시선을 사로잡는 외관에 멈추어 버렸죠. 마침 저희가 가려던 곳은 문을 닫아서 오히려 좋았죠. 여기는 스페인식 추로스를 파는 추로스 전문점으로 에스프레소부터 라테류까지 커피메뉴 라인업도 훌륭하더라고요. 그리고 외관 못지않은 이국적인 내부까지. 마드리드에서 먹던 추로스가 저절로 떠오르더라고요. 언젠가 삼성동에 오실 일이 있다면 추천을 드립니다. 신상카페는 늘 붐비기 마련이니 저녁시간에 저와 같이 가시는 게 물론 제일 베스트이고요. 우리 함께 비밀이야기를 합시다.
2월의 대화는 2월의 마지막 금요일에 나눈 대화들에서 따왔습니다. 마침 같은 날 비슷하게 연결되는 메세지를 담고 있었거든요. 하나는 매주마다 진행하는 파트장님과의 1:1 위클리에서였고, 하나는 금요기도회를 마친뒤 목사님과의 대화에서였습니다. 파트장님은 '불확실한 것을 제거해야 빨리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코멘트를, 목사님은 "불확실한 것은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 불확실하지만 확실한 건 분명하잖아. 그래서 너가 그렇게 했을 때 어땠니? 좋았잖아. 그럼 그 때의 기억으로 가면 돼." 라는 코멘트를 해주었습니다. 그 날 낮과 밤에 들은 이야기가 이렇게 꽂힐 수가 있나요. 덕분에 저는 가야할 방향을 찾았답니다.
다시 유퀴즈온더블러 임시완 편의 이야기입니다. 정말 다신 만나지 못할 작품 '미생'에서 실천하고 있는 글귀가 있다는데요. 깊이 공감하는 바인지라 여러분께 공유하며 새로이 다짐을 해봅니다.
저는 1월 말에 운동을 끊어놓고 2월 내 치료를 했습니다. 운동할수록 더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바짝 치료를 하고 2월까진 무조건 나아서 3월 2일부턴 무조건 운동을 나간다는 다짐을 저의 선생님과 했고요. (물론 웨이트..ㅎ 곧 운동을 시작한다는 이야기만 두 번째인데 나름의 사정이 있었습니다.) 동료 한 명에게는 3월부터 달라지는 나의 모습을 5월까지는 지켜보시라고 선전포고도 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진짜 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체력을 길러내기 위해서요.
지금은 해야 하는 일을 좋은 성과로 연결 짓는 일이 첫 번째 과제이지만 어쨌든 이 외의 영역을 넓혀가려는 시도는 분명히 해야 하니까요. 이런 고민을 오래도록 해왔지만 충분히 견뎌줄 몸을 만든다는 게 저에게 엄청난 인사이트인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운동을 시작했던 건 '내 몸은 내게 주어진 선물이고 30대가 되어서는 몸을 소중히 여기고 책임질 의무가 있어'의 마음가짐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운동을 '미의 기준'의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던 것 같아요. 그게 지치고 지치고.. 의 반복이었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제 알았습니다. 역치를 넓히고, 고민을 견디기 위해 체력을 기르는 것으로요.
3월도 여전히 바쁘겠지만 부지런히 움직이겠습니다.
'수지의 블로그-내 꿈은 헬스깡패'의 연재도 다시 시작할 테니 지켜봐 주시고요.
(아, 그렇지만 아무리 바빠도 더 글로리 파트 2는 꼭 봐야죠. 3월 10일 딱 기다려.)
23.02.25.SAT
결혼식 가기 전 우리집 책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