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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씨걸 Jan 08. 2024

12월의 편지

안녕하세요, 친구 여러분. 수지입니다.


새해는 잘 맞이하셨나요? 저는 송년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위에서 이웃에 사는 교회 오빠와 함께 카운트다운을 했답니다. 둘 다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지었죠. 그렇게 맞이한 2024년이 벌써 일주일이 되었네요. 그렇지만 추억으로 가득한 12월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으니, 12월의 편지를 써 내려가보겠습니다.


11월의 편지 그 이후


https://brunch.co.kr/@suuuuuuzy/54


역대급 12월을 지냈습니다. 회사 워크숍, 시작을 기념하며 결의를 다지는 모임, 엄마와 서울 나들이, 크리스마스 파티 그리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모임까지. 미리 잡힌 약속과 갑자기 생겨난 약속들까지 이벤트의 연속으로 바빴습니다. 그래서인지 새해를 시작하는 시점에는 조금 기운이 빠진 채로 시작한 것 같긴 합니다만 그 어느 때보다 사랑이 충만하게 흘렀습니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만남 몇 가지를 기록하고 싶어요.



12월의 시작 : 과메기 파티


과메기를 먹는 모임에 어느 날 갑자기 초대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친한 사람들과 익숙한 조합으로 구성되었던 이 모임이 일부 인원의 사정 때문에 다른 조합으로 모이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 새로운 조합, 신기하게도 제가 24년부터 꾸리게 된 교회의 팀원들이 모이게 된 거 아니겠어요? 일부러 모은 게 아니라 호스트가 이 사람 저 사람 부른 조합이 그렇게 되어버린 거죠. 그래서 탄생하게 된 과메기 팟. 제일 어색한 건 과메기였습니다. 저를 비롯한 다른 한 명은 과메기와 초면이거든요. 상상 속에서 과메기는 비리고 질긴 식감인데 일단 홍어급은 아니라고 하니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초대된 집에 갔을 때는 하나하나 직접 손질한 채소들과 비닐을 다 일일이 벗겼다는 과메기 그리고 김치찌개까지 환상적인 상차림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요. 손님인 저희들은 정말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과메기 이 녀석, 맛있잖아요? 무엇보다도 자연에서 온 그대로를 먹으니까 입 안이 프레시하고 속이 더부룩하지 않더라고요. 다들 입맛이 돌았는지 한 상을 그냥 비웠습니다. 그리고 각자가 준비해 온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해치웠죠. 이 날이 기억에 남는 것은 꼭 과메기뿐만은 아니겠지요. 각자 다른 사연으로 모인 우리가 팀이 되었다는 것, 마음이 모여지는 것을 모두가 함께 느끼고 있는 것, 손 끝에서 느껴지는 정성까지. 저절로 도원결의가 되어버리는 순간이었으니까요. 12월 연말모임, 제대로 시작을 했습니다.


12월의 재미 : 크리스마스 파티는 즐거워


저는 매주 화요일마다 모이는 모임을 2년째 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2년을 보았으니 정이 들대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기로 했습니다. 각자가 파티추진위원회가 (일명 파추위) 되어 역할을 하나씩 맡았고요. 한 달 전부터 만나는 날마다 조금씩 회의를 진행하면서 야금야금 파티를 꾸려나갔습니다. 모두가 오후 반차를 쓰기로 한 이 날에 저도 1시 땡 치자마자 회사를 박차고 나와서는 제가 맡은 '데코'를 준비하기 위해 다이소에서 데코 용품 이것저것을 구매하고 파티 장소로 향했습니다. 중간에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는데 눈까지 내려서 준비하는 시간부터도 설레더라고요.
데코가 마무리될 때쯤 도착한 코스트코팀과 연말 식탁까지 세팅을 마치고 본격적인 파티 시작. 푹 익은 뱅쇼와 슈톨렌, 연말 파티 음식에 캐럴까지 합세해 크리스마스까지 일주일이 남았지만 마음만은 이미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오늘의 MC가 준비한 15,000원 상당의 선물 교환식, 2023년의 키워드와 서로에게 써주는 덕담 한마디 코너까지, 모든 순서가 알찼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그치지 않은 눈까지. 지금까지 보냈던 크리스마스 파티 중에 가장 즐거웠어요. 보통 준비하는 과정이 길면 정작 당일에는 김이 새거나 재미없는 경우도 많은데 모두에게 웃음이 떠나지 않아서 그 모습마저 즐거운 날이었달까요? 우리만의 전통으로 자리가 잡히면 참 좋을 텐데요.


12월의 사랑 : 손해 봐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대학 시절 오랜 시간 한집 살던 친구들과 그루네 집에 가기로 했습니다. 저희 중 막내인 지은이가 얼마 전에 나은 딸이에요. 이제 막 6개월이 된 아기랍니다. 이름 참 귀엽죠. 그리고 대전에서 올라오는 친구들을 위해 노티드 도넛 오픈런을 해서 기대감을 안고 부지런을 떨었습니다.
이 날의 주인공은 그루였지만 아기의 엄마, 아빠도 주인공이기는 마찬가지였어요. 대전에서 올라오는 친구들은 지은이의 남편을 처음 만났거든요. 지은과 대니가 준비한 감격에 가까운 크리스마스 런치가 끝나고 디저트 타임이 왔을 때는 둘의 러브스토리에 흠뻑 빠졌습니다. 저는 나름 여러 번 들어온 이야기였는데도 이번에는 더 특별하게 다가왔어요.
" 지은이랑 결혼을 어떻게 결심하게 됐어요?"
" 결혼은 원래 마음이 없었는데, 지은이를 만나고 자연스럽게 하는 쪽으로 마음이 바뀌었어요."
" 지은이랑 만날 때 어떻게 지은이가 좋아진 거예요?"
"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사람이 좋아지고서는, 손해 봐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손해 봐도 괜찮다고 생각했다는 말, 정말 사랑이잖아요. 이런 대화를 나누었으니 더 특별할 수밖에 없었지요. 정말 오랜만에 결혼한 사람들이 부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에 사람들을 불러놓고, 따뜻한 밥을 지어 먹이고 따뜻한 커피나 술 한잔에 이야기를 도란도란. 이런 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거든요. 저도 줄곧 그래왔고요. 내년에는 결혼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 좀 해야 할까 봐요.


12월의 쉼 : 그저 가족이 쉼이다.


1. 엄마와 함께

기분전환 좀 하고 싶은 내색을 줄곧 비춰오던 엄마가 결국 마음을 먹고 서울을 올라오더군요. 그래서 저도 연말에 남은 연차를 털어낼 겸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틀 내 우리가 한 일이라고는 근사한 곳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수화기 너머로는 모두 담을 수 없었던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 사고 싶던 것도 좀 사고, 크리스마스 마켓이나 트리를 구경하는 것이었는데 어디 멀리 대단한 곳을 가지 않더라도 그 자체가 엄청난 쉼이 되었어요. 엄마와 함께 있을 때는 어떤 긴장도 할 필요가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가장 친한 친구로서 서로의 그늘이 되어주는 우리 모녀 사이가 새삼스레 더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제가 누리는 이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은 아니니까요.


2. 반려휴먼과 근황

반려휴먼과는 물론 잘 지내고 있습니다. 동생이 취업한 뒤로는 워낙에 바빠졌기 때문에 한 집에 살면서도 밥 한 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해 수고한 동생을 위해 제대로 된 밥을 한번 사주고 싶었어요. 며칠 전부터 빕스를 간다며 좋아하던 동생은 최선을 다해 먹더라고요. 그리고는 그동안 어떻게 일을 해왔는지, 회사 사람들은 어떤지 한 보따리 소회를 털어놓았는데요. 사회 초년생의 고군분투가 고스란히 느껴지면서도 동생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기특하기도 하더라고요. 괜히 저도 모르게 보람이 느껴지는 그런 날이었어요.


3. 환갑파티

1월 1일이 아빠의 환갑. 친구들이 부모님 환갑을 치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남의 나라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어느덧 저희 아빠도 환갑이 되셨더라고요. 시간이 참 빠릅니다. 일찌감치 청주의 '상춘고택'이라는 고급 식당을 예약해 두고 맞춤 케이크와 선물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24년 안에 가족사진을 제대로 한번 찍기로 해서 이번에는 시간이 촉박해 연습 삼아 셀프 스튜디오에 촬영을 예약했습니다. 지난 빕스 회동에서 비용을 어떻게 쓸지, 무엇을 할지 동생과 결정하고 부지런히 준비한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식사자리가 제일 기억에 남고 뭉클했어요. 이렇게 다섯 식구가 모두 모인 건 정말 오랜만이었거든요.
아빠가 너희들 아니면 이런데 와 보겠냐..
이렇게 다섯이서 밥을 먹는데 일 년에 손을 꼽으니 참...


아빠가 좋아서 하신 말씀인데, 그만큼 시간을 다 같이 보내는 일이 적으니 아쉬워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24년에는 아빠에게 더 많이 전화해야지 생각했어요. (이 문장을 쓰면서 바로 전화했어요. 이 문장을 읽은 분들 바로 전화하세요~)
낮 시간에 아빠가 잠깐 쉬고 있을 때 나머지 네 식구가 모여서 환갑파티 궁리를 했거든요. 아빠한테 보내는 영상편지 속에 오늘의 이벤트 내용을 담자고 반려휴먼이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아빠 이름으로 삼행시 지어서 1등 뽑히는 사람 오늘 가족사진 때 아빠랑 뽀뽀사진 찍기.' 케이크 컷팅이 끝나고 이 영상을 보여주는데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몰라요. 그리고 대망의 1등은... 막내 ^0^
우리끼리 이런 소소한 환갑 파티 왜 이렇게 재미있었는지.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더라고요.

아빠 환갑 축하해. 그리고 사랑해 ~


12월의 이벤트 : 올해의 우정


지난 연말에도 어김없이 한 해 짙은 우정을 나누었거나 혹은 의미 있던 분들께 양말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작년에는 직접 집으로 배송하는 이벤트를 했었는데 이번엔 너무 바빠서 만날 때마다 전달하는 식으로 총 12명의 친구에게 전달을 했습니다.
강*주, 강*유, 김*원, 김*준, 남*라, 배*영, 서*옥, 오*일, 이*지, 전*민, 조*원, 최*경
열두 명의 친구 여러분들~ 한 해 동안 손이 많이 가는 저를 돌보아주시느라, 고민의 영역에서 도움을 주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새해에도 각자의 자리와 우리의 우정을 응원하며.. 아디오스...


새해는


이미 8일이나 지나서 말인데요. 저는 새해 결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매년마다 새해 계획을 세우느라 골치 아팠거든요. 파워 J 성향 탓에 세워둔 계획을 지키지 못하면 속상해하고요. 결심하기까지 가는 문턱도 저에게 꽤나 높더라고요. 결심을 하기 위해 마음을 먹어야 하는... 그래서 그냥 뭐든 해야겠다 싶으면 그냥 해보는 쪽으로 마음을 고쳐 먹었어요.


얼마 전에 엄마가 "요즘도 글 쓰니?"라고 묻더라고요. 예전에 비해서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지만, 수지의 편지로 이렇게나마 쓰고 있는 거죠. 마침 최근 퇴근길에서 저의 구찌백을 읽고 공감이 되었다는 동료의 한마디가 마음을 울려서 올해는 글 좀 더 써야지 했는데 이런 것도 그냥 하는 겁니다.


12월의 편지를 마무리하는 오늘은 아파서 출근을 못했습니다. 주말에 약 기운으로 버텼는데 알고 보니 심했던 건가 봐요. 출근을 하려는데 목소리는 아예 나질 않고 열이 펄펄 끓었습니다. 이로서 저는 더 이상 금강불괴가 아닌 게 확실시되었습니다. 새해에는 체력과 건강을 충분히 회복해야겠습니다. 물론 약 기운이 돌고부터는 집 정리를 하고 편지를 쓰고 있지만, 이런 게 쉬는 거죠!  (코로나랍니다^0^)


오늘은 지금 듣고 있는 플레이리스트를 선물로 보내드립니다.

https://youtu.be/2l9MgFgs0ho?si=ZGd-M8LDJjqXpxnK


새해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01.08. MON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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