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보내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친구 여러분. 수지입니다.
오랜만에 편지로 안부하네요.
작년에는 유튜브에 전념하겠다며 매월 보내던 편지는 잠시 멈추었습니다. 유튜브를 나름 열심히 했고요. 좀 좀 따리 올리는 영상에 감사하게도 구독자가 생겨나 일터에서 구독자 분을 우연히 만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유튜브 시작 이래로 목표했던 구독자 수를 넘긴 일보다 더 기분 좋을 일이었다죠.
올해 2025년에는 한동안 놓고 있던 글쓰기를 다시 이어가려 합니다. 오래전부터 저를 알아온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저는 글쓰기로 저만의 이야기를 꾸준히 이어가던 사람입니다. SNS나 유튜브로도 간간이 소식도 전하고 영상도 만들었지만 사실 저라는 사람은 글쓰기에 대단한 열망을 가진 글쓰기 순정파입니다. 결국엔 글이 진심을 전하기엔 저와 가장 잘 맞는 수단인 것 같아요.
아무튼 서론이 길었습니다. 2025년의 첫 번째 편지이기 때문에 작년의 근황을 짧게 나누어보겠습니다.
2024년은 3가지 카테고리로 정확하게 분류됩니다.
1. 요가
2. 상담
3. 이직
요가와 나.
나름 3년 이상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왔지만 평생 할 운동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 이젠 '요가'로 바뀌었을 거예요. 저의 요가 사랑이 더 이상 새로운 소식은 아닐 테지만 요가를 시작한 지 6개월이 되었음에도 그 마음은 더 짙어지고 있어요. 비록 요즘엔 바쁜 일정 때문에 종종 포기하게 될 때도 있지만요.
저는 요가를 통해서 인생을 배웁니다. 그게 제가 요가를 사랑하는 이유예요. 요가에서 웬 인생이냐고요? '너무 거창한 것 아닌가?'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같이 욕심 많고 성장, 성취에 목마른 사람에겐 속도를 늦추고, 못 하는 것을 인정하고, 되는 만큼에 머무르다가 조금씩 되어가는 맛을 보는 요가가 딱 필요한 운동이랍니다. 이런 의미에서 요가를 아마도 수련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요? 수련을 하다 보면 컨디션에 따라 되는 만큼 하라는 원장님의 한 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던지. 저도 언젠가는 요가원을 꼭 차리고 싶어요. (제 콘셉트는 요가 못하는 요가원 원장님입니다.)
상담과 나.
작년에 녹색 잎이 짙어가던 계절에 시작한 상담을 첫눈이 내리던 날 마무리 했습니다. 상담의 목적은 가정 안에서 정서적인 독립이었고요. 저희 가족은 서로 유대가 깊고 끈끈한 덕에 서로가 서로의 일을 제 일처럼 걱정했던지라 특히 K-장녀인 저와 부모님 사이엔 꼭 필요한 숙원사업 같은 것이었습니다. 15회기의 상담 동안 우리가 이런 삶에 익숙해진 배경과 원인을 파악하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나아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실천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에 제가 해본 적 없는 말을 속 시원하게 하기도 하고 생각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하고요. 이 영역에서 만큼은 자유해진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직과 나.
퇴사를 하고 나서 정확히 제가 계획하던 시기에 새 회사를 만났습니다. 퇴사 후 한 달은 신나게 놀고, 한 달은 교회 수련회 디렉팅을 하고, 한 달은 취업 준비하고 딱 그 뒤에 이직을 하고 싶었거든요. 딱 4개월이 되던 차에 이직을 성공하고 현재는 새 회사에서 3개월 차에 접어드는 시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요. 직무는 이전에 하던 일의 연장선이기도 하면서 건강에 대한 저만의 오랜 고찰을 풀어낼 수 있기도 하고 이 회사의 다음에 꿈꾸는 일을 하기 위해 밑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운이 좋게도 좋은 동료들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지냈습니다. 2024년!
목표로 할까, 계획으로 할까 고민을 하다 목표라는 말 자체가 부담이 되어서 계획이라는 말로 고치고 시작해 봅니다. 그렇지만 늘 세우게 되는 것이 목표이고 계획인 것 같아요. 삶의 각 영역에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사실상 가장 큰 틀을 이루는 것은 이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 잘 묻고, 잘 듣고, 잘 까불자!"
일에서도 그렇고 관계에서도 그렇고 저는 잘 묻고 잘 듣는 사람이고 싶어요. 잘 까부는 건 잘 묻고 잘 듣는 것의 한 단계 레벨업 버전인데 왜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는 아래에서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1월 말 즈음부터는 신도림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당분간의 실습지가 신도림이어서 그렇습니다. 교육이나 과제 발표가 있는 날에는 역삼에 있는 본사를 왔다 갔다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신도림입니다. 문래를 뻔질나게 드나드는 저에게는 집도 가깝고 이만한 곳이 없죠. (저는 지금 27,28층 파노라마뷰를 지닌 신도림역 호텔급 대세 헬스장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회사에는 총 5차 (혹은 6차) 과제를 통해 추후의 직무나 직급이 결정되는 전형으로 채용이 되었습니다. (이른바 패스트트랙) 1월의 편지를 쓰는 지금은 5차 과제를 하는 중이고 어디에서 어떤 모양으로 일할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지만 꽤나 난도 높은 이 과정을 5번째 치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박수를 쳐주고 있습니다.
새해 목표(혹은 계획)를 '잘 묻고, 잘 듣고, 잘 까불자!'로 세운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최근에 저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발견하면서 '오? 나 안 하던 말을 하네? 이런 행동을 하네?' 하기도 하고 '맞아, 사실은 난 이런 사람이지. 그럼 앞으론 이렇게 해보자.'를 떠올리기도 했거든요.
저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매우 낯을 가리고 특히 잘 모르는 사람이 여럿 있는 자리에서는 극도의 긴장을 합니다. 비즈니스를 비롯한 주어진 관계에서는 사회성을 발휘하여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책임에 의한 관계이지 그들을 저의 울타리로 들이기까지는 꽤나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렇지만 울타리 안에서는 세상 따뜻한 사람이 됩니다. 언니 오빠들에겐 까불기도 잘 까불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였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이렇게 빠른 시간 내 댕댕이 같은 말과 행동을 하다니요! 태환은 "사람들이 다 멋있나 보지. 멋있으면 다 언니, 오빠잖아."라고 하더군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 대부분이 멋있습니다.
반면에 이 울타리에는 약점이 있습니다. 낯을 가린다는 이유로 누구나를 환대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때로는 울타리가 '내 사람'들을 돌보느라 정작 저라는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곁을 내어주지 못하는 기능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누구나에게 잘 묻고, 잘 듣고, 잘 까불어보기로 했습니다. 꼭 환대를 해야만 하고 많은 사람과 친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제가 가진 세계관 안에서는 사회적 조건 없이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는 것이 제가 가야 할 길이니까요.
올해는 커리어적으로 에너지를 쏟아보겠다 다짐을 하였습니다. 회사에서 과제를 지날 때마다 파도에 휩쓸린 것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끌어안고 있었습니다만 1월에는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찾고 앞으로의 목표를 설정하였습니다. 이 편지에서 구체적으로 명시할 수 없지만 2025년, 1년이라는 데드라인도 정해놓았답니다. 사실 제 인생의 기조는 다수의 경험 상 '아무리 계획을 하고 열심히 해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를 깔고 있어요. 하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열심히 하다 보면 결국엔 뭐라도 얻게 되지 않을까요? 원하는 결과가 아니더라도 받아들이는 건 온전히 제 몫이고 제가 극복할 수 있을 만큼의 분량으로 어려움도 닥칠 테니까요. 그래서 할 만큼 해보자는 게 그 다짐입니다. (언제는 안 그랬냐만은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봅니다.)
1월이라 그런지 계속되는 다짐과 계획의 연속입니다. 이미 1월이 지났기 때문에 이 다짐과 계획이 얼마나 효용이 있었는지 돌이켜보면 현재진행 중이에요.
1월에도 많은 커피를 마셨습니다만 이번 달 처음으로 추천하고 싶은 커피는 서울대입구역에 있는 '고로커피 로스터스'의 '에티오피아' 브루잉입니다. 이전에 친구 집들이로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에 디저트 픽업 차 들린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커잘알 친구의 추천으로 재방문했습니다. '에티오피아 우라가 고구구'라는 신기한 이름의 커피를 주문했고요. 오후 3시에 산미 있는 커피 한잔을 마시는 걸 좋아하는 저로서는 글을 쓰면서 한 잔 하기에 딱 좋았습니다. 적당히 셔요. 눈 오는 날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따뜻한 감성을 자아내는 BGM 은 덤입니다. (페어링 한 디저트 녹차절미는 제 입맛에는 많이 달았는데 시즌 메뉴라서 드셔보시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합니다.)
https://www.instagram.com/gorocoffeeroasters/
도시락을 열심히 쌌습니다. 도시락을 싸는 일이 경제적이기도 하고 사무실이 28층이라서 나갔다 오는 것도 일이거든요. 도시락을 싸다닌 지 4년 정도가 되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도시락을 싸는 일이 당연한 것인데도 정갈한 도시락 뚜껑을 열면 매번 기분이 좋아집니다. 저를 잘 챙기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거든요. 게다가 스케줄 근무를 하면 모든 동료들과 밥을 먹기에는 어려움이 있는데 (각자 근무 스케줄이 다르므로) 같은 스케줄의 동료와 도시락 까먹는 시간에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를 도란도란하다 보면 그만한 재미가 또 없습니다. 평소에는 몰랐던 반전 매력을 찾기도 하고요. 아무튼 재밌습니다.
도시락 타임의 가장 큰 즐거움은 의외로 외식에 있기도 합니다. 가끔 한 번씩 외식하는 날이 가져다주는 특별함이 있거든요. 번개로 가게 된 외식은 예상치 못해서 즐겁고, 몇 날 며칠 전부터 약속한 외식은 기다려집니다. 가면 일단 재미있을 거니까요. 그래서 도시락을 더 부지런히 싸게 돼요.
2월에는 건강에 좀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연말 연초를 지나며 몸의 변화를 느끼고 그게 증상으로 나타나서 1월 마침표 찍기도 전에 병원 투어를 다니고 있거든요. 작년에 발견된 갑상선 낭종의 추적검사도 곧 다시 해야 하고요. 몸의 감각이 예민한 편이라 어디가 안 좋으면 바로 병원에 가서 큰 병에 대한 대처를 미리미리 하려고 하는데 결국 제 몸을 잘 챙기는 건 잘 먹고 잘 자고 스트레스 관리 잘하는 데 있다는 게 가는 병원마다 내리는 처방이에요. 다들 잘 먹고 (건강히) 잘 자고 (7시간 이상 숙면) 스트레스 관리 (운동) 하셔야 합니다.
마음에도 길이 있대요. 보물로 여기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여러분의 마음은 어떤 것을 보물로 여기고 어디를 향해서 걷고 있나요?
흔들리지 않는 북극성 딱 기억해 두고 제가 가기로 한 길 잘 걸어보려고요.
(쓰고 보니 매우 F스럽습니다만. 머쓱)
정말 빠르겠죠 2월. 1월도 순식간에 지난 데다가 일 수도 적으니까요.
짧은 만큼 더 알찬 일상, 만남 기대하면서 잘 지내보겠습니다.
2월의 편지에서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5.02.01. 진료를 기다리며.
수지 드림.
p.s 1월은 조성진의 음악을 선물로 드립니다.
(클래식을 좋아한다기보단 조성진을 좋아하는데 이번에 라벨 연주 앨범이 새로 나왔습니다. 대박이에요.)
https://youtu.be/jJjDBuxhJsI?si=z3Hzm0YDB4Uqvvy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