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포기가 익숙하다. 어려서부터 포기가 빨랐고, 쉬웠다. 유치원 무렵부터 마트에 따라가서도 떼를 쓰는 일이 없었으며 '안되면 말고'라는 마음가짐을 늘 갖고 살았다. 나름 살아가는데 유용한 태도였던 것 같다, 적어도 머리가 크기 전까지는.
언젠가 서울에 볼일이 있어 다녀오는 길이었다. 어둑한 초저녁 무렵, 버스 창밖으로 너른 한강과 반짝이는 야경을 보다 문득 슬퍼졌다. 너무나도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 도시. 서울을 뒤로한 채 도망가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도망치고 있었다. 날 붙잡는 건 고된 일정을 마친 후 큰맘 먹고 산 밀크티를 쏟아 끈적거리는 내 바지와 신발뿐이었다(버스 바닥은 가방에 있던 물티슈와 휴지를 모두 사용해 깨끗이 닦았다).
한번 느껴버린 그 감정은 매번 서울에서 돌아올 때마다 느껴졌고, 날 우울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맛있는 걸 먹고, 잘 꾸며진 정원과 높고 세련된 건물들을 볼 때면 이것들이 나와는 무관하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가라앉았다.
자괴감이었다. 나는 이곳에 있을 가치가 없고, 이곳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자괴감. 어디에도 내 자리는 없다는 외로움, 그리고 평생 이렇게 겉돌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내 존재 가치에 대한 괴로움.
우울한 날이면 나는 모든 게 돈으로 보인다. 길가에 주차되어 있는 차 얼마, 낡아 보이는 저 건물 얼마. 그리고 내가 지금 마시는 커피,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 얼마.
그러다 보면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은 나와 상관없는, 가질 수도 허락되지도 않은 세상이라는 기분에 휩싸인다. 그렇게 나는 자기혐오에 젖어 들어 간다. 얼마쯤 가라앉고 있을 때면 그 감정마저 포기해 버리는 나이다.
포기는 내 인생을 좀먹는 동시에, 슬픔과 고통에서 해방시켜 준다. 마치 과다복용하면 안되는 진통제처럼 주의가 필요하긴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최근 '포기하는 것'도 포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것들, 그리고 내가 아니어도 되는 것들을 포기하면 편하다. 어떠한 것에 대한 '집착', '트라우마', 극복하지 못해 내던 과거의 후회 같은 것들.
다른 말로는 '인정하기'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적당히 포기하고 인정하자, 나와는 관계없었고 내가 어쩔 수 없었던 일이다. 떠나간 사람도, 지나간 실수도. 당신이 아니어도 되는 일들이다(무책임해지라는 말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서울을 동경하고 두려워한다. 오늘도 포기하며 살아가고 나를 인정한다. '포기'와 '인정'은 의외로 자기 객관화에 많은 도움을 주고, 때로는 발전을 위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당신 '자신'을 포기하진 말자, 자신을 가장 자신답게(인정) 해줄 수 있는 존재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