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해도 별 수는 없지만
일이 생각처럼 잘 풀린다면 한번쯤 의심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퇴사 시기와 관심 있던 직장의 공고의 시기가 딱 맞았다면, 그리고 서류 전형까지 통과했다면.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김첨지의 말처럼, 한번쯤은.. 사실 의심한다고 별 수가 있나, 김첨지도 의심은 했을 것이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것만 같던 일들은 잘 쌓인 도미노와 같아서 무너지는 것도 한순간이다. 도미노씩이나 될 만큼 잘 쌓진 않았지만, 아무튼 잔뜩 꼬여버렸다. 일정도 꼬이고, 계획도 꼬이고, 내 심보도 꼬였다. 스멀스멀 자괴감 같은 감정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궁금하지 않을 내 생각을 쓰고, 이야기를 지어낸다. 고리타분하고 고집스럽고, 지나칠 정도로 담백한 나를 닮은 부산물들은 아무도 위로해주지 못할 것이다, 나 하나 간수하기도 벅찬데 누굴 위로할 수 있을까.
요즘 흔히들 하는 말로 감성글이라고 하는 글들이 내게는 너무 어렵다. 내 글이 그렇듯, 그들의 글도 각자의 감성을 지녔을 테지만 내가 말하는 ‘감성글’이란 하나의 명사를 뜻한다. SNS에서 보이는 호불호가 강한 글.
어떠한 형태든 글을 쓴다는 행위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쓰는 글처럼 뒤죽박죽으로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게 아닌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거나, 체계적으로 정리된 글을 쓰는 경우에는 더욱이. 지금처럼 별 거 아닌 글을 쓰는 데에도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다.
사실 뭐, 내가 좋든 싫든 많이 보는 글이 잘 쓴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제 아무리 시학과 셰익스피어의 글들을 보며 배웠다고 한들 써 내려가지 않으면,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 쓸 모 없는 글이 아닐까 싶다.
타인에 의해 무언가의 가치가 결정되는 세상이 된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봤다. 문학적으로 완벽한 글과 상업적으로 성공한 글 중 어떤 게 더 가치 있는 글일까. 전자의 경우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본인은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 후자라면 세상에서 일기만큼 쓸모없는 글은 없는 것일까.
어느 경우든 내 글보단 나을 것이다. 끝에는 제목과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를 주절 거리고 있는 이런 글보다는 문학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가치 있는 글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만족한다. 이것이 내 일기고 낙서이니.
어쩌면 나는 그럴싸해 보이고 싶어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무언가 하고 있다는, 일종의 자기 위안. 그래도 일단 쓰기라도 한다는 점에서 전보다는 조금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 물론 정리된 글도 쓰겠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뒤죽박죽인 글을 쓸 것이다.
커버 사진은 언젠가 찍은 귀여운 고양이 사진이다. 기왕 엉망진창인 거 귀여운 고양이 사진이나 올려야지.
이 글은 작가 선정 이전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