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학 MBA에 도전해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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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사는 방식은 각자가 다르고 나름의 논리와 가치를 갖겠지만, 내가 지양하고자 하는 지점은 경제적 가치만을 최우선으로 두거나 열심히 산다는 것 자체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과정에 따른 결과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결국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며 인생의 목적인 행복을 찾아 삶을 지속하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인내하며 열심히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가 늘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열심히 산다는 것 자체가 가치의 우열을 가리는 잣대가 될 수 없으리라. 그래서 늘 힘을 주며 달리기보다, 가능한 한 부드럽게 걷고 싶었다. 그렇다고 게으르게 살았던 것도 아니다.
②
다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보다 ‘그냥 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익숙해져 버렸다. 익숙함은 편안했지만, 공허했다. 열심을 잊었다기 보단 행복을 위한 추진력을 잊고 살았던 거 같다. 행복을 찾아가는 항로에서 그저 그렇게 힘없이 부유해 왔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글쎄…라는 대답이, 마음 거친 구석에 오래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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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 행복했던 순간들은 언제였을까.
무언가를 잘 해냈을 때보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와 깊게 대화를 나누던 순간들이었던 같다. 결국 나를 움직이게 했던 건 단순한 업무적 성취가 아니라, 연봉이 오르고 잘 나가는 (고용주의) 노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의 설렘과 성장을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부유하던 항로에서 다시 발견한 등대 같았다. 잃었던 방향이 눈앞에 어렴풋이 떠오르며, 이제 그 빛을 따라가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열심히 살아야 된다는 강박이 아닌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과정을 나는, MBA도전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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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턴트로 일하는 동안 수많은 기업의 문제를 진단하고, 프로젝트의 일정과 리스크를 관리하고, 많게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조율하는 일을 해왔다. 겉보기엔 주도적인 위치였지만, 결국 나는 언제나 남의 조직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현대사회에서는 결국 대부분이 누군가의 ‘노비’로 살아간다. 그건 당연하게도, 나라고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왕이면 ‘정1품 노비’가 되고 싶었다. 어차피 고용주의 논리 속에서 움직여야 한다면, 최소한 그 방향과 원칙만큼은 내가 결정할 수 있기를 바랐다. 누군가의 전략을 대신 써주는 사람으로 남기보다, 직접 조직의 철학을 세우고 기업가치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었다. CIO같은 뭐 그런 거 있지 않은가. 그것이 내가 방향을 잃고 그저 맹목적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 주체적으로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일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꼭 CIO라든가 임원 따위의 감투를 써야 행복해진다는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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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욕심만으로 닿을 수 있는 세계는 아닐 테다. 현장에서의 감각은 쌓였지만, 그 감각을 구조화하고 구체화해 설명할 언어가 없었다. 리더십, 재무, 조직행동, 브랜드 가치 따위의 매일 접하던 단어를, 막상 이론으로 설명하거나 논리로 연결할 수는 없다. 나는 ‘현장의 사람’으로 살아왔지만, ‘경영의 언어’를 모르는 무지랭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의 미래의 커리어를 위해 여러 두려움이 있지만 이대로 부유하느니, 차라리 다시 항로를 정하고 바람을 맞는 편이 낫다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우수한 교수들로부터 학술적 지식을 쌓아가며 지금까지 내가 몸으로 체득한 현실을 이론과 통찰로 확장시키고 싶다. 나는 완벽한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 여러 가지를 제법 많이 모르기에. 어쩌면 MBA는 그 열망이 구체화된 이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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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학교를 가고 싶은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머릿속에서만 공허히 맴돌던 MBA를 구체적으로 현실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학교를 고를 때, 나는 인지도와 생활 리듬을 같이 고려했다. 이왕이면 돈만 내면 누구나 갈 수 있는 학교보다는, 일본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학교를 가고 싶었다. 인지도가 있는 학교라면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수월한 테고, 특히 MBA라면 학교의 네임밸류뿐만 아니라 그에 파생되는 인적 네트워크의 질이 다분히 중요해지기 때문이리라. MBA는 나를 포장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내가 진짜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어야 했다.
다음 기준은 생활 리듬 유지를 위한 위치였다. 퇴근 후 1시간 이내에 학교에 도착할 수 있어야 했고 기왕이면 집까지의 거리도 1시간 이내였으면 했다. 이동만으로 다음날의 업무가 지옥이 되는 건 막고 싶었던 까닭이다.
잔잔바리(?) 사항으로는 커리큘럼을 고려했는데, 이를테면 회계, 전략, 조직, 마케팅 같은 기초 과목들은 조직의 언어를 새로 배우는 느낌이라, 기본 커리큘럼 구성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확인했다. 그 위에 특히 스타트업 비즈니스, 기업가치향상, 데이터 기반 경영 같은 심화 과목이 있다면 그건 나의 일과 바로 맞닿을 수 있는 연결점이었기에 금상첨화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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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파트타임(야간제)을 가려고 하는가.
사실 우리끼리 얘기지만, 여건만 되면 풀타임 MBA를 가는 게 더 가치를 인정받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무지랭이인 내가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닐 테다. 하지만 적어도 이 두 길 중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더 좋다”는 건 없다는 사실이다. 나의 생활에 맞는 방식을 선택하고 MBA에 대한 장기적인 ROI는, 본인 나름의 노력과 가치관으로 찾아가면 될 일이라 생각한다.
먼저 풀타임과 파트타임을 비교해 보자면, 풀타임 MBA는 완전한 몰입형이다. 돈 버는 일을 잠시 내려놓고 인생을 통째로 리셋한다. 해외로 진출하거나, 지금까지의 경력을 완전히 새로 짜고 싶은 사람에게 이보다 더 강렬한 선택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모든 걸 걸어야 한다. 소득도 시간도 안정감도 잠시 포기해야 한다.
반면 야간 MBA는, 일과 학업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 낮의 현실이 밤의 공부와 이어진다. 이건 단기 ROI가 높다(고 말하고 싶다 웃음). 회사 생활을 이어가면서 자신의 경영 관점을 꾸준히 키워갈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풀타임이 인생의 ‘리부트(Reboot)’라면, 파트타임은 ‘리디자인(Redesign)’에 가까울 테다.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나를 조금 더 세련되게 다듬는 과정. 지금 상상하는 심상을 그려보자면, 그 과정에는 독특한 리듬이 있다. 밤 9시의 교실엔 피곤이 아니라 묘한 집중이 흐른다. 물론 모두가 하루의 업무를 마치고 온 사람들이라 표정엔 약간의 피로와 함께 강한 의지가 섞여 있다. 그래서 야간 MBA의 수업은 조금 더 인간적이고, 조금 더 진심이다.
결국 나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인생의 속도를 조정하고 싶다면 풀타임, 방향을 다듬고 싶다면 야간.
그리고 지금의 나는 속도를 내기보다 방향을 제대로 잡고 싶었다. 그래서 야간 MBA를 선택했다. 당연하게도, 온몸으로 버텨내는 주택론과 생활비를 감당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고 말이다(웃음).
야간 MBA는 지금의 나를 조금 더 의미 있게 살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방향이라 생각한다. 하루의 끝에 책을 펴고, 커피 한 잔(아니 레드불)을 마시며 다시 나를 채워가는 시간. 그 피곤함과 인내의 시간이 언젠간 만족의 시간으로 치환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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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할 학교를 정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신중해야 했다. MBA 진학을 결심했다고 해서 무작정 여러 학교에 원서를 넣을 수는 없었다. 일본 대학과 대학원의 수험료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원 접수비만 해도 학교당 약 35000엔, 우리 돈으로 치면 대략 35만원. 거기에 접수할 때 수수료도 따로 들어간다. 세 곳만 지원해도 검정료로만 10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거다.
‘이 학교에 35000엔을 낼 가치가 있는가’를 고민하는 시간이 짧지 않았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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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가 실제로 지원한 학교는 두 곳이었다. 와세다대학과 메이지대학.
아오야마가쿠인대학(이하 아오가쿠)도 지원하고 싶었지만, 메이지대학 합격을 먼저 받는 바람에 그러진 못했다.
와세다는 말 그대로 일본 최고 사학 중 하나다. MBA를 조금이라도 알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동경하게 되는 이름일 테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기대는 크지 않았다. 경쟁이 워낙 치열한 데다, 내 이력서가 단번에 눈에 띌 만한 화려함을 갖췄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력, 회사 네임밸류, 영어 성적 등을 종합해 보면 냉정한 계산이 먼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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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와세다는 1차 서류 전형에서 탈락.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어딘가 마음 한편에서는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던 결과였다.
문제는 메이지였다. 사실 내가 가고 싶었던 세 학교 중, 메이지는 서류 전형 난이도가 가장 높은 학교였다(고 생각한다). 연구계획서 작성 분량도 가장 많았고, 와세다나 아오가쿠에 비해 문항이 다소 추상적이라 작성하기 까다로웠다. ‘아씨 어차피 떨어질 거 같은데, 이거 35000엔 내야 되나’하는 생각이 멈추질 않았다. 그래도 결국은 못 먹어도 고!
시간을 쪼개 연구계획서를 쓰고, 내가 왜 MBA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메이지여야 하는지를 반복해서 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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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사실 가장 진심이었던 곳은 아오가쿠였다. 이상하게 예전부터 마음이 가며 동경하던 학교였고, 사전 설명회에 참여해 모의 수업까지 들어봤다. 무엇보다 아오가쿠의 가장 큰 매력은 졸업 요건에 석사 논문이 없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그게 무슨 대학원이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야간제로 공부하는 직장인에게 석사 논문은 시간과 체력, 그리고 정신력까지 갉아먹는 거대한 산일 테다. 그래서 연구계획서를 쓸 때도, 사실 아오가쿠 서류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 결국 아쉽게 제출하지는 못했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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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발표가 난 곳은 와세다였고, 그 다음이 메이지였다. 메이지와 아오가쿠는 검정료만 내면 면접의 기회까지는 주어지는 까닭에 조금 더 기대감이 높았던 게 사실이다. 일단 면접까지 가고 나면 어떻게든 나라는 사람을 진솔하게 전달할 자신이 있었다.
길고 긴 고민 끝에 메이지에 서류를 제출했고 면접을 봤다. 결과는 최종합격.
전술했듯 메이지 결과 발표 날이 아오가쿠 접수 마감일이었다. 탈락했다면 그대로 아오가쿠에 서류를 제출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나를 먼저 불러준 메이지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을 느끼며, 합격자 수험번호 일람을 몇 번이고 보고 또 살펴봤다. 정말로 내가 합격한 게 맞는지.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합격할 리가 없는데. 정말 맞나? 내가 메이지에 합격한 거라고? 뭔가 전산상 오류가 있는 건 아닌가? 내가 숫자를 잘못 보고 있나? 따위의 생각을 되뇌고 되뇌고 또다시 되뇌며.
(2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