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카4th - Olympus Trip35
셔터를 누르기 전, 빛이 먼저 말을 걸어오는 순간이 있다.
그날은 그런 날이었다. 나는 한동안 카메라를 고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카메라가 나를 고르게 두었다.
손에 잡힌 것은 Olympus Trip 35였다.
배터리가 필요 없는 카메라. 빛이 스스로를 읽고, 노출을 결정하는 카메라.
어쩌면 그날의 산과 가장 닮은 도구였다.
산으로 돌아가는 기억
대구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늘 산과 함께였다.
분지라는 말은 지리 시간에 배운 개념이었지만, 몸으로 먼저 알고 있었다.
앞을 보면 산이 있고 고개를 돌리면 또 다른 산이 있었다.
대덕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앞산, 하지만 누구도 그렇게 부르지 않던 산.
두류산, 비슬산, 그리고 팔공산.
그 안에서 자라며 나는 산을 풍경이 아니라 일상의 배경으로 받아들였다.
그중에서도 팔공산은 언제나 조금 다른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해발 1,192미터. 숫자는 단순하지만 그 위에 얹힌 이야기들은 그렇지 않았다.
수험생의 산. 백일기도의 산. 누군가의 간절함이 모여 있는 산.
그리고 그 정점에, 갓바위가 있었다.
나는 그곳에 가본 적이 있었다. 수능을 앞둔 어느 날.
누군가의 손에 이끌리듯 오르게 된 산. 그때의 기억은 명확하지 않다.
다만 하나는 선명하다. “힘들었다.”
산은 험했고, 길은 길었다.
그때의 나는 기도보다 숨을 쉬는 것이 더 급했다.
그래서인지 갓바위의 모습보다 올라가는 과정의 기억이 더 짙게 남아 있다.
그 이후로 그 산은 쉽게 떠올리지 않는 곳이 되었다.
신년이 되었다. 형식적인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불자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면서도 봉정사 한 번 제대로 찾지 않았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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