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카 3rd - CMEHA35
셔터가 닫히는 순간, 기억은 한 장의 얇은 필름 위에 눌려 앉는다.
이 작은 소리가 내 마음의 맥박처럼 느껴졌던 시절이 있었다.
2000년대 초반, 홍대 앞의 낡은 골목엔 ‘로모그래피’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그 단어는 브랜드이기도 했지만, 나에겐 태도였다.
그들의 구호는 자유로움의 다른 이름처럼 들렸다.
아무 계획 없이 셔터를 누르고, 초점이 맞지 않아도 웃을 수 있는 그런 세계.
모든 우연을 예술로 바꾸는 세계 말이다.
그때, 나는 우연히 한 상점에서 낯선 카메라를 보았다.
푸른색 라인이 들어간 플라스틱 바디,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고 가벼운 크기.
러시아 글씨로 ‘СМЕНА 35’—SEMANA가 영문표기, 스메나 35.
가격은 커피 세 잔 값이었다.
아무도 그 카메라의 역사를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그것이 나를 부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스메나는 1990년대 초, 구소련의 셀프카메라 붐 속에서 태어났다.
거의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이 카메라는 수동식이다.
노출계도 없고, 초점도 직접 돌려 맞춰야 한다.
렌즈는 트리플렛 43—날카롭지 않지만 독특한 색감으로 유명하다.
내가 좋아하는 MINATAR 32mm 렌즈가 있다. 선명함과 거리가 있지만 렌즈캡 같은 모습에 재미있는 렌즈
그 팀이 설계했다고 한다.
처음 이 카메라를 손에 쥐었을 때,
플라스틱의 가벼움보다 이상하게 묵직한 시간의 감각이 느껴졌다.
마치 이 카메라 안에는 오래된 바람과 먼지가 함께 들어 있는 듯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투박한 질감,
부드럽게 돌아가는 셔터 다이얼,
그리고 사진을 감을 때 들리는 조용한 클릭 소리.
스메나는 불완전한 기계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덕분에 오히려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된다.
하나의 장면을 찍기 위해선, 빛을 읽어야 하고,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하늘의 구름이 지나가기를, 아이가 걸음을 멈추기를,
그리고 마음이 조금 고요해지기를 기다리는 일.
그 기다림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사진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라는 것을.
잘 찍는 것보다, 진심을 담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로모그래피를 러시아 회사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시작된 예술가 그룹이었다.
LOMO LC-A, 그들이 사랑했던 카메라는
원래 러시아의 ZENITH사가 일본 COSINA CX-2를 모방해 만든 기종이었다.
1980년대, 비엔나의 예술학교 학생들이 이 카메라를 발견하고
예측 불가능한 색감, 과장된 비네팅,
흐릿한 초점 속에서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들은 말한다.
“우연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연출이다.”
그 말에 나는 오랫동안 공감했다.
로모그래피는 단순히 사진을 찍는 행위가 아니라
삶을 기록하는 태도였다.
사진이 아니라 순간의 리듬,
이미지가 아니라 감정의 흔적을 남기는 일.
그래서일까, 스메나를 들면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어설프고 느린 그 리듬이,
나를 조금 더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스메나는 정말 불편한 카메라다.
셔터 속도, 조리개, 초점—모두 수동이다.
노출계도 없고, 심지어 와인딩 레버는 가끔 헛돌기도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불편함이 ‘자유’로 느껴졌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빛을 읽어야 했다.
눈으로 하늘을 보고, 구름의 그림자를 관찰했다.
빛이 약할 땐 셔터를 늦추고, 너무 강할 땐 조리개를 조였다.
그 단순한 행위 속에서 나는 세계와 대화하고 있었다.
요즘의 카메라들은 너무 똑똑하다.
어두우면 ISO를 올리고, 흔들리면 자동으로 보정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인간은 감각을 잃는다.
스메나는 나에게 감각을 되돌려준 카메라였다.
세상의 밝기와 그림자를 직접 느끼게 한, 아주 정직한 기계.
한 장을 찍기 위해 몇 분을 서성일 때가 있었다.
빛이 흐르고, 마음이 움직이고,
그때서야 셔터를 눌렀다.
그 순간의 공기, 냄새, 바람의 방향까지
모두 한 장의 필름 속에 들어갔다.
로모그래피는 결국 ‘놀이’였다.
사진을 잘 찍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찍는 것.
스메나는 그런 놀이의 철학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카메라다.
나는 이 카메라로 친구들과 시장을 걸었고,
골목의 노을을 찍었고,
밤에 켜진 가로등 불빛 아래서 웃는 사람들을 담았다.
모든 장면은 예상할 수 없었고,
그 예측 불가능함이 오히려 나를 설레게 했다.
사진이 잘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빛샘이 생기면 그것마저 예술이 되었고,
초점이 나가면 그 흐릿함 속에서 감정이 태어났다.
로모그래피의 철학은 결국 ‘불완전함의 미학’이다.
스메나는 로모그래피의 법칙들과 함께 하고 있다.
싸구려 플라스틱 바디와 값싼 렌즈,
그러나 그 안에는 인간적인 따뜻함이 숨어 있다.
이제는 필름을 구하기조차 쉽지 않다.
110 필름이든 35mm 필름이든, 가격은 예전의 몇 배다.
하지만 가끔은 여전히 스메나를 꺼내 든다.
손끝으로 그 파란 선을 쓸어보면
마치 오래된 친구의 얼굴을 다시 보는 기분이 든다.
그 카메라는 나에게 사진의 기초를 가르쳤다.
빛을 느끼는 법, 기다림의 의미,
그리고 무엇보다 ‘찍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구별하는 법.
사진은 결국 선택의 예술이다.
스메나는 그 선택을 느리게 만들어준다.
그 느림 속에서 나는 오히려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었다.
이제 스메나는 내 책상 서랍 속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다.
하지만 가끔은 꺼내어 들고,
셔터를 감아본다. 찌이익 이이익, 틱
그 소리는 여전히 생생하다.
파인더를 들여다보면 붉은색 장전 포인트로 촬영의 유무를 알 수 있다.
너무나 즉각 적이다.
스메나는 단순한 카메라가 아니다.
로모그래피 이전의 로모그래피,
즉흥과 우연, 실패와 감정을 사랑하던 시절의 상징이다.
나는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기 위해,
이 카메라를 아직 버리지 못한다.
빛이 조금만 더 부드러워지면,
다시 한번 필름을 감고 나설 것이다.
어딘가 낯선 길 위에서,
또 한 장의 실수를 남기기 위해서.
그 실수가 결국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