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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괭이네 집 Feb 21. 2020

고생을 사서 하는 컵홀더 순례

너의 덕질일기14

내가 그녀의 덕질 라이프를 지켜보면서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컵홀더 순례였다.


때는 바야흐로 봄날의 어느 날~~ 그녀는 내게 느닷없이 홍대에 가는 방법을 물었다. 학원 가는 버스조차 탈 줄 몰라서 엄마에게 셔틀을 시키던 그녀가, 홍대라니? 마음이 어찌나 불안했던지 데려다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다 큰 딸 뒤꽁무니 따라다니는 것도 우습다 싶어서 패스~~


그날부터였다. 홍대만 나가면 손에 컵홀더를 들고 들어오던 그녀. 자신이 받아온 컵홀더를 늘어놓고는 하나씩 설명을 시작했다. 이것은 어느 카페에서 받은 거고, 줄을 얼마나 섰고, 카페 찾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그녀의 컵홀더는 숭고한(?) 순례의 대가였던 것이다.



처음에 나는 이러한 굿즈를 제작한 사람이 카페 사장님인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음료를 사 먹고 받아오는 것이라고 하니, 당연히 사장님이 제작한 줄~~ 그래서 참 홍보도 다양하게 하는구나 싶었다.


자영업의 어려움을 느끼며 월급쟁이의 삶에 과도한 긍정을 부여하던 찰나!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되었다. 컵홀더의 숨겨진 비밀! 그것은 컵홀더를 제작하는 것이 카페 사장님이 아니란 사실!!!


바야흐로 컵홀더는 애정하는 아이돌의 생일이나 데뷔일 등을 기념하여 팬들이 자체 제작한 굿즈!!! 그것을 카페 등을 통해 나누어 주는 것이다.  또한 팬들은 카페를 자신의 아이돌 포스터 등으로 직접 꾸미기도 한단다. 그리고 트위터에 언제 어느 카페에서 컵홀더를 나누어 준다고 홍보하면, 팬들은 그곳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해당 카페에서는 손님들이 음료를 주문하면 컵홀더를 나눠준다 한다.


카페마다 입장은 다르겠지만, 주로 신생 카페나 외진 곳에 있는 카페에서 컵홀더 나눔을 잘 받아주는 것 같았다. 카페 사장님에게 약간의 번거로움은 있지만, 홍보도 되고 손님도 더 많아지니 꽤 괜찮은 콜라보인 듯싶었다. 카페 사장님 입장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컵홀더 순례를 지속하는 근본적인 동력, 덕후들의 머릿속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였다. 열심히 굿즈를 만들어 무료로 나누어 주는 사람이나, 그걸 받겠다고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며 음료로 배를 채우는 사람이나.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 이거야말로 자본주의를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견고한 자본주의의 논리마저 뒤집는 덕질이라니... 고생을 사서 하는 그녀의 컵홀더 순례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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