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전라남도 순천 출신으로 갓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서울로 상경했다. 가난한 살림에 공부는 꿈도 못 꾸는 집안에서 태어나 고생만 하다 탈출한 셈이다. 꽃다운 나이인 스물두 살에 결혼했다. 울 엄마는 아빠가 술담배를 하지 않아 좋았다고 했다. 외할아버지가 엄청난 술고래, 꼴초로 할머니의 속을 많이 썩였기 때문이다.
술을 보면 진절머리가 났던 엄마는 돈 한 푼 없는 아빠와 덜컥 결혼했다. 그 철없는 결정이 자신의 인생 평생을 좌지우지할 줄도 모른채.
배운 것 없이 열정만 가득했던 스무 살 초반의 부부는 결혼 일 년 만에 아이를 낳았다. 그게 바로 나다. 그쯤 아빠의 사업은 계속 실패했다. 답답했던 엄마는 지인의 손에 이끌려 점집에 갔고 그곳에서 일생일대의 경고를 받았다.
쯧, 둘이 안 맞아서 그래.
지금처럼 계속 같이 살면 남자가 죽어.
얼른 갈라서야 돼.
겁에 질려 집에 돌아 온 스물 세살 새댁은 짐을 싸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다. 딸을 데리고 떠나자니 젊은 여자 혼자 애 키우며 살 자신이 없고 그대로 살자니 남자가 죽는다니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싶다. 그러다 갓난아기였던 나를 안았는데 나의 까만 눈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두고 갈 수 없어서 모든 것을 감내하고 살기로 했다고 한다. 자식을 위해 인생을 바칠 각오를 했다.
그리고는 1년 후 동생을 낳았다. 연년생이었다. 엄마는 연년생 아기들을 키웠던 시절을 엄청난 고통으로 해석한다. 나는 그게 슬펐다.
엄마의 삶은 고되었다. 아빠는 친구의 권유로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구멍가게를 인수했다. 두 사람은 새벽같이 일어나 일을 했다. 열.심.히. 아침부터 자정까지 연중무휴로 쉬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당시에는 김장 배추도 절여 팔았다. 몇 톤의 배추를 밤새 절여야 했다. 얼마를 사던 무료로 배송했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짜리 아파트 계단을 수시로 오르락내리락했다. 가게는 장사가 잘 되었다. 적어도 대형마트가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 가족은 구멍가게에 딸린 집에 살았다. 방은 두 개였고 방 사이를 건너려면 신발을 신어야 했다. 어둡고 침침한 작은 부엌에 세간살이가 겹겹이 쌓여있었고 그 옆에 연탄아궁이가 있었다. 부엌 한편에 하얗게 타버린 연탄 몇 개가 쌓여있곤 했다.
아궁이 옆에는 화장실이 있었는데 벽에는 항상 거미줄이 있었다. 화장실에는 작은 창문이 있었는데 그 창문에 몸을 끼워 넣으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창문 밖은 숲으로 이어져 있었다. 마치 원더랜드처럼 아름답게 우거진 숲에서 놀다가 다시 창문을 통해 집으로 돌아왔다. 숲에 대한 기억이 사실일까? 아니면 어릴 적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꾸며낸 상상일까? 그건 잘 모르겠다.
희안하게도, 나에게는 엄마와의 어릴적 기억이 별로 없다. 다른 사람도 그럴까 싶어 물어도 보았는데 다들 적어도 엄마와 밥을 먹었던 기억정도는 있었다. 내 기억력이 별로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이렇게 함께 밥 먹은 기억도 없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웃었던 것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신 예민하고 항상 짜증이 나 있었다. 아니면 내가 그런 기억만 선별하여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어린 시절의 나는 엄마가 편하지 않았다.
하루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내 복장 때문이었다. 거울 속의 나는 딱 달라붙은 검은색 청바지에 빨간 양말을 신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러웠다. 아무렇게나 입은 내 모습. 가지고 싶은 것이 없는 아이. 오로지 엄마가 건넬(지도 모르는) 작은 칭찬을 위해 1살 어린 동생을 마치 5살 어린 아이 챙기듯 돕고, 학교 숙제를 혼자 착실히 하는 아이. 어른들 말씀을 잘 듣는 아이. 그런 모습이 다른 아이들의 눈에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칭찬받고 싶었다. 사랑받고 싶었다. 그 마음이 만성 불안과 걱정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엄청난 사춘기, 그리고 방황, 눈물.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하고 초조할까, 왜 만족하지 못하고 탐닉하고 어디론가 떠나고만 싶을까? 코스피 차트처럼 감정도 오락가락했다. 좋았다가 나빴다가. 행복했다가 괴로웠다가.
그러던 어느 날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다가 난데없이 우울증 약과 진정제를 받아 나왔다. 나는 스무 살 초반에 우울증 환자가 되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앞으로 살날이 많은데 이렇게 살 거면 차라리......
내 인생은 무거웠다.
그러나.
지금은 180도 달라져있다. 우울함을 느끼는 일은 거의 없다. 거의 모든 날을 충만하고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 원하는 것들이 원하는 때에 신기하게 찾아온다.
내게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여러 시도를 통해 해법을 알게 되었다. 그 내용을 꼭 필요한 이들에게 공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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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연 코치는 '어떻게 잘 살아야 할까?'라는 주제로 강연과 코칭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생각과 감정을 조절하여 원하는 삶을 끌어당기는 방법을 안내합니다. 당신의 '잘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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