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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zie Kim Sep 15. 2023

영국과 한국의 육아 공간의 차이

영국에서 아이를 낳고 3년을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지 이제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나와 아이, 그리고 남편 모두 달라진 생활환경과 언어, 식생활 등등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이젠 어느 정도 생활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12년 만에 돌아온 현재 한국의 최대의 논제는 아마도 저출산과 교사 인권 문제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아직 학부모가 아닌 나에게 크게 다가오는 부분은 저출산 문제, 그리고 한국에서의 육아 생활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왜 굳이 한국에 돌아오셨어요?"였다. 이 질문을 다른 사람도 아닌, 어린이집 원감 선생님에게서 가장 직접적으로 들었다. 비꼬는 질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왜, 남들은 떠나고 싶어서 안달하는, 한국에 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육아 선진국인 영국을 떠나서, 이 시국에 한국으로 돌아왔나요?' 질문의 축약형일 것이다.


물론, 영국에서 육아도 현실이고, 결코 녹록지 않다. 그리고 지난 십여 년 동안 한국을 가끔 방문하면서, 한국에서도 육아에 대한 지원이 엄청나게 많아지고, 아이에 대한 배려가 생활 곳곳에서 정착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예를 들어, 내 기억에 2000년대 초 중반만 하더라도 음식점이나 커피숍에 아기 의자가 있는 곳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물론 미혼이라 관심이 없어서 몰랐을 수도 있다). 그래서 굳이 영국이 더 좋고, 한국은 아직도 멀었다는 단순 비교는 사실 정확하지 않다. 


한국이 육아 측면에서 훨씬 좋은 부분도 분명 있다. 가장 단순하게, 영국에서 어린이집을 보내려면 올해 5월 물가 기준으로 월 190만원 정도가 든다(약 1200파운드). 이것도 런던 밖에서의 물가고, 런던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이것도 다 조금 높지 않을까. 일반적인 영국 중상층의 평균 월급이 1900 파운드이니까 부부 중 한 사람의 월급이 거의 모두 육아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렇기 때문에 아이 둘 이상을 어린이집에 보내려면 평균 이상의 월급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풀타임에서 파트타임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영국에서는 어린이집을 주 5회 다 보내지 않아도 가정의 스케줄이 맞춰서 주일 수를 조정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한국에서 어린이집이 공짜라고 했을 때, 영국에 살던 친구들이 너무 놀라워했다. 물론 따라오는 질문은 '공짜인데 교육의 질은 어떠냐?'였지만. (이것은 어린이집마다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영국이 '아주 조금 더' 좋은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내가 영국의 육아 환경에서 그리워하는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었던 많은 '공간'들이다. 

한국에도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 수적으로는 많아졌다. 거리 구석구석마다 생긴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나 공원, 키즈카페, 어린이들을 위한 무료 공연 등도 예전에 비해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내가 굳이 영국에서 아이와 다녔던 '공간'을 그리워하는 것은, 공간의 양 때문이 아니다. 바로 공간의 분위기 차이 때문이다.


한국에서 '아이와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그 공간의 대략적 느낌은 이렇다. 총 천연색 색감의 인테리어와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모든 것이 안전하며 보드라운 바닥에 모든 것이 것이 깨끗하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노래가 잔잔히 들려오는 곳. 아마 뽀로로 동상이 있으면 화룡정점일 것이다. 그곳에서 파는 음식들로 모두 아이들 위주의 메뉴들일 것이고, 보통 아이들이 뛰어노는 곳은 보통 청결의 이유로 음식물 반입이 금지되어 있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의 목적은 아주 분명하다. 아이들(만)을 위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공간. 그곳의 주인공은 아이들이니까. 하지만 그 아이들을 데리고 간 부모들은 그저 아이들의 보호자일 뿐, 그곳에서 딱히 할 일은 없다. 한국에서 아이들의 공간들은 이렇게 어른과 아이의 역할을 분명하게 구분 지어 놓는다. 딱히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 아이도 그런 공간들을 좋아하니까. 단지 보육자로서는 아주 심심한 공간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딱히 보육자들끼리 대화가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타인과의 대화는 어차피 특별한 경우, 즉 당신이 유재석이 아닌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마치 각자 버블에 쌓인 것처럼, 다른 아이들과 부모들은 이 공간에 존재하지 않고, 어쩌면 나의 존재조차 존재하지 않는 듯이, 내 아이의 재미와 교육의 목적으로만 사용되는 것이 한국에서의 '아이를 위한 공간'이다.




영국의 공간들은 다르다. 일단 '아이들을 데리고 갈 만한 곳'이라는 단어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보통은 '가족을 위한 곳'(family-friendly)이라는 소개가 더 일반적이다. 즉, 내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에서 부모인 나 역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한국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만 2살 아이를 데리고 '레이브 Rave 파티를 데리고 간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영국의 '어른'들의 Rave 파티는 이런 느낌이다. 

Photo by Neal E. Johnson on Unsplash


물론, 아이들의 파티는 좀 다른 분위기다.

파티를 즐기는 내 친구들과 아이들.

아이들도 즐겁지만 어른들도 즐겁다. 맥주를 마시고, 같이 춤도 추고, 맛있는 길거리 음식들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들)도 같이 판다. 한마디로 가족들이 와서 떠들고 즐길 수 있는 파티였다.


또 기억에 남는 것은 또 아이가 만 2살 때쯤 데려간 뮤직 페스티벌이다. 물론 영국의 뮤직 페스타발, 특히 글래스톤베리 Glastonbury Festival은 솔직히 마약등으로 악명이 높다. 그래서 최근 영국에서는 기존의 페스티벌 말고 가족들이 와서 즐길 수 있는 페스티벌을 많이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가 올 수 있다고 해서 뽀로로 음악을 틀어놓은 것이 아니다. 내가 갔던 페스티벌의 라인업들은 그 유명한 90년대의 영국 브릿락의 주자 자비스 코커 뿐 아니라 당시 쟁쟁히 잘 나가는 여러 장느의 뮤지션들이 대거 등장했다.  

그때 보았던 뮤지션들일 알아보자

2022년 블루닷(Bluedot) 페스티벌 라인업.


음악을 좋아하신다면 이게 얼마나 괜찮은 라인업인지 알 수 있다.( 뷔욕, 모과이, 메트로노미 등등!)


이런 음악 페스티벌에 데리고 오는 아이들의 연령은 참으로 다양했다. 나처럼 2-5살짜리 유아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도 상당수였고, 자리를 깔고 한 살도 안된 아이들을 모유 수유하면서 즐기던 엄마들도 아주 많았다. (심지어 우리 텐트 옆에 온 가족은 거의 신생아를 데리고 와서 나도 깜짝 놀랐을 정도다).

음악을 즐기고 계시는 남편과 내 딸.


또 음악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도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정말 최상의 장소였다.


한마디로, 영국에서 육아의 공간들은 '어른과 아이가 자연스럽게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가족의 공간'의 역할이 더 크다. 아마도 따분한 것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이 재미없으면 굳이 하지 않는 영국의 육아 문화의 영향이 아주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아이들을 위해 나의 주말을 희생해야 하는 육아라면 영국에서는 나도 함께 같이 즐길 수 있는 문화다. 그렇게 우연히 간 곳에서 아이들끼리 서로 부딪히며 놀고, 부모들은 가볍게 맥주 한 잔 하면서 옆에 온 부모들과 대화를 나누고, 개중에는 그런 인연으로 친구가 되기도 하는 문화. 당연히 나는 영국에서의 즐거웠던 육아 공간이 더 그리울 수밖에 없다.


육아를 위해선 사회와 공동체가 함께 즐거울 수 있는 문화와 분위기. 희생을 전제로 하지 않는 육아 문화가 나 같은 날라리 부모에겐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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