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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zie Kim Jan 30. 2024

한국 조리원을 포기하는 이유

부제: 영국에서 얻은 출산과 모유수유에 대한 무한한 긍정의 파워

들어가기에 앞서:

현재 나는 8개월 차 둘째를 임신 중이다. 첫째는 영국에서 출산했고, 한국에서 계획 반, 우연 반으로 둘째를 얻게 되었다. 첫째와 둘째를 낳게 된 나라가 다르고, 출산의 문화도 다르고, 두 나라에서 산모에게 강조하는 면도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두 나라의 출산 경험을 비교하게 되었다. 

앞의 글에서 육아의 문화에 대해 비교를 하게 되었는데, 이제 출산 문화 경험을 비교하는 글을 쓰게 되었다.




현재 한국에서의 출산을 계획하게 되면 가장 먼저 고민하게 되는 것은 '산후 조리원'이다. 

한국에서 만의 독특한 출산 지원 방식으로 자리 잡아 이제는 거의 80% 이상의 산모들이 산후 조리원을 사용한다는 통계를 보았다 (2022년 기준). 영국에서 첫째를 출산한 나는 산후 조리원을 드라마와 각종 블로그를 통해서 간접 경험했기 때문에 '조리원 천국'이라는 리뷰에 익숙했다.


우선, 현 한국 사회에서 산후 조리원이 중요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왜 영국의 산모들은 산후 조리원을 사용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개인적인 생각으로 우선 제일 큰 차이점은, 한국에서는 출산 후 산모의 몸을 추스르는 산후조리를 가장 먼저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영국에서는 부모와 아기의 애착형성에 더 큰 방점을 찍는다. 


한국에서 여자로 태어나서 듣게 되는 가장 공포스러운 괴담 중의 하나는 첫번째는 아마도 출산 스토리이며, 둘째는 산후풍을 비롯한 각종 산후 조리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산후 조리를 잘 못하면 평생 아프게 될 것이며, 찬물로 씻으면 안 되고, 찬바람을 쐬어서도 안되고, 모유 수유에 좋다는 미역국을 주구 장창 먹어야 하며 출산 후 3개월 내에 살을 빼야한다는 등등. 한국인 여자 사람이면 아기를 낳지 않아도 익숙하고 당연한 이야기들. 이런 이야기들이 첫 2-3주의 산후 조리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도록 만든다.


아마 이 이야기들은 70-80년대 이전에는 맞는 말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할머니, 어머니 대에서는 산모에 대한 존중이 거의 없다시피 했고, 누군가의 며느리라는 처지 때문에 애를 낳고 제대로 해산도 못하고 곧바로 누군가의 삼시 세끼를 만들어 내거나, 밭을 갈러 간다거나, 출산 1개월 후 일터로 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산후 조리를 제대로 못한 우리 할머니, 어머니 세대에서 나온 그 세대의 경험적인 이야기들이 집단의 공포가 되어 우리 세대의 산후 조리원 문화를 발전시켰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산후 조리가 시대착오적이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나 스스로도 첫째 아이를 낳고 나서 손목이 아프고 걷기가 어려워서 2달간은 꼼짝없이 집에서만 지냈었다. 산후의 여성의 몸은 보호되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로' '어떤 방식으로' '얼마만큼의 기간동안' 보호되어야 하는지는 시대와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차이가 크게 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산후조리원'이라는 공간에서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산후 조리에 대해 어느 정도 회의감이 있다.


영국의 산후조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영국에서도 역시 산후조리를 강조하고 있다. 이번 글을 쓰면서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솔직히 충격적일 만큼 상세히, 그리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산후조리를 지도하고 있다.

영국 NHS 사이트의 산후조리 가이드라인 2023년 기준

이 가이드라인은 우선적으로 영국의 의료 종사자(의사, 간호사, 산후조리사)들을 위한 것이지만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정부에서 체계적으로 데이터를 통해서 어떻게 산모들을 도와줘야 할지 데이터를 축적해서 공공의 지식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여러 가지 정보들 사이에서 헷갈리거나 논쟁의 여지가 줄어들게 된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산후 조리를 하는 여성들의 인종과 빈부격차 등, 사회적 요인을 고려한 가이드라인들 뿐만 아니라 산후 우울증에 대한 대처 방안, 그리고 출산 중 아이를 잃은 산모들에 대한 서포트에 대한 가이드라인들도 갖춰져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영국의 산후조리는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와 사회에서 지원해 주는 커다란 시스템이라는 생각이다. 또한 개개인의 산모의 상태와 배경등을 고려해서 산후 후에 하는 신생아와 산모의 건강 체크는 산후 조리사들이 직접 집으로 방문을 해서 몸을 살피고, 만약 모유 수유에 어려움이 있을 경우에도 출산 후 1년 내에 산후 조리사나 모유 수유 전문가들에게 집방문을 요청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한국의 조리원을 포기하는 이유는 뭘까?


처음에 나도 조리원을 가려고 예약을 했었다. 마사지 덕후인 내가 1-2주 동안 마사지를 받으며 남이 해주는 밥 먹으면서 오로지 아기와 시간을 보내며 맘 편안히 몸조리를 하고 가끔씩 간호사분들의 도움을 받으며 팁을 전수 받는 것을 생각하면서 들떠 있었다(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산후 조리원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출산해보지 못한 내가 간과한 아주 커다란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우리나라 많은 조리원들은 24시간 모자병실이 안된다는 점이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지방 도시에는 단 한곳의 산후 조리원만 24시간 모자병동을 지원한다. 

신생아를 출산하는 병원에서도 심지어 모자병실이 안된다는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듣고 난 정말 멍해졌다. 


왜 신생아를 엄마인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돌보는 것인가?


모자병실을 하지 않을 경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모유수유에 엄청난 지장을 준다는 점이다. 엄마의 몸은 아기가 먹는 자극을 주는 만큼 모유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수유량을 늘리고 싶다면 초기에 그냥 많이 젖을 물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특히 젖이 돌기 전에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것이 좋다. 이것은 젖몸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필수이다. 비싼 돈 내서 젖마사지를 받을 필요가 없다! 한국만의 시스템인 수유콜이라는 것도 도움이 안되는 이유가, 일단 산모가 아픈 몸을 이끌고 수유실로 움직여야하고(아프고 귀찮다!), 일단 수유콜을 받고 이동하는 동안 아기는 이미 먹을 타이밍을 놓쳤을 확률이 높다(아기가 미친듯이 울거나 화가 나 있을 것이다). 또한, 수축을 한 모유를 젖병으로 먹이게 되면 신생아는 젖병으로 빠는 것이 더 쉽기 때문에 엄마젖을 빠는 연습을 거부하게 될 확률이 높아서 모유 수유를 더욱 어렵게 만들게 된다.


한마디로, 모유 수유를 하고 싶다면, 산모의 몸과 정신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모자병동이 더 낫다.


물론 모유수유를 선택하지 않을 산모도 있을 것이고,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처럼 모유수유에 익숙한 사람들, 아니면 시도해 보고 싶은 산모들에게 이 시스템은 처음부터 난관에 처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영국에서의 모유 수유는 어떠할까?


상대적으로 영국은 모유 수유에 대한 지원이 상당하고,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로 모유수유를 권장(강요로 읽으셔도 무방하다!)한다.

물론 모유수유가 아기에게 좋다는 것은 이미 모두 알고 있지만, 이 개인주의가 지상 최고의 가치인 나라에서 산모들에게 이정도로 권장(압박)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가장 큰 이유는 산모와 아이의 애착형성과 산모의 건강을 위해서다.


한국의 엄마들에게 아이에 대한 절대적인 모성애와 사랑은 당연한 전제이다. 내 친구들 몇몇도 '아이를 낳자마자 나서 갑자기 세상이 달라보였다'는 간증을 했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힘들지언정, 아이에 대한 애정이 없다고 할 수 있는 엄마는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전제가 영국에서는 당연하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모성은 아이를 낳자마자 생기는 것이 아닌 것으로 인식한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영국은 다문화 사회이며, 경제적, 문화적, 인종적 차이가 크기 때문에 한국적인 '단일문화 단일민족의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생각'의 전제를 둘 수 없다. 산후 우울증, 개개인의 편차, 문화의 차이점, 경제적인 사정 등등으로 인해, 아이가 방임되는 경우도 많다. (나 개인적으로 아기가 정말 예뻐보이기 시작한 시점은 아마 생후 8개월 쯤이었던 것 같다.)


특히, 영국 사회에서 가장 부각되고 있는 것이 산후 우울증의 문제이다. 한국에서 경험상 산후 우울증은 특정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 크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산모가 되기 이전에 여성의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인정하기 때문에, 산후 우울증을 '엄마여서' 당연히 감당해야하는 문제들로 치부하지 않는다.


산후 우울증을 줄여줄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산모와 아기의 애착 형성이고, 그 애착 형성을 도와주기 위해 모유 수유가 권장된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 모유 수유는 산후 마시지보다 훨씬 산모의 회복을 빠르게 진행시켜준다. 한마디로, 한국에서처럼 모유 수유를 아기에게 좋기 때문에 권장한다기 보다는 산모에게도 훨씬 좋기 때문에 더 강조한다.


물론, 모유 수유는 어렵다. 정말 무지막지하게 어렵다. 난 영국에서 출산 하자마자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24시간 낮과 밤 붙어있었고, 아이가 젖병을 거부해서 17개월이 직수로 완모(해석: 17개월동안 젖병을 사용한적도, 유축도 단 한번도 한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모유 수유를 하는 엄마들에게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지 않고 응원해주었다, 식당에서, 카페에서, 공원에서, 길거리에서, 쇼핑몰에서 갑자기 윗도리를 젖히고 모유 수유를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내가 모유 수유가 어렵다고 불평할 때마다, 낯선 사람들에게서 조차 '넌 정말 대단해, 정말 잘하고 있어! 조금만 힘내봐! 넌 최고의 엄마야' 라는 너무나 낯간지러운 응원을 들어서 나중에는 모유 수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정말 나중에는 없던 자신감마저도 뿜어져 나오게 되는 최면 상태가 되는 것이다(긍정적인 가스라이팅의 예). 이러한 무한한 긍정의 파워(무한한 사회적 압박)가 솔직히 17개월동안 모유 수유를 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긍정적인 경험 이후에 나는 엄마로서, 그리고 내 몸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인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난 그렇게 고생하고서도 나는 둘째도 최대한 모유 수유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일반적으로 직장 다니는 산모의 산후 휴가가 1년이 지원이 되고 산후 휴가 다녀와서도 회사에서 차별이 없고, 주위에 모유수유하는 엄마들이 많고, 모유 수유를 하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영화관이 있고, 음악 페스티발이 있고, 남편이 집안일은 맡아서 알아서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되는 길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서로서로 도와주고 으쌰으쌰하는 분위기와, 그리고 엄마들이 사회와 정책을 바꾸려고 하는 노력 덕분에 가능할 수 있다. 


슬프게도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마지막 문장을 거꾸로 적용해야하기 때문이기 때문에, 산후 조리원을 가야하는 이유는 천국을 느낄 수 있는 한국 엄마들의 유일한 선택지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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