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남씨 부엌에서 내가 컸다
반년은 넘게 찾아 헤맸다. 작년 이맘 때 만들어 보겠다고 막걸리와 밀가루를 1:1로 섞어 모양은 만들어졌지만 기름에 튀겨낸 약과는 내가 기억하는 맛이 당.연.히. 아니었다. 분명 할머니는 막걸리와 밀가루를 일대일로 섞어 약과 반죽을 만드셨다. (식용유도 좀 넣으셨던 것 같기도 하다. 긁적)
날이 선선해져야 만들 수 있는 간식이 약과다. 약과를 튀기고 나면 조청을 입혔는데 이 조청은 더우면 잘 굳지 않는다. 할머니는 조청도 집에서 만드셨다. 부엌 아궁이에 걸려있는 큰 가마솥의 ‘어떤 액체’를 대형 나무주걱으로 아주 오래 동안 천천히 저어서 만드셨다. 조청은 약과 뿐 아니라 연근조림에도 사용되었고, 구운 가래떡을 찍어 먹는 소스가 되기도 했다. 조청이 없어서인지 나는 도대체 쫀득쫀득한 연근조림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조림이 아니라 정과에 가까운 조리법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우리 집 약과는 두 가지 모양이었다. 할머니와 나 사이의 약과 명명법 있었다. 꽈배기 그리고 마름모다.
먼저 만드는 것이 꽈배기 모양이다. 길쭉한 직사각모양으로 잘린 반죽이 내게 넘겨지면 나는 작은 칼로 네모난 반죽의 정 중앙에 길게 세로로 흠집을 낸다. 네모난 반죽의 위쪽을 살짝 조심스럽게 잡아 가운데 칼집 시어로 쏙 넣으면 꽈배기 모양이 만들어진다.
조금 더 고급버전의 꽈배기 모양이 있다. 고급버전은 길쭉한 직사각항에 세로로 칼집을 세 줄 넣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꽈배기 모양이 양쪽으로 두 줄로 만들어져 모양새가 더 난다. 그런데 꽈배기 고급버전 제작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폭 2.5 센티미터, 높이 7센티미터 미만의 세로로 긴 직사각형 안에 세 개의 칼집을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밀가루 반죽이다. 말캉말캉하고 기름져서 미끄럽고 두께가 3 밀리미터 이하로 얇다. 정교함과 정확함이 필요한 작업이다. 정 중앙 칼집의 길이 보다 양옆의 보조 칼집의 길이가 살짝 더 길어야 완성된 꽈배기 모양이 더 예뻤다. 칼집을 정 중앙에 딱 맞게 맞춰 넣는 것도 힘들다. 그래서 그랬는지 우리 집 꽈배기 모양의 약과는 한 줄짜리 꽈배기가 많았다. 만드는 사람 마음이다! 쳇.
내가 꽈배기 모양 잡기에 슬슬 꾀가 날 때 쯤 남은 반죽이 마름모 모양의 약과로 만들어졌다. 마름모 약과는 할머니의 역할이 더 많았다. 얇게 핀 반죽에 세로로 칼집을 넣어 폭을 잡고 대각선으로 다시 칼집을 넣으면 마름모 모양이 완성된다. 여기까지만 해도 될 텐데 그 다음 과정이 내 몫이었다. 젓가락 한 짝을 사용해 마름모 반죽 가운데에 점을 찍듯 세 개의 구멍 아닌 구멍을 콕콕 박아야 한다. 모양도 모양이고 반죽이 튀겨질 때 열이 골고루 잘 전달되게 하는 장치였던 것 같다. 나는 이 세 개의 점 사이 간격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었다. 그래야 만들어졌을 때 반듯하니 모양이 이쁘니까.
기름에 튀겨진 약과는 뽀얀 베이지 색이 난다. 조청에 들어갔다 나와야 약간 검붉은 빛이 도는 윤기 좌르르한 약과가 되었다. 만들지는 못하겠고 어떻게든 구하고 싶어 ‘검색’과 ‘발품’을 팔았다. 우리 집 약과는 매작과처럼 꽈배기 모양이었는데 매작과처럼 얇지는 않았다. 매작과와 타래과가 같은 음식을 지칭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요즘 시장에서 파는 약과는 동그랗거나 꽃모양이 많았다. 마름모 모양의 약과를 찾기는 했는데 길쭉하지 않았다. 이러다 영영 못 찾겠다 싶었을 때 드디어 가장 유사한 약과를 찾았다! ‘단양수제약과’로 검색결과가 나왔다. 역시 같은 충청도에 있었군. 바로 주문했다.
이렇게라도 할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약과와 비슷한 약과를 구하게 되어 다행이다. 모양부터 살펴보니 크기는 120% 정도 할머니 약과에 비해 크고 두께도 두껍다. 그래도 이 정도면 감지덕지다. 맛은 내 기억 속 보다 덜 달고 계피 향과 생각 맛이 돈다. 제조업체를 찾아 들어가니 조진순 할머니께서 만드신단다. 할머니 오래오래 사셔요.
약과 말고 할머니의 튀김 간식에 도나츠(도넛)가 있었다. 반죽을 어떻게 만드셨는지 모르겠다. 요즘이야 전용 가루라고 판매되는 것이 있지만 40년 전에 도나츠 전용 가루가 있을 리 만무하다. 있다고 해도 그런 도시 물건은 우리 동네에 없었을 것이다. 여하튼 설탕이 듬뿍 뿌려진 흑갈색의 구멍 뚫린 동그란 도나츠를 학교에 가지고 간 적이 있다. 검사를 받기 위해서였다. 왠 난데없는 도나츠 검사? 내 기억에 오류가 있나 싶어 찾아보니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있었던 혼분식 장려운동의 여파였었나 보다. 내가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학교에 가지고 가야 한다고 했을 테고 할머니는 도나츠를 만들어주셨던 것이다. 설탕을 묻히느라 은색 양은 쟁반에 있던 도나츠들. 도대체 할머니는 도나츠 만드는 법을 어떻게 알게 되셨을까? 어디서 배우신 걸까? 참으로 원더우먼이다.
※ 사진 설명 : 조진순 할머니가 만드신 단양 수제 약과를 놓고 찍은 사진이다. 이 타래과가 우리집 고급버전이다. 맛있게 잘 먹었다. 내게는 양이 많아 하루에 한 개씩만 먹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