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남씨 부엌에서 내가 컸다
해볼라치면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다. 재료도 별게 없다. 찹쌀가루와 팥만 있으면 된다. 조리도구도 프라이팬 하나면 끝. 그럼에도 찹쌀부꾸미는 시작을 꺼리게 하는 뭔가가 있다. 그 무엇이 무엇일까 생각한 끝에 ‘팥’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팥으로 팥소를 만드는 것이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다. 과정이 번거로운 것 보다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할머니가 그러셨다. “팥은 누가 보면 잘 안 분다.”고. 팥을 불린 때는 뚜껑울 꼭 덮으라는 당부의 말씀이셨다. 빛을 쪼이면 판이 잘 안 분다는 뜻.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여하튼 팥은 불리는데 시간이 걸린다. 좀 불려서 끓여야 익는다. 불리는 과정 없이 삶으면 딱딱한 체로 그대로다. 고집이 센 놈이다.
자 그럼 찹쌀 부꾸미를 만들어 보자.
① 불린 팥을 삶아 붉은 빛이 도는 팥물은 마셔 버린다.
② 푹 삶아진 팥은 감자으깨기 potato masher 로 꼭꼭 눌러 으깬다.
③ 소금과 올리고당(설탕 대신)을 넣어 간을 한다.
④ 새끼손가락 두마디만한게 팥소를 뭉친다.
이것이 찹쌀 부꾸미 안에 들어가는 팥소 만드는 과정이다.
다음으로 찹쌀옹심이를 만들 차례다.
① 찹쌀가루에 뜨거운 물을 조금씩 살살 부어가면 반죽한다.
② 동글동글한 공 모양으로 찹쌀옹심이를 빚는다.
이제 부꾸미를 만들면 된다.
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루고 옹심이를 얻는다.
② 호떡을 만들 듯 국그릇같은 것으로 옹심이를 눌러 동글 납작하게 만든다.
③ 한쪽 면이 익으면 뒤집는다.
④ 뒤집은 면도 익은 것 같으면 그 때 팥소를 납작한 찹쌀떡 위에 올리고 반으로 접어 반달 모양으로 만든다.
⑤ 찹쌀떡끼리 붙도록 잡시 지긋이 부꾸미를 눌러준다.
이렇게 하면 찹쌀부꾸미를 먹을 수 있다. 미국 유학 시절에도 만들어 먹었는데 정작 돌아와서 이십년 동안 단 한 번도 만든 적이 없다. 유학 시절에는 한국이 그리워서 그랬을테고 돌아와서는 마음이 바빴으리라.
찹쌀부꾸미는 할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떡 중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일한 떡이다. 호박고지와 검은콩이 넉넉히 들어갔던 백설기, 참깨와 흑설탕 믹스 또는 햐얀 콩으로 소를 넣었던 송편, 노란 콩가루와 검정 깨를 입힌 인절미, 여름이면 커다란 양은 들통에서 부풀어 올랐던 마걸리 떡(증편), 성글하게 부서진 팥고물이 입혀진 수수팥떡과 팥설기까지. 할머니는 어떻게 이 많은 종류의 떡을 만드실 수 있게 되셨을꼬. 좀 배워둘걸 그랬다. 먹을 때는 좋았는데 다시 먹얼 수는 없구나.
사족: 이십년만에 만들어 본 찹쌀부꾸미는 찹쌀옹심이 반죽이 너무 되서 기름에 지지는 과정에서 동그란 모양 끝이 자꾸 갈라졌다. 그래도 기름에 지진 거라 먹을 수는 있었다. 광장시장 가서 어떻게 반죽을 만드시는지 살펴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