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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진 Jan 13. 2019

여행을 사랑하는 한 신혼부부와의 저녁 식사

이제 더 이상 떠남이 두렵지 않은 여행자가 보내는 아홉 번째 러브레터

@레스토랑, 오스트리아 비엔나


여행의 묘미: 모르는 이들과의 식사 한 끼

서울에서 저는 프로 혼밥러였습니다. 전화 통화를 많이 하거나 연달아 미팅을 한 날에는 말없이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점심을 먹고 싶더라고요. 그럴 땐 조용히 사무실을 빠져나와 샌드위치와 그란데 사이즈의 커피 한 잔을 사들고 근처 공원에서 혼밥을 즐기곤 했습니다. 저는 제가 혼자 밥 먹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여행을 와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외로운 것은 둘째 치고, 혼자 여행객은 립이나 스테이크 같은 다인용 메뉴는 주문조차 할 수 없습니다. 혼자 돌아다니다 저녁 한 끼 거하게 먹고 싶어 지는 날에는 여행자 카페를 통해 동행을 모집하곤 했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그렇게 모르는 이들과 함께하게 된 식사 자리 이야기입니다.


소울 메이트를 만난다는 것

오스트리아 비엔나는 커다랗고 맛있는 립(Rib)을 싼 가격에 맛볼 수 있는 걸로 유명합니다. 적어도 세, 네 명이 붙어야 립 하나를 모두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여행자 카페에서 동행을 찾았죠. 레스토랑에 도착해보니 저를 포함해 신혼부부와 회사원 한 명, 하와이에서 연구 중이시라는 공학 박사님 한 명까지 총 다섯 명의 여행객이 모여있었습니다. 서로를 소개하며 아이스 브레이킹의 시간을 갖던 중 신혼부부의 연애사를 듣게 됐습니다.


이 커플은 운 좋게도 둘 다 일 년에 한 달 정도 휴가를 낼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덕분에 사귀기 시작한 이후로 매년 함께 해외여행을 다니고 있죠. 그들이 볼리비아를 여행할 때의 일입니다. 소금 사막을 보기 위해 캠핑카를 빌렸는데 아무리 달려도 지도 속 소금 사막이 나타나지 않더랍니다. 하루 종일 차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불만이었던 여자 친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소금 사막을 봐야겠다는 남자 친구에게 화가 났죠. 남자 친구도 지도대로 나타나 주지 않는 소금 사막에 화가 났구요. 결국 한 두 마디의 투정이 말다툼으로 번져 차 안에서 말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갑자기 눈 앞이 새하얗게 변하더랍니다. 분명히 여기가 소금 사막은 아닌데. 어리둥절해진 커플은 차에서 내려 그 하얀 덩어리가 소금인지 맛을 보았다고 해요.


혀 끝을 아릴 정도의 짠맛. 본래 그들이 목적지로 삼았던 유우니 사막은 아니었지만 운명처럼 소금 광산을 만났다는 생각에 신이 난 이 커플은 계획을 수정해 그곳에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때 남자분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자신은 여행지가 어디인지 보다 누구와 오는지가 중요한 사람이고,

그저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있고 싶어 이 곳으로 여행을 온 건데

그녀와 함께 하는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도착지에 집착한 스스로가 참 바보 같았다.


남자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무치게 외로워졌습니다. 지난 몇 년간 일상을 버텨내는 게 힘들어 그냥 이렇게 계속 혼자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 나처럼 떠남과 여행을 즐기는 소울 메이트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눈 앞에서 꿀 떨어지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이 신혼부부처럼요.


인생도 결국엔 여행과 같겠죠. 어떤 직업을 갖고 어디에 살고 있는지 만큼 곁에 누가 있는지도 중요할테니.


고맙습니다, 제 사람들

지금 제 곁에 누가 있는지를 한참 생각했습니다. 뒤이어 나 또한 고마운 내 사람들에게 그들과 같은 존재일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혹 내가 그들에게 이리도 큰 존재라면 그렇게 생각해주는 자체가 고맙고, 그렇지 않은 존재라면 그럼에도 이렇게나 큰 존재로 제 곁에 있어주는 게 고마워졌습니다. 동일 어구의 무의미한 반복은 문장 의미를 흐리게 한다는데, 가끔은 의미가 흐려질 수록 진심은 진해지니 이해 바랍니다.


이토록 불안하고 나약한 제 곁을 지켜주는 고마운 내 사람들에게 글을 통해서나마 감사함을 전합니다. 항상 여러분의 따뜻함 속에 위로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손 디딜 곳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지쳐있을 때 모른척 그 옆에 서있을게요. 미약하나마 저라는 존재가 그대의 삶에 위안이 되길 기도합니다.


일상의 의미를 되새겨줄 또 다른 이들과의 식사 한 끼를 꿈꾸며

왜인지 눈물이 차오른 여행자 김수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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